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우리나라에 미투 열풍이 분 적이 있었다. 이는 서지현 검사가 검사 조직 내에서 여성에 대한 성차별적인 행위가 있었다고 폭로를 한 사건을 계기로 하여 연예계, 사회계, 연극계, 스포츠계등 각계 각층에서 일어난 여성 성추행 및 성폭행 조직적 폭력 문화에 대한 고발이 일어난 것이다. 이로 인하여 정말 죄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 추태로 인하여 자신의 지위를 버리게 된 좋은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 반대로 이를 악용하여 연예인이란 직위를 이용하여 성추행을 당했다고 무고를 한 후 협박을 한 추태도 있었다. (ex 이진욱 무고 사건)
신고한 피해자라 지칭한 이가 결국 무고죄로 판결 난 사건.
탁수정의 거짓 성폭행 주장을 반영하던 모습
이 과정에서 한국 사법재판은 무죄추정의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유죄추정의 원칙을 만든 신기원을 만들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안희정 사건이었다. 안희정 사건은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보도를 하여 당시 안희정의 측근에 있었던 김지은씨가 자신이 추행과 성폭행을 당했다고 미투를 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는 구체적인 증거는 없었고 오히려 이 둘의 불륜으로 볼 만한 증거가 계속해서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안희정의 와이프가 눈물을 머금고 이 둘의 불륜 행각을 증언할 만한 내용의 카톡 내용이라는지, 행태를 자신의 sns계정에 공개했지만, 법원은 정말로 신기하게도 이 모든 정황을 뒤엎어 버리고 그 유명한 '성인지 감수성'이란 듣도보도 못한 신조어를 만들면서 기존의 중립성을 어기며 안희정 전지사에게 유죄를 내리게 된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검색한 성인지 감수성그 이후 이 '성인지 감수성', 즉 피해자의 입장에서 재판을 하고, 공감을하고 인지를 해야한다는 원칙이 성립되며 성추행이나 여러 사건에서 증거도 없이 무작정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을 유죄추정의 원칙에 의거해 비난하는 문화가 만들어지는데, 놀랍게도 이 것이 학교 현장에 유포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꽤 많은 연예인들이 무고를 당하게 되었고 그 대표적인 사람이 이진욱과 김흥국이었다. 특히 이진욱의 경우에는 일반인이 호감을 갖고 접근하여 합의하에 성관계를 했는데, 몇일 후 자신이 성추행을 당했다고 했다. 이에 이진욱이 무고를 당했다고 당당하게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고, 결국 무죄로 끝나게 된 사건이었다. 이처럼 한국에는 미투 사건이 후 유독 성추행에 대해 유죄추정이라는 굉장히 비객관적인 문화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어떤 뉴스 앵커에 말을 따면 '피해자의 눈물이 그 증거다'란 말도 안되는 형태의 문화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나는 이 사건이 한국 언론의 문제점을 전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언론은 이전부터 언론인으로서의 양싱으로서보다 화제성에 입각하여 자신의 전공을 올리기 위한 자극적인 기사를 올리기 바빴다. 그 전적인 예가 세월호 사건 때 '전원 구출'을 보도했던 사례이다. 당시 기자는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단지 메인 뉴스에 올리기 위해 자극적인 문구를 찾은 결과, 위와 같은 어이없는 내용을 기사화한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한국의 언론은 유독 페미니즘에 대해서 굉장히 관대하다. 그 대표적인 것이 혜화역 사건.
사실 이 시위 자체는 명분 자체가 안된 것이다. 그 계기가 된 것이 홍대 누드 모델 몰카 유출 사건인데, 이 사건에 대해서 피의자가 공개 석상에 오르자, 이에 대해 극단적 페미니스트들이 '검찰이 여자라서 강경적으로 차별한다'고 말하며 했던 시위이다.
범죄자를 옹호한 시위. 역대 최대 규모의 레디컬 페미니즘시위였지만 애초에 범죄를 옹호한단 점에서 명분은 없었다이에 대해 대통령이 차별 처벌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지만 듣지도 않고 시위를 한다. 이 시위현장에서 나온 피켓에는 '유x무죄, 무x유죄'란 굉장히 낮뜨거운 어구를 들고 나오고 구호도 굉장히 성적이고 자극적인 멘트를 하는 성숙치 못한 시위현장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남자가 지나가기만 해도, 여기에 대해 촬영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정말로 폭력적으로 대하는 장면이 찍히는 등의 비성숙한 시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언론사(3사 언론사, 및 연합, 세계일보등등)는 이 현장의 자극적인 문구 노출은 모두 생략하고 이 시위가 정당한 시위이며 평화로운 시위였음을 강조하는 등 명분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이 것을 지켜본 나는 정말로 어이가 없었다. 명분 자체가 성립이 안되며 폭력적 시위에 대해서 명분을 만들어주는 언론. 단 하나의 언론에서도 이 시위가 얼마나 명분이 없는 시위이며 자극적인 시위 구호와 아무 근거도 없는 주장들이 난무하는 시위였는지 이야기 하는 언론이 없음을 지탄했다. 시간이 흘러 이 시위는 또 역사 속에 묻히게 되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당시 언론이 얼마나 한국의 다양한 사회 의견을 반영하지 못하고, 특정 메카니즘과 특정인들의 요구에 집중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아주 단적인 사례라고 생각한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한일 무역전쟁이 있다. 특정 보수언론이라고 말하는 언론에서는 오로지 현 정권의 비판의 입장에서만 바라보아 일본의 말도안되는 무역 재제에 대해서는 일도 얘기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한국 정권의 문제점만 꼬집었고 이로 인해서 문제가 생겼다고 왜곡, 선동을 하게 되었다. 나는 이 또한 정말로 문제있는 상황이라 생각했다. 시작은 분명 일본이 한국의 강제 징용자에 대한 재판 판결에 불만으로 경제적 재제를 건 것으로 시작이 되었는데, 한국의 잘못이 먼저였다는 어그로성 기사가 난무했던 것을 분명히 기억한다. 근데 이 것은 분명히 봐야할 것이 한국은 삼권분립 국가이고 사법기구에 대해 행정부가 터치를 하면 안된다(대법원장 임명등을 제외한) 그런데 사법기구에서 한 재판에 대해서 일본 정부의 수반이라는 자가 치졸하게 경제 재제로 가져가게 되었고, 이는 한일 외교관계에서 유례없는 비상식적인 행위임에 분명했다. 왜냐하면 여태껏 한일간 정치적인 갈등은 많았지만, 이는 외교상으로, 정치상으로 끝난 문제였지, 경제적으로 끌고 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항상 2트랙 전략(외교는 외교대로, 경제는 경제대로)을 유지했던 양국간의 관계였지만 이를 아베 내각은 과감하게 어기고 한국 길들이기 전략을 사용한다. 그리고 강제 징용자에 대한 배상 처분도 너무 당연한 것이었다. 일본은 당장에 자신들의 원폭 피해 문제를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이미 합의해 놓고도 민간인들의 피해 보상을 개인적으로 미 행정부에 요구하는 형태가 유지되면서도 자신들의 만행으로 인해서 고생한 징용자,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보상은 65년 한일협정으로 끝났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 것이 말이 되는가. 자신은 허용이 되면서 타국은 안되는 권위적인 모습으로 일과하다가, 여기에 대해서 오히려 자신들이 공격하는 모습.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 언론들은 팩트를 외면하고, 오로지 현정권 때리기에 바빴다. 그런 언론의 모습에서 언론인들의 정신은 없고 오로지 자신들의 가치를 타인에게 심어주는 정치적 역할에 충실했던 언론. 그 언론의 모습은 2년이 지난 지금도 반성도 없이 유지되고 있다.
'언론은 중립적이어야 한다. 언론은 무조건 객관적이어야 한다. '라는 말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언론을 담당하는 것 역시 사람이기에 자신의 주관이 반영될 수 있고 그 것이 당연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언론이 특정입장만을 반영하고, 사실 관계를 너무 배제해버린다면, 언론은 특정 정치 집단의 이익을 반영해버리는 어용단체의 일환이 되어 버린다. 국민의 귀를 막고 눈을 가리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언론이 현재 자본주의에 입각해서 경쟁 시스템이라 당연히 자극적인 기사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의 니즈를 반영한다는 점은 이해한다. 하지만 언론인으로서의 양심과 언론인으로서의 역할에 입각해서 팩트에 입각한 기사를 써주기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