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한 당신

by 모카모카

마침내 이뤄낸 복직


속전속결. 안 이사에 대한 사장의 두려움이 오히려 사장의 결심을 서두르게 만들었다. 천안에 다녀간 지 사흘 뒤 나는 해외영업팀으로 복귀하라는 공문을 받았다. 직급 역시 사원에서 대리로 조정되었다. 정 부장은 해고되었고, 평택의 양 공장장도 안 이사의 묵인 아래 월급도 퇴직금도 없이 빈손으로 쫓겨났다. 덕일공업은 양 공장장을 고소하지 않는 조건으로 손해배상금의 경감과 미래모빌스와의 향후 지속적인 거래를 약속 받았다. 정 부장이 데려다 앉힌 강 대리, 아니 그 신입 역시 원래의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백수 또는 취업 준비생. 부장으로 승진한 박 과장이 신입이 무슨 잘못이냐며 선처를 호소했지만 사장은 강경했다. 정 부장의 친척이라는 사실이 가장 무거한 죄목이었다. 한때는 가장 찬란한 날개였던, 자랑이었고 영예였던 그 사실이.

해고 통지를 받은 날 정 부장의 기세가 대단했다. 한바탕 회사를 뒤집어놓았다. 억울하다고 고래고래 소리치는 정 부장을 총무팀 직원들이 간신히 사장실 밖으로 밀어냈다. 그런 다음 팔에 팔을 걸고 인간 띠를 만들어 사장실 재진입을 막았다. 정 부장이 조용해진 건 사장이 인간 띠 너머로 여러 장의 복사물을 던져준 뒤였다. 사장이 말했다.

“거기 J, 정은신 당신 맞죠? 안 이사가 다 실토했어요. 안 이사의 충실한 개였던 당신은 결국 안 이사한테 버려진 거야. 난동을 피우려면 거기 가서 해요. 형사고소 안 하는 것만 해도 감사하게 생각해야지 여기서 뭐 하는 짓이야.”

정 부장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사장을 쳐다보았다. 사장실 문이 닫히려는 찰나 정 부장이 다급하게 물었다.

“안 이사님은요?”

사장이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왜 저만 해고당해야 하나요? 전 안 이사님이 시키는 대로 한 것밖에 없는데요.”

“안 이사하고 당신하고 같아요? 쯧, 주제를 알아야지.”

사장의 짜증 섞인 목소리, 뒤이어 사장실 문이 탁, 하고 닫혔다. 정 부장은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렸다. 극도로 허탈한 얼굴. 한 과장은 그렇게 표현했다. 정 부장이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복도 모퉁이에서 한 과장이 다 지켜보고 있었다.

정 부장은 안 이사에게 가지 않았다. 억울하다고 소리치기는커녕 왜 버렸느냐고 이유조차 묻지 않았다. 극도로 허탈한 얼굴로, 터덜터덜, 사장실 앞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며칠 뒤 안 이사를 찾아가 그동안 고마웠다고 공손하게 인사를 올리고는 회사를 떠났다. 코미디가 아닐 수 없었다. 주범인 안 이사는 놔두고 꼬리에 불과한 정 부장만 해고한 것도 그렇지만 그 해고의 원인인 안 이사를 찾아가 그동안 고마웠다고 인사한다는 건 역대급 코미디가 아닐 수 없었다.

“정 부장 그 새끼 이제 보니 순 바보 천치네. 자기 이용해 먹고 버린 놈한테 인사는 무슨 인사야. 한바탕 뒤엎고 나가도 모자랄 판에.”

어이가 없다는 듯 최 과장이 이죽거리자 공장장이 나직이 말했다.

“먹고살아야 하니까. 안 이사한테 밉보이면 이 바닥에서 살아가기 힘들지.”


이 바닥에서 살아가기 위해 밉보이면 안 되는 대상은 안 이사뿐만이 아니었다. 복직 후 보름쯤 지났을까, 나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상대방은 내가 용준영이 맞는지를 확인한 뒤 곧장 정은신 씨를 아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이런저런 설명을 했다. 자기 회사 이름을 대며 정은신 씨가 입사 지원했다, 이것도 면접 과정 중 하나다, 정은신 씨는 어떤 사람이냐, 물었다. 망설일 것 없이 나는 곧바로 대답했다.

“좋은 사람은 아닐걸요.”

그날 우리 해외영업팀 소속 직원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런 전화를 받았다.

“요즘은 면접 볼 때 경력직의 경우 전에 같이 일했던 사람들 전화번호를 적어내라고 한다네.”

목 대리가 말했다. 다들 뭐라고 했어? 한 과장이 물었다. 누군가는 정 부장을 질이 나쁜 사람, 또 누군가는 부하직원의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 흡혈귀 같은 사람이라고 기억했다. 가장 의외의 대답은 정 부장의 후계자로 지목되던, 정 부장의 총애를 독차지하던 안 대리였다.

“개새끼.”

안 대리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 후로도 비슷한 전화를 여러 번 받았다. 정 부장은 지치지도 않고 닥치는 대로 이력서를 넣고 있었다. 자동차 부품 회사뿐만 아니라 자동차와 관련된 모든 회사, 심지어 원료 생산 회사에까지. 옥상에서 둘만 있을 때 목 대리가 이유를 말해주었다.

“아들이 초6, 딸이 초3이잖아. 돈 먹는 하마들. 나 사실 지석이 졸업 선물까지 생각해놨었다? 아, 아들 이름이 지석이야. 부장이 애지중지하는. 무슨 선물을 해야 잘 받았다고 소문날까 며칠을 고민했는데 헛수고가 돼버렸네.”

그 뒤로 나는 정 부장의 인성을 묻는 전화에 이렇게 대답했다.

“뭐 조금…….”

1년이 지난 뒤부터는 이렇게 대답했다.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그냥 평범한 사람?”

언젠가부터 그런 전화가 오지 않았다. 목 대리에게 물으니 조그마한 자동차 부품 회사에 부장으로 취직했다고 알려주었다.


가을이 한창 깊어갈 무렵의 어느 일요일, 나는 아침 일찍 천안으로 내려갔다. 용 사원까지 내려올 거 없어, 최 과장이 말렸지만 그럴수록 나는 기를 쓰고 시간을 뺐다. 넉 달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두 달 동안 휴일도 없이 일을 했다.

“용 대리 아마 할 일 많을 거야. 거, 신입이 잘못 작성한 서류들이 수두룩할 거거든. 틀려도 누구 하나 지적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말이지.”

잘못 작성한 서류들로 거래처와 일을 어떻게 했느냐고? 신입은 서류 작성을 끝낸 뒤 거래처에 보내기 전에 반드시 다른 대리나 과장들에게 감수를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 이 감수자들,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기는커녕 잘했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두고 가, 말하고는 자기들이 다시 작성한 서류들을 거래처에 보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내 컴퓨터에 엉터리로 기재된 온갖 종류의 발주서, 납품확인서, 거래명세서들이 악성 바이러스처럼 곳곳에 잠복해 있다는 것이고, 나는 실제 사용된 서류들과 그것들을 일일이 대조해가며 올바르게 수정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잘못된 것을 잘못된 채로 두면 가까운 미래에 엄청난 폭탄이 되어 돌아올 것이므로. 그리하여 나는 10월 하순의 어느 일요일 하루를 위해, 그 하루의 시간을 빼기 위해 밤이고 낮이고 기를 쓰고 일을 했다.

공장장 집에는 최 과장이 먼저 와 있었다. 공장장은 이른 아침부터 덕일공업 사장을 만나러 평택으로 갔다. 공장 시스템을 점검해달라는 덕일공업 사장의 부탁을 받고서였다. 그러니까 내가 하필 그날 천안으로 내려간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내가 도착하고 조금 뒤 트럭 한 대가 골목 입구에 와 섰다. 뒤뜰에서 골목 입구까지는 리어카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리어카는 최 과장이 진작 구해놓았다.

“이게 트럭 두 대 분량은 될 거란 말이지. 각오 단단히 해, 용 사원.”

최 과장은 시작도 하기 전에 겁부터 주었다. 지난날 술 마신다는 핑계로 공장장 집에 왔을 때 쓰레기의 양을 쟀다고 했다. 내가 이렇게 치밀해. 그래, 최 과장의 자화자찬처럼 조금 치밀한 건 알겠다, 그러나.

“거 용 사원 소리 좀 안 하시면 안 돼요? 저 이제 사원 아니라고요! 대리!”

“난 용 사원이 입에 착착 달라붙고 좋은데?”

“최 과장님 입에 달라붙으라고 있는 이름이 아니에요!”

그러자 곰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여우과에 더 가까운 최 과장의 반격.

“철물점 김 사장이 용 사원 자네 미친놈이냐고 묻던데, 뭐라고 대답하지?”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현조를 만났다. 한 시간 혹은 두 시간씩. 저녁 식사를 겸해서. ‘만난다’고는 했지만 여전히 현조에게 나는 ‘선배’일 뿐이었다. 아직 아무것도 고백하지 못했다. 일단은 내 컴퓨터 안의 ‘바이러스’들을 퇴치하고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는 게 급선무였다. 고백은 그 뒤에 할 생각이었다. 고백의 그날까지 가슴 두근거리며 기다리는 시간도 뭐, 나쁘지는 않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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