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에서 일하는 자들은 모두가 공감할 '발령'시스템에 대하여.
우리 회사는 전국에 20개 넘는 지점이 있다. 본사를 포함해 어느 지점으로 누가 언제 발령날지, 뚜껑은 11월 인사발령지를 열어보는 순간까지 알 수 없다. 이 직업이 가진 가장 큰 단점이다. 매년 인사발령의 가능성을 가지고 가기 때문에, 인생의 중장기 계획을 세울 때마다 늘 번거롭다.
아니, 장점도 있다. 나와 맞지 않는 동료, 특히 상사! 를 피할 수 있다. 지금 너무 안 맞더라도 1~2년만 버티면 대게 그 사람과의 근무는 끝이 난다. 언젠가 갈 사람이기 때문에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된다.
유통업계의 발령 시스템은 소위 말해 '고인물' 방지를 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전국에 많은 지점을 두고 있다보니 한 점포에 한 사람이 너무 오래 있다보면, 새로움에 대한 열망이 줄어들고, 영업적으로 해이해짐은 물론, 극단적으로는 부도덕한 사고 사례까지 나올 수도 있다고 한다. 한 점포에서 만 3년을 채워가는 지금, 이 설명이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한다.
5년 전 회사에 입사 후, 3개의 지점을 경험했다. 그 중 한 번은 아울렛에 있었다. 아울렛 중에서도 시티아울렛이라고 불리는 이 점포는, 다른 건물에 우리 아울렛이 임차해서 입점해 운영하는 형태였다. 백화점보다도 아울렛, 그 중에 프리미엄 보다도 시티아울렛은 매출 규모도 현격히 적을 뿐더러, 회사의 관심이 아주 적은 곳이다. 내가 처음 이 지점에 발령받은 시점은, 기존 운영인원을 절반으로 줄이는 실험적인 운영을 시도한 첫 해였다. 막내 주임으로 이 지점에 첫 출근을 했고, 집에서 60km 떨어진 곳을 통근하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회사 내부 사정으로 약 2주를 꼬박 휴일 없이 출근을 하게 됐다. 10일차쯤, 밤 늦게 홀로 사무실에서 야근을 하다가 메신저창의 조직도를 보게 됐다.
회사 전체 조직도다 보니 맨 위에는 명예회장이 있었고, 그 밑에 회장, 사장단이 이어졌다. 밑으로 주욱 내려 '영업본부'를 더블 클릭했다. 서럽게도 아울렛은 여기에 있지 않았다. 그보다 더 밑, 가장 아래에 '아울렛사업부'를 클릭하자, 전국에 위치한 아울렛들이 나왔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아래, 내가 발령받은 아울렛이 있었다. 역시 더블클릭하니, 그 아울렛의 점장, 팀장이 나왔고, 다시 더블 클릭을 하니 팀원들이 나왔다. 그 중에서도 나는 가장 아래에 위치해 있었다.
소위 말해 '현타'가 온 시점이었다. 회사에서 내 위치는 이 큰 회사의 가장 말단이었다. 그 때가 입사한지 1년 반 정도 되었던 시점이었는데, 회사에 야속한 마음도 들고 당장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나름 열심히 회사를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이 상황은 뭘까? 늦은 나이에 입사했으니 그만두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걸까?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발령이란 시스템이 이렇다. 온갖 생각을 다 들게 한다. 올해 나는 또 다른 지점으로 발령을 또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