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용돌이 같이 빨려 들어가는 음악
"요즘, 무언가 너무 좋아."
클래식을 좋아하는 친구가 어느 날 말했다.
"응? 뭐가 그렇게 좋아?"
또 어떤 명곡을 건져 올렸을지 궁금했다. 새로운 곡을 발견한 듯한 눈빛이었다.
"무언가 말이야"
친구는 눈을 반짝이며 의미심장하게 대답했다.
"그러니까, 뭐가 그렇게 좋아?"
왜 자꾸 뜸을 들이는 걸까. 얼마나 대단한 곡이길래? 다시 물었다. 마치 피의자를 취조하는 형사처럼!
"아...."
눈치 빠른 친구는 그제야 이 대화가 무한 루프에 빠진 것을 알아차렸다. 반짝이던 눈은 클래식 초심자를 측은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는 조용히 스마트폰에서 뭔가를 검색하더니 내게 건넸다.
화면 속에는 조명에 반짝이는 짧은 드레스를 입은 여성 피아니스트가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다.
"Yuja Wang: Mendelssohn Songs Without Words, Op.67 No.2"
"아!"
진리를 깨달은 현인들처럼 나도 모르게 외마디 감탄이 나왔다.
말이 없는 노래[無言歌], Song Without Words.
학창 시절 무협지와 성문 종합 영어로 단련한 한자와 영어 실력이 빚어낸 오해가 비로소 해소되는 순간이었다.
처음 보는 유자왕의 영상은 강력했다.
유명한 피아니스트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시선을 잡아끄는 스타일일 줄은 몰랐다.
반짝이는 드레스, 높은 하이힐.
'이런 복장으로 피아노를 친다고?'
피아니스트에 대한 선입견이 생기려고 하는 순간, 작지만 또렷한 스타카토 음들이 예리하지만 부드럽게, 깃털처럼 건반 위를 흘러갔다.
"........"
2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시간이 멈췄던 것 같았다.
반짝이는 드레스? 그런 게 있었나 싶었다. 음악에 빨려 들어간다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나는 생각했다.
'이 곡, 나도 치고 싶다!'
말이 아닌 마음을 노래하는 '무언가'
'말(가사) 없는 노래'라는 제목이지만, 오히려 무척 매혹적인 말을 건네는 곡이었다.
짧은 음들이 연속적으로 솟아오르지만, 그 흐름은 과하지 않아. 단정하고 간결하다. 작은 물방울, 혹은 모래알이 흩뿌려지지만 그 안에 또렷한 멜로디가 살아 있다.
들으면 들을수록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매력이 느껴졌고, 설명할 수 없는 끌림이 생겼다. 과연 이 매력, 내가 얼마나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잠깐의 두려움도 스쳤지만, 결국 각오를 다졌다.
정 안되면 반짝이 드레스라도 입겠다는 각오로 악보를 펼치고, 피아노 앞에 앉았다.
피아니스트들은 이 곡으로 어떤 말을 해왔던 걸까. 나는 어떤 말을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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