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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이틀에 걸쳐 일어난 일이 아니다. 내 평생에 걸쳐 한 겹, 한 겹 쌓인 두꺼운 나이테야말로 내 응축된 분노를 나타낸다. 본능과 이성의 사이에서 미묘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그 존재가 바로 부모님이다.
적어도 내게 있어선 그렇다. 난 오랜 기간 부모님을 인정하지 못 했다. 내 상위의 존재처럼 행동하는 그들이 싫었다. 그럼에도 인정해야 했다. 난 그들의 돈으로 생활했으니까. 그들의 돈 없이는 내 생은 훨씬 짧아질 테니까. 한편으론 그런 생각도 들었다. 차라리 짧아지는 게 나은 것 같은데. 누군가에게 빌어먹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한두 번은 자존심을 삼킬 수 있지만, 수십, 수백 번이 넘어가면서는 삼킨 자존심이 안쓰럽게 느껴진다.
난 부모님의 돈으로 아주 풍족하게 생활해 왔다. 이건 다시 말해서 생활해 왔던 그 기간 동안 부모님의 비위를 맞추며 살아왔다는 거다. 난 그들의 개가 되고 싶지 않았다. 딱히 그들이 내가 개처럼 행동하길 바랐던 건 아니지만, 내게 있어서 자식이 된다는 것은 개가 되는 것 같았다. 내 목적보다 부모의 목적이 우선시되는 게, 주인을 따라야 하는 목줄의 압박처럼 느껴졌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부모님은 내게 많은 걸 바라지 않으신다. 도리어 고개를 한 번만 숙이면 먹이를 하나 대신 열 개나 주신다. 나도 이 방식이 크게 싫진 않았다. 고개를 어떻게 숙여야 그들이 편해하고 기뻐하는지 잘 안다. 그게 싫었다.
부모님은 내게 정상을 바란다. 하지만 난 정상과 거리가 먼 사람이다. 내가 정상인 척을 하여 먹이를 얻어낸 뒤엔 돌아서서 비정상인 내 정상을 되찾는다. 그러다가 내 먹이가 떨어지면 가면을 쓰고 내 비정상인 그들의 정상을 흉내 낸다. 그 흉내가 적절했는지 박수를 받기도 한다.
부모님은 안타까운 사람이다. 첫째는 정상적이고 훌륭한 엘리트라 마음이 놓였지만, 둘째는 비정상적이여 걱정으로 밤잠을 못 이루게 한다. 정상, 그거 하나를 못 하는 못나고 딱한 내 자식이 가슴에 못 박는 슬픈 사람이다. 그 자식이란 놈은 타인이 보는 공간에 이런 글이나 쓰고 있다.
뭐, 그래도 네 오른쪽이라고 해서 꼭 내 오른쪽인 건 아니다.
단맛도 지나치면 쓰게 되고, 아름다운 선율도 어쩌면 소음이 되기도 한다.
변호사란 직업이 존재하는 이유가 내가 지금 변명을 하는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다.
난 탈색과 염색을 좋아한다. 이건 내 내면의 자유를 표면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탈색과 염색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성인이 되고, 사회인이 된다면, 아니, 그 이전에 학생이더라도 쉽지 않은 일이다. 어느 정도 문신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난 이런 걸 하는 ***이다. 라는 느낌. 문신도 자유라지만, 누군가 하더라도 괜찮다지만, 막상 보면 선입견이 생긴다. 사실, 그 선입견은 옳다고 생각한다. 하는 사람도 그 선입견을 각오하고 해야 했고, 보는 사람도 선입견을 품고 인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서, 내게 있어서 탈, 염색은 독버섯 같은 거다. 내게 독이 있으니, 독에 취할 만큼의 아름다움을 느껴보라며. 사실, 내 머리를 직접 보면 알겠지만, 위협이라고는 전혀 느끼지 못 할 거다. 오히려 재미있을 정도다. 내가 아르바이트하는 곳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아기들이나 아이들이나 어린 학생들은 내 머리카락에 흥미를 느낀다. 특히 어릴수록 숨기는 것 없이 눈을 못 떼고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만큼 위협적이지 않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다만, 미친 사람이라고 느껴질 수 있다는 각오를 하며 살아간다. 나와 취향이 비슷한 사람은 아주 예쁘다며 크게 감탄하곤 하지만, 모두가 그렇진 않을 테고, 그렇지 않아 내게 혐오감을 느끼는 사람 또한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난 나름 오래 살면서 내가 미친 사람인 걸 인지했고 인정하며 살아간다. 외모란 호텔의 프론트 데스크 같은 거다. 나를 보고 미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면 그게 내가 원했던 내 인상인 거다. 정상인 줄 알고 다가왔다가 나중에 놀라는 것보단, 멀리서도 아, 하는 게 나으니까. 내가 탈, 염색에 대해 편하게 느끼는 이유가 이런 것이다. 한동안 꾹 참고, 짧고 검정머리의 평범한 남자로 살아갈 때가 있었는데, 일상을 살아가면서 몸과 정신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재미가 없었다. 탈색과 염색은 내게 힘을 불어넣어 주는 요소 중 하나다.
다시 엄마로 돌아가서 이야기하자면, 엄마는 내가 탈색과 염색하는 것을 극도로 혐오하는 사람 중 하나다. 밖에서 엄마라고 아는 척하지 말라는 말은 아주 쉽게 나오고 매사에 불만을 거리낌 없이 표현하며 여타 다른 상호작용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그동안 지원되었던 많은 금전적인 부분도 사라진다. 내가 엄마를 싫어하지만, 그럼에도 좋아하려 하고, 고개를 숙이려던 거의 유일한 이유인 먹이가 사라진 것이다. 먹이를 얻어낼 가능성이 사라지면서 이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가장 먼저 그동안의 관계 형성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 정신적, 감정적으로 존중하는 게 아닌, 일방적으로 금전적인 관계로 유지되었던 관계에서 유일했던 줄이 끊어지니 모든 게 뿔뿔이 흩어져 제 갈 길을 가기 시작한 것이다.
예전과는 다르게 이제는 자신이 있었다. 그동안 부모님의 돈을 쓰면서 내 아르바이트로 번 돈은 모두 모아 뒀기 때문이다. 내 돈의 정확한 금액을 말할 수는 없지만, 대충 5000만 원이라고 하겠다. 내게 5000만 원이 있으니, 하루에 100만 원씩 넉넉하게 50일 동안 쓰다가 죽으면 끝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자신감이 넘쳤다. 오래전 내 목표는 100만 원이었다. 하루만 넉넉하게 살다가 죽는 게 목표였는데, 이제는 그 기간이 50일이나 될 정도로 길어진 것이다. 이제는 무서울게 없어졌다. 사고 싶은 것은 모조리 다 샀다. 원래라면 사고 싶은 모든 물건에 이유를 생각하여 부모님께 설명하고, 설명이 부족하다면 적절히 비위를 맞춰야 했다. 그게 싫었는데 이제는 그 모든 과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강하다는 건 설명이 필요없다는 걸 의미하는 것 같다. 더 나아가서 그 강함은 새로운 정의가 되곤 한다.
신용카드를 회사별로 총 4개 만들었다. 몸에 나쁜 음료수와 커피 시럽을 샀다. 집에서 커피를 만들어 먹을 수 있게 전용 믹서기도 샀다. 살면서 처음으로 내 방이라는 걸 꾸며봤다. 내 방에 컴퓨터와 에어컨을 들이고 책상 아래는 냉장고를, 중앙에는 야외용 3인 그네 의자를 두고, 그 앞에는 거실장을, 그 위에는 86인치 TV를 올렸다. 17만 원짜리 손전등을 사고, 34만 원짜리 멀티툴을 사고, 22만 원짜리 칼을 샀다. 먹고 싶은 게 떠오르면 부모님이랑 의견 맞출 필요 없이 그냥 사 먹거나 시켜 먹었다. 나눠 먹지 않고 방에서 혼자 다 먹었다. 어떠한 설명도 필요 없이 사고 싶은 모든 건 떠오르는 데로 바로 샀다. 구매를 완료하면 다음 구매를 위해서 사고 싶은 것을 생각하고 찾아냈다. 미친 사람처럼, 돈을 쓰고 싶어 안달 난 사람처럼 살았다. 며칠 전에 일어난 일인데도 내가 뭘 샀었는지 기억이 전부 다 나지 않는다. 6일 동안 800만 원 정도 사용했다. 후련하다. 이렇게 해도 아직 42일이나 살 수 있다. 요새 이렇게 지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