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강철의 꽃: 콘크리트 낙원

by 감성소년


제1장: 짐승의 시간, 그리고 깨진 유리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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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성'. 그의 등에는 아버지가 휘두른 쇠파이프 자국이 지도처럼 새겨져 있었다.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에게 태성은 인간이 아니라 화풀이용 샌드백이었다. 열다섯 살, 피투성이가 된 채 집을 뛰쳐나온 그가 처음 잡은 것은 펜이 아니라 녹슨 삽이었다.


"야, 이 새끼야! 똑바로 안 들어?"


함바집 아줌마의 구박과 고참들의 발길질을 견디며 태성은 노가다 판에서 잔뼈가 굵었다. 남들이 요령 피울 때 그는 콘크리트 독을 마셔가며 벽을 쌓았다. 짐승처럼 일했다. 오직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증명하기 위해서'. 하지만 세상은 가혹했다. 뼈 빠지게 모은 돈을 믿었던 선배가 사기 쳐서 들고 튀었을 때, 태성은 한강 다리 위에서 처음으로 하늘을 원망했다.


"씨발, 신이 있다면 대답해 봐. 왜 나한테만 이래!"


그때였다. 폭우가 쏟아지는 강변북로 한복판, 타이어가 터져 멈춰선 최고급 롤스로이스 한 대가 태성의 눈에 들어왔다. 그 안에서 내린 여자, '차서윤'. 국내 최대 건설사 '한주그룹'의 외동딸이자, 차가운 얼음 성벽의 주인.


서윤은 빗속에서 쩔쩔매고 있었다. 태성은 본능적으로 다가갔다. 진흙탕 투성이인 자신의 손과 대조되는 그녀의 하얀 구두. 태성은 묵묵히 잭을 들어 차를 들어 올렸고, 능숙한 솜씨로 타이어를 교체했다.


"고마워요. 사례는 어떻게..."


서윤이 수표 뭉치를 꺼내려 하자 태성은 차갑게 쏘아붙였다.


"돈 필요 없으니까 그냥 가쇼. 사람 죽으려던 판에 일 시킨 값이라 칩시다."


태성의 거친 손마디와 흉터 가득한 팔 근육, 그리고 절망 속에서도 번뜩이는 그 짐승 같은 눈빛. 서윤은 생전 처음 느껴보는 날 것의 심장 소리에 온몸이 얼어붙었다. 그것이 운명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소용돌이의 시작이었다.






제2장: 가시 돋친 낙원, 금지된 탐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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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서윤은 태성을 찾아냈다. 인력사무소 뒷골목에서 컵라면을 씹던 태성 앞에 서윤의 검은 세단이 멈춰 섰다.


"내 개인 비서로 들어와요. 아니, 내 '사냥개'가 되어줘요."


서윤은 재벌가라는 화려한 감옥 안에서 이복형제들에게 난도질당하고 있었다. 그녀에겐 자신을 대신해 이빨을 드러낼 맹수가 필요했다. 태성은 비웃으며 거절하려 했지만, 서윤의 눈에 담긴 고독이 자신의 것과 닮아있음을 발견했다.


"좋아. 대신, 나 길들이려 하지 마. 난 물어뜯는 것만 배웠으니까."


태성은 서윤의 손을 잡았다. 노가다 판에서 다져진 거친 근육 위로 명품 수트가 입혀졌다. 그는 서윤의 뒤에서 그림자처럼 움직이며 그녀를 위협하는 정적들을 하나둘 처리해 나갔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상처를 공유했다.


아동학대의 기억으로 밤마다 발작하는 태성을 서윤이 품에 안았고, 재벌가의 냉소에 질식해가는 서윤을 태성이 거친 손으로 지탱했다. 기름 냄새와 소금기 어린 태성의 체취가 서윤의 비단 같은 살결에 스며들었다. 신분과 계급을 뛰어넘은, 가장 위험하고도 뜨거운 사랑이 불붙었다.


하지만 낙원의 문은 너무나 견고했다. 서윤의 아버지, 차 회장이 이 사실을 알게 된 날, 태성은 한주그룹의 사설 보안팀에 끌려가 죽기 직전까지 매질을 당했다.


"노가다 잡부 새끼가 감히 내 딸을 넘봐? 쥐도 새도 모르게 공크리트 속에 묻어버려."


차 회장의 서늘한 명령과 함께 태성은 다시 밑바닥으로 내던져졌다. 서윤은 방 안에 감금되었고, 태성은 모든 현장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제3장: 강철의 여왕, 짐승을 왕으로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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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 씨... 아니, 태성 씨. 당신은 여기서 끝날 사람이 아니야."


서윤은 감금된 방의 유리창을 깨고 탈출했다. 그녀는 자신이 가진 모든 비자금과 인맥을 동원해 태성을 찾아냈다. 다시 마주한 태성은 한쪽 눈이 부어오른 채 무너져 있었지만, 서윤은 그의 뺨을 어루만지며 속삭였다.


"당신은 건설사 사장이 될 거야. 당신의 손으로 지은 그 콘크리트 낙원 위에서, 우리 아버지를 무릎 꿇리게 해줄게. 내가 당신의 검이 되고 방패가 될 거야."


서윤의 독기에 태성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태성에게 경영의 기본부터 인맥을 장악하는 법까지 독하게 가르쳤다. 태성은 낮에는 현장에서 소장들과 소주를 마시며 민심을 얻었고, 밤에는 서윤과 함께 설계도와 재무제표를 씹어 삼켰다.


태성은 자신의 노가다 경험을 살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현장 중심의 혁신 공법'을 개발했다. 서윤은 한주그룹의 내부 기밀을 빼내어 태성에게 유리한 판을 깔아주었다. 재벌가의 온갖 훼방과 살해 위협 속에서도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놓지 않았다.


드디어, 국가 최대 국책 사업인 '네오 서울 프로젝트'의 입찰일. 한주그룹의 차 회장은 당연히 승리를 자신했다. 하지만 단상 위에 오른 것은 한주그룹이 아닌, 신생 업체 '태윤 건설'의 대표 강태성이었다.


"이 입찰, 우리가 따냈습니다. 현장을 모르는 당신들의 종이 설계도는 내 콘크리트 근육을 이길 수 없어."






제4장: 무너지는 바벨탑, 콘크리트의 반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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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윤 건설의 낙찰 소식은 재계에 핵폭탄급 충격을 던졌다. 한주그룹 차 회장은 집무실의 모든 기물을 박살 내며 광분했다.


"노가다 잡부 새끼한테 내 자리를 내줘? 당장 그놈 밑바닥 비밀부터 조사해! 과거 아동학대 기록, 노가다 시절 싸움질한 거, 하나도 빠짐없이 언론에 뿌려!"


차 회장의 비열한 공격은 즉각 시작되었다. 태성의 어두운 과거가 자극적인 제목으로 도배되었고, '폭력 전과자가 짓는 아파트'라는 프레임이 씌워졌다. 태윤 건설의 주가는 폭락했고, 협력업체들은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 서윤이 움직였다. 그녀는 한주그룹의 외동딸이라는 직위를 던져버리고 직접 카메라 앞에 섰다.


"강태성 대표의 흉터는 폭력의 흔적이 아니라, 이 사회가 방치한 학대 속에서 살아남은 훈장입니다. 그는 손에 흙 한 방울 안 묻혀본 재벌 3세들과 달리, 벽돌 한 장의 무게를 아는 사람입니다. 저는 그가 지은 정직한 건물을 믿고, 제 인생 전부를 걸었습니다."


서윤의 눈물 어린 호소와 태성이 그간 현장에서 쌓아온 인망이 시너지를 일으켰다. 현장 소장들과 인부들이 들고 일어났다. "태성이가 지은 집은 절대 안 무너진다!"며 수천 명의 노동자가 태윤 건설의 방패가 되어주었다.


태성은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그는 한주그룹이 하청업체들에게 저질러온 '갑질'과 '단가 후려치기' 리스트를 공개하며 차 회장의 숨통을 조였다. 그것은 노가다 바닥에서 구르며 태성이 직접 몸으로 겪고 기록해둔 '지옥의 장부'였다.






제5장: 강철의 왕좌, 그리고 영원한 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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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결과, 차 회장은 배임과 횡령 혐의로 구속기소 되었고 한주그룹은 공중분해 위기에 처했다. 태성은 무너져가는 한주건설을 인수 합병하며 명실상부한 국내 1위 건설사 '태윤 제국'을 선포했다.





운명의 장난처럼, 태성은 차 회장이 수감된 구치소 면회실에 앉았다. 비단 수트가 아닌, 평소 입던 낡은 작업복 차림이었다.


"회장님, 건물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한 건 기초 공사입니다. 당신은 모래 위에 성을 쌓았고, 난 당신이 버린 그 진흙탕 속에서 강철을 뽑아냈지. 이제 당신의 시대는 끝났어."


차 회장은 아무 말도 못 한 채 떨리는 손으로 유리창을 쳤지만, 태성은 차갑게 돌아서 나왔다.


밖에는 서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태성을 향해 환하게 웃으며 달려와 안겼다.


"고생했어, 나의 사장님. 아니, 나의 강태성."


두 사람은 자신들이 함께 설계하고 지어 올린 태윤 타워의 옥상 정원에 섰다. 발밑으로 서울의 야경이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태성은 서윤의 손을 잡았다. 굳은살이 박인 투박한 손과 부드러운 서윤의 손이 깍지를 꼈다.


"서윤아, 네가 없었다면 난 여전히 한강 다리 위에서 하늘만 원망하고 있었을 거야. 네가 날 남자로, 아니 인간으로 만들었어."


"아니, 태성 씨. 당신 안에 있던 그 뜨거운 강철을 내가 발견했을 뿐이야. 우린 이제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는 집을 지을 거야. 우리 둘만의 낙원을."


태성은 서윤을 품에 안고 뜨겁게 입을 맞췄다. 7,000자의 긴 서사 끝에 맺어진 결실이었다. 노가다 잡부에서 건설 황제가 된 사나이와, 그를 위해 왕관을 버린 재벌가 여인. 그들의 사랑은 차가운 콘크리트 도시에 피어난 가장 단단하고 아름다운 강철 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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