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투잡을 뛰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N 잡은 흔하지만, 그녀의 투잡은 남들과 달랐다. 보통은 퇴근하고 하루에 1-2시간 정도를 투자하는 다른 사람들의 N잡과는 달리, 그녀는 주 5일은 회사를 다니고, 주말에는 약국에 나갔다. 투잡을 시작한 이유는 굉장히 단순했다. 그녀의 남자친구는 군입대를 했고, 그녀의 오빠는 독립하자마자 여자친구가 생겼다. 부모님은 해외에 계셔, 더 이상 그녀의 주말을 채워줄 사람은 없었다.
그녀는 첫 몇 개월은 친구들과, 그다음 몇 개월은 혼자 느긋하게 주말을 보냈다. 그렇지만 그녀는 외로움이 많은 사람이었다. 아무도 만나지 않는 주말이 버거웠고, 힘들었다. 그렇게 그녀는 ‘어차피 늦잠이나 자는 시간’인 주말 오전에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그녀는 약국 일을 시작했다.
사실 주말에 회사를 다니고 주말에 약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은 약사들 사이에서 흔한 일이었다. 그녀의 주변에도 평소에는 회사나 병원을 다니다가도 주말이 되면 약국에서 일을 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암암리에 하는 것이기에 떳떳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그녀보다 먼저 일을 시작한 친구들을 보면서 위안을 삼았다.
그녀는 약국 일을 생각보다 즐거워했다. 학부생 시절, 쾌쾌한 지하 조제실에서 직원들에게 혼나가며 일을 하던 때와는 달랐다. 직원들도, 그리고 손님들도 그녀에게 약사님, 선생님, 하며 그녀를 대우해 주었다. 그녀도 늘 친절과 웃음을 잃지 않았다. 아무리 피곤해도 늘 먼저 안녕하세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를 외쳤고,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느라 일요일에 목이 나가버려도 그 순간에는 진심을 다 했다. 그렇게 그녀는 점차 실력을 쌓아 갔다.
그녀는 여러 다양한 약국에서 일을 했다. 짧게는 한 달, 길게는 2년까지도 한 약국에서 근무하면서 여러 환경을 거쳤다. 그러나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는데, 바로 그녀는 소위 말하는 ‘동네 장사’ 하는 곳으로 많이 다녔다. 그녀는 업무 강도가 중요했다. 아무리 돈을 많이 주어도 아르바이트는 소소한 돈벌이에 불과했다. 그래서 그녀는 돈을 많이 주고 고된, 대학병원 앞에 있는 약국들보다는 소소한 즐거움이 있는 동네약국을 찾았다. 그런 약국에서는 주로 그녀의 어머니, 아버지 세대들의 손님들이 많았다. 그녀는 그들에게 친근한 반말과 애교로 약국을 복덕방처럼 만들어 놓았다.
그녀는 한 때 주 7일 일 한 적도 있었다. 물론 오래가지는 못했다. 6개월 만에 주 7일 생활은 청산했다. 그녀는 약국에서 여러 사람을 만났고, 사람을 대하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었다. 활발한 성격과 여유로운 태도로 손님들을 편안하게 해 준다는 말까지도 들었다. 어느새 그녀는 꽤 유능한 약사가 되어 있었다.
조금 나중의 일이지만, 그녀는 첫 출근을 하는 약국에서도 사장님이 30분 만에 인계를 끝낸 적도 있었고, 두 번째 출근부터 온전히 혼자서 약국 운영을 한 적도 있었다. 사장님은 무엇을 믿고 두 번째 출근부터 그녀에게 약국의 모든 일을 위임한 것인지, 그녀는 당혹스러웠다. 첫날부터 국장님의 수제 뱃살약을 모두 완판 시키고, 피부과와 성형외과 아래에 있는 약국 특성상, 여자 손님이 많을 것을 대비해 변비약세트나 경옥고와 같은 약을 미리 구비해두라는 조언이 그녀를 베테랑처럼 보이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