1. 보톡스 권하는 "피아노"

새벽 4시 10분, 피아노로 시작하는 하루

by Double P

"딴단다다단, 딴단다다..."


정확히 4시 10분. 익숙한 갤럭시 알람음("Homecoming)"이 울리자마자 반사적으로 끈다. 아이들이 잘 자고 있나 본능적으로 살핀다. 몸은 아직 침대에 눌려 있고, 눈꺼풀은 아직 붙어있지만 참을 수없는 생리작용이 뒤따른다.


"딸칵"


화장실에 들어가며 킨 조명이 밤새 빛을 잃었던 두 눈에는 너무나 밝은 태양과 같다. 잔뜩 눈을 지푸린다. 그 모습을 화장실 거울을 통해 마주한다. 어제 친구가 한 말이 떠오른다.


"너 보톡스 좀 맞아 겠는데? 미간 주름이 장난 아냐"


괜히 미간을 좌우로 당겨보며 애써 주름을 펴보지만, '세월을 당해낼 재간이 없네'라 생각을 변기통으로 흘려보낸다.


참 솔직한 몸이다. 정수기에서 차가운 물 한잔 가득 받아 마신다. 목을 넘어가는 차가움이 온몸을 깨운다. 이 물 한잔이 내 새벽 연습의 시작 버튼이다.




어둡고 고요한 거실, 여명을 맞이하려는 창가로 향한다. 피아노 옆 스탠드에 불을 켜면 작은 공연장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관객은 없지만, 연주자는 진심이다.


피아노 의자에 앉은 채 잠시 명상을 한다. '나는 위대하다', '나는 대가다', '틀린 음은 없다' 이 세 마디를 머릿속으로 되뇐다. 미국의 한 유명한 음악가가 추천한 명상법이다. 그렇다. 이제 나는 호로비츠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가가 되었다.


연습의 시작은 늘 하농이다. 하농에서 재미와 감동을 기대하면 안 된다. 30년 만에 다시 접하는 피아노와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지려는 처절한 몸부림이다.


손가락 관절이 30년 만에 인사한다. "응, 그럭저럭 잘 지냈지만, 그다지 발달하진 못했다고". 미안하다. 손가락아. 하농이라는 물리치료사를 보낼 테니 어떻게든 기름칠을 해보자꾸나.




물리치료를 했으니, 이제 정신 치료를 할 차례이다. 브루크뮐러를 펼친다. OP.100과 OP.108 에뛰드를 매일 한곡씩 초견으로 보는 중이다. 처음 보는 음표들의 조합과 악상기호들. 낯선 만큼 천천히 건반을 눌러본다.


명상의 효과였을까. "느리게 치는 것도 예술이다"라는 생각이 들고, 그에 맞춰 감정이 끓어오른다. 나도 모르게 입술이 삐죽 튀어나오며 미간이 저절로 움츠려 든다.


"아차차. 또 보톡스.."





어느새 7시가 다 되어간다. 창밖 하늘이 모네의 그림과 같이 예쁜 빛을 띠고 있다. 이제 잠시 대가의 반열에서 벗어날 시간이 됐음을 직감하며 아이들을 깨울 준비에 나선다.


누군가는 이 시간을 고행이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 고요한 시간, 냉수 한 잔, 피아노 연습이 아주 행복한 하루를 시작하는 루틴이 되었다.


그리고, 깊어가는 주름은 베테랑의 노련함을 표시하는 훈장과 같은 것이 되어가고 있다. 이 뿌듯함을 느끼는 건 오롯이 나이기에 절대 '보톡스'는 맞지 않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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