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조작 불가

한 번 넘어가면 다신 여기로 돌아올 수 없다.

by ODD

내 뇌 속에는 첫 사랑도, 첫 키스도, 첫 경험도 존재하지 않는다. 대상이 있었던 적이 없기에 어떠한 얼굴도 그립지 않다.



나는 뭔가를 시작할 때 끝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사람에 대해서도 그러했다. 그리움이 무서웠다. 사실, 지금도 무섭다. 헤어질 두려움은 가족으로도 벅차다.



나는 애정결핍이다. 겉으로 표출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마음속에서 공회전하는 엔진의 존재를 난 알 수 있다. 사람의 품에 안기고 싶다는 마음이 새어나가 자력에 한 번 끌려가게 되면 난 아마 아스팔트 바닥에 얼굴이 갈리면서도 놓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나는 내가 약하다는 것을 알기에 통제하기 시작했다. 마치 강력한 전자석의 전류 자체를 끊어버리듯, 감정이라는 감각을 차단시켰다. 함부로 심장이 뛰지 않도록 훈련시켰다. 사랑이라는 지뢰를 밟지 않기 위해서 걸음을 멈췄다.



나는 로맨스 장면을 보아도, 사랑 노래를 들어도 어떠한 얼굴도 떠오르지 않고 사랑 그 자체가 떠오른다. 나는 이에 대해서 스스로 잘 교육하며 키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의식뿐만 아니라 무의식적으로도 타인에게 끌려갈 어떠한 여지도 남기지 않았다. 잘된 일이다. 잘된 일이다.



내 목표는 타협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나는 내 기억을 수정하거나 제거하는 방법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얻게 될 기억에 대해서, 그 경험에 대해서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내 뇌에 아무나 들일 수도 없었고 상대방의 뇌 속에 함부로 들어갈 수도 없었다.



술과 담배는 중독이 되더라도 전쟁이 나서 물품 보급이 어려워지는 게 아닌 한, 언제 어디서든 혼자서 만족시킬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은? 사랑은? 상대가 필요하다. 더군다나 특정한 한 사람이라면... 상상만으로도 무섭다.



나는 내 성생활이 만족스럽다. 내 뇌 속에 기록된 최고의 오르가즘은 자위다. 그런데 만약 섹스를 알아버리고 중독된다면? 한번 높아진 기준이 절대로 내려오지 않는다면? 누군가는 별것도 아니라며 날 겁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이 내가 두려움을 느끼는 큰 이유 중 하나다. 기억 조작이 불가능하다는 것. 만족의 기준을 수정할 수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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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정말 풍부하고 다양해서 무엇에도 비유할 수 있다. 내가 비유하곤 하는 대상 중 하나는 스튜인데,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냄비는 계속 끓고 경험이라는 재료를 추가해 가며 맛이 풍부해지는 것이다.



여기서 포인트 중 하나는 넣은 재료는 즉시 스튜의 전체적인 맛에 영향을 끼치며 다시 건져낼 수 없다는 것이다. 스튜를 정성껏 끓이다가 실수로 대변을 넣고 나서 뒤늦게 꺼내봤자, 대변의 맛과 성분은 여전히 존재할 테니. 뭐, 오래 끓이면 사라지려나, 그래도 역시 그런 스튜는 사양이다.



아무튼 내게도 내 스튜가 있고, 내 스튜에 어떤 것을 넣고 싶은지, 어떤 게 들어갔는지, 어떤 것을 넣으면 안 되는지 생각할 게 많다.



나는 세워놓은 가설이 여럿 있고 그 가설들을 확인하고 증명하며 살아간다. 내 가설 중 하나를 소개하겠다.



쉽게 표현하면 사랑, '가족을 사랑한다.' 는 것과는 별개로 가족 이외의 타인에게 몸과 마음을 주고 싶을 정도의 사랑. 넓게 말하면 정신과 육체를 의지할 수 있을 정도로 깊은 인간관계. 이 재료는 100개의 스튜 중 97개에는 들어갈 정도로 흔하고 당연한 거라고 느껴진다. 그뿐만 아니라 이 재료는 맛이 너무나 강렬하고 매혹적이라서 다른 맛들을 다 감춰버리는 성질도 갖고 있다.



마치 라면 스프처럼.



라면 스프는 맛있다. 라면 스프는 죄가 없다. 다만, 너무 강력하기에 많은 맛들을 덮어버린다. 라면 스프가 열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혀, 오히려 우월할 수도.



너도나도 라면 스프를 사용하다 보니, 라면 스프를 사용하지 않은 스튜의 맛이 궁금해지는 것인데, 내 말을 듣고 자신의 스튜에 라면 스프를 넣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나밖에 없다 보니 스스로 실천에 옮기고 맛보는 중이다.



나는 내 스튜의 맛을 좋아하는데, 라면 스프를 넣지 않아서 맛있는 것인지 확신은 없다. 오히려 라면 스프를 넣으면 더 맛있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이걸 어쩌나.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 라면 스프를 넣어버리면, 내 스튜의 맛은 영영 변해버린다.





얻게 될 경험에 대해서는 신중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번 기록된 기억은 내 의식을 넘어 무의식까지 영향을 끼치기에. 그래서 집착하기 시작했다. 집착하며 통제하려 들었다. 마치 한 번 살인을 저지른 사람은 평생 살인자에서 벗어날 수 없듯이, 한번 흡연자가 되면 남은 평생은 비흡연자가 아닌 참는 흡연자가 될 수밖에 없듯이. 경험은 정신과 마음과 신체에 스며든다. 그래서 신중해지고 싶었다.



그렇게 나름 통제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통제당하는 쪽은 나였다. 자유를 위해 뻗은 손, 그 범위까지가 딱 내 자유가 됐다.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자립'을 얻고 싶다면 그에 따른 '고독'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그런데 그 고독이 이렇게까지 날카로울 줄은 몰랐다. 이렇게까지 날카로워서 내가 베어나갈 줄은 몰랐다.



여전히 모르겠다. 나는 다분히 만족스럽다. 칼날의 그림자는 어느새 내 목까지 드리웠지만 결국 계획대로 난 자유롭다. 이 자유는 내 자아실현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쉽사리 놓을 수가 없다. 결국, 일종의 제로섬 게임 같은 상황에 봉착했다. 결과를 위한 과정의 양보와 과정을 위한 결과의 양보 중, 누가 양보하는 게 좋을지 모르겠다.



나는 오늘 꺼낸 이 이야기의 끝을 어떻게 마무리 지어야 할지, 어떤 주장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적당히 사람 속에 녹아들며 조화롭게 살아가야 한다는 정답으로 매듭지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정말로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질문에 대한 충분한 대답을 여전히 모른다. 나는 아직 내 신념을 꺾을 정도로 명석하지 못하다. 내 형태를 유지시켜주는 내 신념은 날 아프게 하지만 그 고통이 오답의 증거는 아닐 것이다.



한편으론 이전에 말했듯 이제는 나를 내려놓고 정상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회는 한 번. 넘어가면 다신 여기로 돌아올 수 없다. 그 단호함이 나를 얼어붙게 만든다.



내 증명은 죽어서 완성된다. 죽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흔들리지 않고 신념을 지켜야 한다는 말이다. 어떤 나를 내세워도 내 일부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행동에 앞서 하나의 통일된 의견을 낸다는 것은 항상 깊은 고민에 빠지게 한다. 나는 아직 나를 대변할 수 없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나는 분명 뭔가와 열심히 싸워왔고 싸우고 있다. 그게 내 착각만의 허상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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