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2408220543

by ODD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 게 늘 산더미였는데, 그 중 아래쪽에 오랫동안 깔려있던 하나의 주제에 대한 설명이 떠올랐다.


난 사실 이제 와서는 섹스에 대해서 아무렇지 않다.


내가 아니라 상대에 대해서.



심신의 순결에 대해서 의미를 부여하는 게 나뿐인 것 같고, 부여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나만 유독 집착했던 것 같다.


최근까지도 이 주제에 대해서 정리가 되지 않았었다.



내 일이 아니라며 관심이 없다가도 빨리 답을 내놓지 못하면 언젠가 후회할 수도 있다며 꼭 돌아오게 되는 이 주제.


성과 연애, 거기에서도 좀 더 들어가 이번 주제인 내 상대와 내 상대의 이전 상대가 맺었던 육체적 그리고 정신적인 교재는 언제나 많은 생각을 쏟아부어도 라이터로 끓이는 곰솥처럼 진척이 없었다.


참 오랜 기간 동안 여러 가지의 많은 생각을 해왔다.



아주 어렸을 스무 살 초반에는 몸이 중요했다.


내 대상이 나 이외의 상대와 몸을 섞으면 몸이 더럽혀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누군가를 만날 거라면 더럽혀지지 않은 사람을 원했는데, 그걸 알 방법은 없었다.


그래서 아무도 만날 수 없었다.


좀 더 커서는 정신적인 교감이 더 크게 다가왔다.


내 대상이 나 이외의 상대와 몸을 섞은 것 이상으로 희로애락을 함께한 시간이 그 둘의 뇌 속에 영원히 박제된 채로 내가 그 사이에 끼어든다는 생각이 불쾌했다.


그래서 아무도 만날 수 없었다.



여기가 재미있는 부분이다.


A와 B가 함께하며 느낀 희로애락의 그 아름다운 시간들이 C를 만나게 되는 순간. 지저분한 과거가 된다고 느껴진다는 이 부분.



그러다가 비교적 아주 최근에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우리가 식당에 가서 아무 생각 없이 집어 드는 그 숟가락과 젓가락과 포크와 나이프는 [깨끗]하게 씻은 것이다.


누군가의 입속에 들어가 침이 묻었었고 물고 빨았었지만, 괜찮다.


깨끗하게 씻었으니까.


혹시 뭔가 덜 씻겨서, 뭐가 남아있으면 어쩌나.


그건 현실을 몰라서 그러는 거라고 누군가 나한테 말하는 것 같다.


현실은 다 그렇게 사는 거라고.


현실은 다 그렇게 인간답게, 짐승답게, 인간답게 서로 물고 빨고 씻고 물고 빠는 거라고.


그러니까 괜찮은 거라고 내 최근의 생각이 내 과거의 생각에게 대답해 줬다.


그래서 어느 정도 납득했다.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공장에서 막 출하한 식기는 아니지만, 시간은 지나버렸고, 누군가는 식사를 마쳤고, 설거지도 했을 테니.


그냥 그렇게 사용하자고.


그냥 그렇게 살아가자고.


그래서 섹스에 대해서도 정신적 섹스에 대해서도 아무렇지 않아 하려고 했고, 이젠 아무렇지 않다.


아마도.




내가 누군가를 만날 거라면 그 사람의 최소한의 조건이 나만큼의 [무결점 청결]이었다.


이 기준이 내 나이가 들어가고 내 상대가 될 사람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서 점점 더 불가능에 가까워질 걸 알아도, 내가 죽는 순간에 하늘을 향해 든 내 손을 잡아줄 손이 내 다른 쪽 손뿐일 걸 알더라도.



기준이나 생각이 바뀐 건 아니다.


단지, 역할의 차이였던 것 같다.


나는 일종의 장인 정신이었다.


연애의 장인 정신.


수많은 운이 겹쳐, 운명처럼 만나, 서로의 첫 상대가 서로인 채로 끝까지 가는 것.


쓰기 전까지는 몰랐는데, 이렇게 쓰고 나니까 이전의 한 줄이 뭔가 잔인해 보이긴 하다.


아무튼 내가 알던 연애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전부였고, 그 이외의 역할은 맡을 생각이 없었던 거지.


여전히 직접 경험으로는 모르지만, 살아온 나이만큼 간접 경험으로 느낀 대로 말해보자면.


연애는 좀 더 현실적인 것 같다.


아니, 내가 생각했던 연애에 비하면 한참을 벗어난 현실 그 자체였다.


지금보다 이해가 부족했던 이전에는 뭐라고든 써놓을 수 있었는데, 좀 더 이해한 지금의 나로서는 오히려 설명할 수가 없어졌다.


지금의 나로선 연애란 그저 현실 그 자체라고 말하는 게 최선이다.


상대방에게 어떤 과거가 있더라도 그를 능가할 만한 매력적인 요소가 있다고 판단 된다면 과거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 암묵적인 침묵으로 일관하되, 현재를 같이 하며 과거보다 더 행복한 유대를 만들어 그림자를 덮고, 새로운 빛의 방향을 향해 미래를 함께하는 그거 말이다.


로미오만을 고집하면 줄리엣이 없는 한 연애는 절대로 없는 것이다.


줄리엣 없이 연애한 로미오는 로미오가 아니니까.


사실, 줄리엣 없이 연애를 하고 싶다면 행인 16번이 되는 방법이 있었다.


내 모든 것이 상대와 맞을 거라 생각하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서로 맞는다면 나머지는 시간을 함께하며 맞춰가는 그 행인의 역할도 있었던 것이다.



나는 덥고 습한 건 싫어서 동남아 여행은 그 나라의 감정과는 별개로 싫어하는데, 그런 만큼 다른 영상 매체를 통해서 볼 때, 가볼 일 없는 곳이라고 생각해서 신기해하며 본다.


그리고 그런 영상에서 흔치 않게 볼 수 있는 것들 중 하나는 흥정이다.


우리나라보다 물가가 훨씬 더 싼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돈으로 몇십 원을 아낀다고 흥정을 한다.


물론, 여러 이유가 있는 거 안다.


비싸게 사주면 다음에 갈 우리나라 여행객에게 계속해서 비싸게 받는다든지, 호구로 생각한다든지, 아니면 그냥 그런 흥정이 재미있는 요소일 수도 있겠고, 좀 더 저렴하게 샀을 때 쾌감을 느낄 수도 있겠고 뭐,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 내가 처음에 말한 위의 주제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누구나 기억이라는 한계가 있는 자원을 보유한 땅이 있다.


내 정신적인 나라에는 누구도 발을 들이지 않은 땅이 있다.


그리고 반대편의 저 정신적인 나라에는 수 명인지 십수 명인지 수십 명인지 하는 사람의 발을 들인 땅이 있다.


물가가 서로 달라서 사실 이쪽 기준에서는 싼값에 살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진 않을 거다.


흥정할 거다.



내가 흥정한다면 그 이유가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흥정하는 이유는 내가 이해한 환율이 있고 호구 여행객이 되지 않기 위해서다.


쉽게 사줄 생각 없이 흥정할 거다.


내가 살 생각이 생긴다면.



사실 상대 입장에서도 내 것은 너무 비싸게 팔아서 살 생각이 없을 거다.


깨끗한 상대를 만날 준비하며 깨끗한 나를 유지한다는 생각이 인간으로서 오만한 걸까.


곰솥은 아직도 차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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