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한국사회에서 숨 쉬는 우리는, 우리가 유년기부터 뼈저리게 느꼈으며 동시에 놀랍도록 오랜 기간 동안 체험한 바 있는 경쟁과 각박함에 대해 망각해버리곤 한다. 사회의 다양한 요구조건에 대해 충족하고, 첨차 사회의 일익이 되는 과정을 ‘사회화’라 표현하지만, 지극히 지양해야 할 비인간적인 목표로 여겨졌던 경쟁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각박함, 절박함, 부정적인 감상들이 비정상적이라고 느꼈던 청소년기의 추억을 뒤로하고 말이다. 이에 우리는 점차 이상주의적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았던 ‘청소년’에서 사회 속 ‘어른’이 되어가지만, 동시에 다양한 가치와 풍부한 시각에 대해 무색해지며, 이러한 변화에 둔감해지고, 이것이 어른이 되는 과정 중 하나라고 여겨버린다. 그러한 ‘청소년’이었던 우리가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를 바라본다면 어떠한 감상을 받을까.
1. 트렌스아이덴티티 및 정체성 전환의 과정
처음, 이 영화의 주인공 '니나'는 순종적이고, 소심하며,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 하지만 동시에 엄청난 행동력과 대범함은 가지지 않은 평범한 소시민적인 사람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단장은 그러한 '니나'의 모습이 흑조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 계속해서 니나를 몰아세우고, 자극하기도 하며 '니나'의 본능과 관능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한다. 백조와 흑조 모두를 연습하고, 타인의 압박을 받는 과정에서 백조와 너무나도 유사한 '니나'의 최초 정체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 과정에서 처음으로 자기 자신, 그리고 누군가의 통제에서 벗어나, 쾌락이라는 감정을 느끼며 스스로가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 그리고 그런 감정을 느꼈다는 것에 깜짝 놀란다. 처음으로 '니나답지 않은 행동'을 한 장면을 보고,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무슨 생각을 했었나? '니나'가 느낀 것과 마찬가지로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 감정과 느낌은 깜짝 놀랐다는 말로 마무리 짓기에는 미묘했다. 이 감정에 대한 의문, 그리고 그 의문에 대한 답과 확신은 아주 조금 시간이 흐른 뒤 갖게 된다.
'니나'가 그토록 피눈물을 흘리며 연습했던 공연인 '백조의 호수' 리허설 전날. 처음으로 엄마의 전화를 무시하고, 일부러 약이 든 술도 마셔보며 남자들과 어울리면서 일탈을 시작한다. 누구보다 성실하고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하던 '니나'의 모습이라고 상상할 수 없다. 집으로 돌아온 후 먼저 동료에게 다가가 잠자리를 가지며 극적인 쾌락을 느끼게 되는데, 악마의 유혹에 걸려든 듯 한 연출과 이에 어우러진 '니나'의 모습은 안타깝다기보다 '드디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앞서 깜짝 놀란 감정 뒤로 어딘가 조금씩 답답함을 느꼈던 나는, 여기서 해방감을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니나'의 변화로 '개운하다'라는 감정이 들지는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원래 나의 개념에서는, '해방감 = 개운함' 이 성립되어야 한다. 하지만 왜 '니나'를 보고 느낀 '해방감'이 찝찝하고 불쾌함으로 남는지, 계속해서 생각해본다.
영화에서는 자신의 역할과 위치를 빼앗길 수 있다는 불안감, 그리고 주위의 끊임없는 압박으로 심한 환청과 환각을 겪게 되는 '니나'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숨 가쁘게 변화하는 '니나'의 심리를 따라 영화 안에서도 다양한 대비와 극적인 전개가 진행되는데, 어머니와 단장을 통해 통제와 해방을, 동료를 통해 동경과 질투를 동시에 모두 담아내며 보는 이 마저 환상과 현실을 넘나들게 한다.
공연 당일, 엄마는 '니나'의 상태가 정상적인 것이 아님을 느껴 집에서 쉬라고 하지만, 폭력적인 방법으로 엄마를 뿌리치고 공연장에 도착한다. 벌써 자신의 경쟁자이자 질투를 느꼈던 동료가 자신을 대신하여 주인공 자리에 설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본 니나가 단호하게 자신이 흑조의 역할을 하겠다고 이야기하는데, 그동안 순종적이고 여리기만 했던 니나가 처음으로 단장에게 단호한 모습을 보여준다. '니나'의 분명한 변화를 알아챈 단장은 '니나'를 무대에 올리기로 결정한다. 확실히 처음과는 너무나도 다른 '니나'의 모습은 이제 점점 공포심까지 자아낸다.
결국 자신의 위치를 위협하던 동료를 죽이고 시신을 은폐한 상태에서, 관능적이고 자유로운 흑조의 연기를 완벽하게 해낸다. 악행을 저지르고 누구보다 추악한 행위를 한 후, 자유롭고 완벽한 공연을 해내는 '니나'의 모습에서 흑조를 연기하는 것이 아닌 흑조 그 자체가 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알고 보니 '니나'가 찌른 것은 동료가 아닌 자기 자신이었고, 백조로서의 자신을 죽이게 된다. 결국 최초의 모든 모습을 갈아엎고 드디어 자신의 모습을 찾아 완벽하게 무대를 마친 '니나'는 드디어 '완벽함'을 느끼고 그제야 만족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2. 트렌스아이덴티티 이론과 영화 블랙스완
지금까지 주인공 '니나'가 보여준 정체성 변화의 과정을, 트랜스아이덴티티 이론에 입각하여 조금 더 자세히 분석해보고자 한다.
먼저, 이종현 교수의 ‘트랜스아이덴티티 스토리텔링 기반 한국 장르영화 연구’ 논문에서 보면, 아리스토텔레스 및 프로프와 그레마스의 서사구조에 대한 논의를 통해 트랜스아이텐티티 콘텐츠에 대한 정체성 전치 및 정체성 역전 유형 서사구조를 분석하면서 이를 도식화했다. 이 연구는 도식화의 관점에서 시작하는 것이지만, 서사 속에서 변곡점을 통해 인물이 변화하고, 극의 분위기나 서사의 방향이 변하는 것을 중시하고 있다. 따라서 저 정체성 전환, 즉 변곡점이라는 것은 인물과 극의 향방에 있어서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인 동시에 극의 도식화를 진행할 수 있는 요소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인간의 진정한 성격이 발현되기 위해서는 여러 번의 압력과 그에 따른 선택과 행동이 수반되어야 한다며, “인물의 내적 본성이 드러나면 더욱더 거대한 압력을 가하고, 인물은 점점 더 어려운 선택을 하고, 이야기의 절정에 도달할 무렵 일련의 선택들은 인물의 인간성을 극적으로 바꾼다.”라는 로버트 맥키(미시간대학교 대학원 연극예술 박사)의 말을 재인용 한 바 있다(Robert McKee, 1997, 이종현, 2019에서 재인용). 주인공 '니나'가 단장, 경쟁자, 엄마에게서 받았던 압력과 이를 통해 점점 변화하는 모습을 이론에 입각해 생각해 보면 퍽 흥미로운 부분이 아닐까 싶다.
앞서 언급한 연구와 도식으로 영화 블랙스완을 조금 더 세분화해보면, '니나'의 원래 정체성과 유사한 백조가 아닌 흑조의 모습을 이끌어 내기 쉽지 않아 힘들어하는 부분을 1막으로 볼 수 있고, 감독의 압력과 유혹, 즉 니나의 본능을 이끌어내기 위해 성(性)적인 부분을 자극하는 부분이 2막의 시작이자 변곡점이 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2막의 중간에서, 친구와의 일탈을 통해 반항하며 억눌려 있던 욕망을 폭발시키는 장면을 볼 수 있고, 친구이자 경쟁상대로 의식하던 무용단 동료를 죽이고 시신을 은폐, 완벽한 흑조의 모습을 갖추는 부분이 정체성의 전환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환각이었고, 결국 백조의 모습인 자신을 유리로 찌른 것임을 자각한 '니나'가 백조인 자신을 찌른 채로 완벽하게 무대를 마친 후 죽음을 맞이하며 3막이 끝이 난다.
3. 니나의 정체성 전환을 통한 현대사회의 문제 조명
우리가 최초에 영화에서 불쾌감을 느끼는 것들은 소시민적인 니나의 모습보다는 니나를 억압하는 다양한 가치나 요소들에서 나온다. 영화 초반에는 지나치게 억압하는 엄마, 단장의 압박에서 순종적이고 여린 니나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많이 조명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타인의 의도와 요구에 따라 극단적으로 변화하는 '니나'의 모습을 보면서 공포와 더불어 불쾌를 느끼게 된다.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며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해하며 자신을 망가뜨리는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공포와 불쾌함을 점진적으로 많이 느끼게 한다. 결국 다양한 요소들, 억압이나 요구들로 인해 주인공의 정체성이 변화를 겪으며 우리가 느꼈던 불쾌감이나 공포의 대상이 단장이나 엄마와 같은 주인공의 주변 환경에서 주인공 자체로 바뀌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결말에서 주인공의 죽음에 불쾌감과 더불어 알 수 없는 쓴맛을 느끼는 이유는, '니나'의 극단적이고 편집증적이며 결과를 쟁취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에서 현대사회의 우리를 발견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니나'가 하는 행동은 객체 객체가 완전히 유사한 것은 아니나, 결과적으로 니나의 행동의 총체는, 일상을 수행하며 다양한 요구와 억압에 따라 사회에 순응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행위하면서도 스스로에 대한 억압과 스트레스를 발산하는 우리의 모습과 유사하다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결론적으로 ‘블랙 스완’은 스릴러 영화로, 이 영화는 줄곧 보는 이로 하여금 공포와 불쾌를 느끼도록 유도한다. 최초에 느끼는 공포는 유약하고 소시민적인 '니나'가 타인의 영향을 받음에 따라, 니나를 극단적으로 몰아넣는 타인에 대한 것이었다면, 극이 진행됨에 따라 타인의 의도와 요구에 따라 극단적으로 변화하는 니나의 모습이 최종적인 원인이자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불쾌의 전말은, 비단 불쾌한 형태로 변화한 니나의 모습뿐만 아니라, 변화한 니나의 모습이 현대 사회의 지나친 요구와 경쟁 속에서 극단적이고 속물적이며, 비도덕적으로 변화해가는 개인의 모습임을 짐짓 깨닫는데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나 자신이 현대사회에 순응하고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사람이 돼가고 있는 것을 스스로 자각했기에, 조금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니나의 모습이 결국 내 모습임을 알고 있기에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니나에게 혐오감과 공포감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결말에 이르러서는 니나의 모습이 비일상적인 것으로 다루어진다. 사실 니나가 하는 행동은 현대사회에서 경쟁하는 타인에게 승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다양한 행동들을 극대화 한 행동들이다. 따라서 이러한 니나의 행위 자체가 극단적이고 자연법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행위이기에 공포와 불쾌를 느낍니다. 그러나 결말에 이르러 니나를 보며 우리가 느끼는 기묘한 불쾌함은, 우리의 일상이 그 극단성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니나가 경험하고 행위하며, 일탈하는 그것과 유사함을 깨닫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으로 되돌아가, 극 중에서 다양한 곡절을 겪는 주인공 ‘니나’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때 묻지 않은 과거 어느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니나’는 ‘사회화’된 우리의 모습처럼, 이내 ‘어른’의 모습을 통해 보는 이의 마음속 어딘가를 불편하게 만든다. 마치 주도적이지 않으나 순수한, 청소년기의 우리가 현재의 우리를 바라보며 느낄 그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