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자 속 사진을 바라보는 두 가지 방법
영화 <빌리 엘리어트>
영화는 어떠한 이야기이던 간에 감독의 의도에 따라 그 이야기를 풀어내고, 보여줄 수 있다. 현실에서 일어나기 힘든 완전한 판타지(fantasy), 그리고 그 판타지(fantasy)를 통해 관객은 감동과 희열을 느낀다. 이는 등장인물에게 완전히, 또는 어느 정도 이입한 상태에서 일어날 수 있다. 만약 영화에서 다루는 큰 주제나 대상이, 영화의 향유자가 실제로 경험했던 것이라면 어떨까? 상황이나 여러 이벤트에 따라 다르겠지만, 굉장히 다채로운 감정을 가지고 영화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술이나 어떠한 사건 등 특정한 것을 다룬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예체능을 다룬 영화의 경우, 이에 종사하는 이에게 거슬림을 자아낼 수 있는데, 사극에서 고증에 대한 이의가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유도 이러한 맥락 중 하나라고 사료된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는 영국 로열 발레단의 무용수의 실화를 모티브로 하여 제작된 영화로, 발레리노의 꿈을 가진 빌리라는 소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광부로 일하는 아버지와 형, 일찍 여읜 어머니, 치매를 가진 할머니를 돌보아야 한다는 주인공의 환경은 처음부터 관객들로 하여금 안쓰러운 마음을 가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역경을 이겨낼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응원하게 된다. 무용을 매개로 하여 자신이 이루고자 했던 무언가를 궁극적으로 이루어내는, 그리고 반감을 가지고 있던 타인마저도 자신의 꿈과 노력을 이해하도록 만드는 주인공의 성장과정은 관객으로 하여금 주인공 개인의 노력과 성취를 인정하고, 또한 공감하기 충분하도록 만든다.
빌리의 재능을 알아보고 끝까지 응원해준 선생님과, 아들의 앞길을 위해 반대의 뜻을 꺾고 도와준 아버지 덕분에 자신의 꿈을 펼친다는 내용은 사실 예측하기 쉽고 뻔한 내용이다. 그러나 고난과 역경을 딛고 더 나은, 더 높은 미래를 향해 도움닫기를 하는 것 같은 마지막 장면은 가슴에 무언가 차오름을 느끼게 하고, 뻔한 내용도 감동적으로 다가오게 만든다. 백조가 되어 도약하는 빌리의 모습을 보는 가족의 모습을 비춰주며 관객들은 다시 한번 빌리의 열정, 그리고 선생님과 아버지의 진심 어린 도움들을 생각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영화의 감동은 배가 될 수 있었다. 이러한 것들 덕분에, 내용이 어느 정도 유추가 가능했음에도 관객들에게 많은 인상과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주인공이 주변인의 도움과 스스로의 노력, 열정으로 역경을 이겨내고 자신의 꿈을 이룬다는 클리셰는 흔하다. 하지만 흔하다는 것은 그만큼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하기에 효과적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그 클리셰를 어떻게 활용하고 표현하느냐가 중요한 관건이겠지만 말이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는 이러한 클리셰의 활용을 통해 다소 보편적인 도식의 분위기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감동을 가진 이야기로 승화시켰다. 마지막에 백조로 날아오르는 장면은 너무나 아름다웠으며, 누군가에게 한 때의 꿈으로 남아있는, 마치 어린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액자 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뭉클함을 느끼게 할 수 있다고 감히 이야기하고 싶다.
그럼에도 필자는 <빌리 엘리어트>를 감상하면서 가졌던 다소 거슬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발레, 넓게 보면 무용에 대해 어느 정도 혹은 조금이라도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 감동이 더욱 와닿을 수도 있지만, 오히려 거슬리거나 현실성이 없다고 느껴지는 부분들이 상당히 있을 수 있다. 필자는 20살까지 현대무용을 전공하다 부상으로 그만두게 되었다. 때문에 이 <빌리 엘리어트> 라는 영화를 듣거나 볼 때면 마음이 아리다. 하나의 동작을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하는지 알기에, 그리고 그 노력을 통해 한층 성장한 스스로를 보았을 때 얼마나 가슴이 벅찬지 알기에 주인공이 턴 동작을 배우고 연습하고 성공했을 때 정말 많은 감동을 받았고, 다른 전공자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옛 기억, 혹은 현재의 상황에 대입해 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빠의 반대에 발레를 할 수 없게 된 주인공이 개인교습을 통해 오디션을 보러 가게 된 것, 선생님과 싸운 후 발레로 화해하는 것, 집안 형편이 좋지 않음에도 발레로 성공한 것 등은 현실과 많이 동떨어진 부분이 있다고 느껴지며 몰입도가 현저하게 떨어지게 된다. 실제로, 대부분의 입시생을 가르치는 상위 선생님들은 학생 개개인에게 영화에서와 같은 애정을 쏟지 않는다. 하루에도 많은 학생들이 다양한 이유로 포기하고, 시작한다. 무용을 하려는 학생도, 가르쳐야 하는 학생도 많다. 그 학생들 모두 잘 가르쳐 입시 결과가 좋아야 계속해서 다음 학생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한 학생에게 치중한다는 것은 부럽기도, 아름답기도 했지만 현실성이 없게 느껴진다.
선생님과 싸운 주인공이 음악과 춤을 통해 화해하는 장면 또한, 아름다웠지만 영화에 대한 몰입을 자꾸 깨뜨리게 만든다. 물론 내가 경험한 것이 모든 예체능계를 대변한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경험한 입장으로써, 스승님에게 반하는 언행을 하거나 예의를 지키지 않는 행동을 한 주인공 빌리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좁은 무용계에서 제자가 스승에게 예의를 지키지 않는 행위는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빌리와 선생님이 화해하는 것처럼 춤으로 대화하고 서로에게 진심을 전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실제였다면 무용계 퇴출까지도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 영화의 양날의 검인 ‘주인공이 처한 상황’은 극적인 전개를 이끌기도 했지만 단순히 ‘꿈’처럼 느껴지게 만들기도 했다. 마치 꿈속을 걷다 깬 것처럼, 영화가 끝난 순간 ‘아 영화였지...’라는 생각과 함께 몰입이 깨지는 경험을 한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무용을 하기 쉽지 않았다는 설정은 나쁘지 않았으나, 난관을 극복하는 다른 방법을 보여줬으면 오히려 수긍이 갔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실제로 재능의 유무와 관계없이 집안의 어려움으로 인해 중간에 그만두거나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를 영화에서는 홀아버지인 광부의 아들이라는 설정을 통해 잘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학비를 대기 위해 아내의 유품까지 모두 전당포에 맡긴다는 장면까지, 직관적이거나 세세하지는 않지만 얼마나 힘든 여정을 겪어야 하는지는 잘 표현했다. 다만 그 여정을 헤쳐나가는 과정이 ‘무조건 일을 열심히 한다’라는 억지스럽고 막연하기만 한 해결 방법으로 이어진 것은 현실감을 떨어뜨린다.
가장 아쉬운 점은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발레를 잘하기 위해서 ‘그래도’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는데, 그 과정들이 많이 생략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빌리의 모든 동작들이 어설프고 미흡하다. 그럼에도 로열 발레 스쿨에 합격하게 된다. 영화에서는 어설퍼도 의지와 열정으로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현실은 열정보다는 정확한 동작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 정확한 동작까지 이르는 과정은 너무나 고통스럽고 험난하다. 영화 속 주인공 빌리는 발레를 잘하지 못한다. 발레를 배워본 사람은 아마 바로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 빌리가 보여주는 플리에, 파세, 턴, 포인 등 무용의 근간이 되는 동작들은, 각도 하나하나와 미세한 근육까지 신경 쓰는 전공자가 보기에 많이 서투르고, 이제 막 취미로 배우기 시작한 사람 같아 보인다. 일제강점기의 고문을 연상시키는 스트레칭, 한 동작을 완성하기 위한 수없는 노력, 그 동작들을 아름답게 연결하기 위해 상처투성이가 되는 과정이 영화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발레를 연습하기 위한 체력에 대한 언급도 없다. 발레 동작을 연습하기 위해서는 항상 운동선수 못지않게 운동하며 체력을 길러야 한다. 이러한 과정이 잘 안 보이다 보니, 그저 아름다운 하나의 꿈같은 영화, 또는 아이들이 보는 행복한 동화책으로 마음에 남는다. 발레를 테마로 하여 제작한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발레의 요소들을 빠트리는 것이 필자에게는 굉장히 불편하게 다가왔고,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 또한 의아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단순함 덕분에 <빌리 엘리어트>는 대중에게 더 사랑받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은 용어, 장면들은 오히려 영화 관람의 몰입을 방해할 수 있다. 다만 조금만 현실적인 요소들을 더 섞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무언가를 다룰 때 항상 이러한 것들에서 고민을 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실제로 전문성을 요하는 테마를 잘 표현하려면 스토리, 분위기, 비용 등 감독의 의도와 맞지 않는 부분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감독 본인에게, 또는 본인조차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는 영화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럼에도 이 영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고, 사랑받고 있고, 뮤지컬로 재탄생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누구나 지금의 현실을 마주하기 전 꿈을 가지고 있었고, 그 꿈을 안고 노력하며 달리던 때가 있었다. 각자의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꿈을 내려놓고 하나의 빛바랜 사진으로 남겨둔 채 살아가고 있다. <빌리 엘리어트>는 그런 우리들에게 현실에서의 모든 장애물을 던져버리고, 넘어버리며 그 꿈을 이루는 상상을 할 수 있게 만든다. 내가 ‘빌리’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빛은 바랬지만 가장 아끼는 액자에 고이 끼워둔 사진을 꺼내듯이, 가슴 저편에서 숨죽이고 있던 어릴 적 꿈을, 어쩌면 지금도 뛸 준비가 되어있는 그 꿈을 다시 숨 쉬게 만든다. 우리는 어쩌면 거울 속에 비친 어릴 적 나, 빌리를 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