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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정원 Jul 09. 2024

4. 이 또한 지나가리라

잘 나갈 때 까불면 안 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라는 명언은 고통스러운 순간을 인내하기 위한 지침의 역할도 하지만, 자칫 자만해질 수 있는 순간을 경계시켜 주는 경고의 문구가 되기도 한다. 이 명언이 나오게 된 유래도 알렉산더 대왕이 두 상황에서 모두 쓸 수 있는 말을 가져오라고 지시한 것이지만, 이상하게도 보통은 안 좋은 상황에 이 말을 통해 누군가를, 또는 자신을 위로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직장생활을 하며 느낀 가장 큰 진리(라기 보다는 나만의 철학)는 안 좋은 상황을 잘 헤쳐나가는 것 보다, 좋은 상황에 취해 겸손할 줄 아는게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이다. 주변인일 때도 그렇다. 나쁜 상황의 동료를 위로해주는 것 보다, 좋은 일이 생긴 동료를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게 더 어렵다. (나만 그렇다면.. 그만큼 내 그릇이 작은 것으로..^_^)


 앞서 말했듯 백화점에서 일하다 보면 보통 순환을 겪는다. 좋은 상사를 만나 더 좋은 보직으로 가기도 하고, 마침 좋은 자리가 생겨 알맞은 연차의 사원이 그 자리를 꿰차기도 한다. 물론 업무능력이 높을 수록 좋은 자리로 갈 확률이 높다. 하지만, 과연 수 천명의 직원들이 공평한 업무능력 평가를 통해 순차적으로, 소위 말해 좋은 보직에 배정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렇다하더라도 과연 그 차이가 드라마틱하게 클까? 난 절대 아니라고 본다.


 물론, 운도 실력이다. 어렸을 때 무한도전에서 박명수가 노력보다 운을 강조할 때면, 그리고 그걸 보고 사람들이 열광할 때면 기분이 나빴던 적이 있다. 노력을 폄하하는 것 같았고, 노력을 한다면 안 되는게 없다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난 지금도 노력의 가치를 믿는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점을 믿는다. 하지만 지금은 노력만큼이나 그 노력을 인정해줄 주변인을 만날 타이밍과 운이 결정적으로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


 이 점을 인정해야 겸손해질 수 있다. 지금의 자리에 내가 있는 것은 내가 다른 이들보다 뛰어나서가 아니라, 그저 조금의 운이 더 따라준 것임을 스스로 인지하고 인정해야 한다.


 신입사원 때, 가만히 있어도 매출이 잘 나오는 코너를 맡은 적이 있다. 광고와 프로모션, 각종 행사를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루틴적인 일들이었다. 내가 그 자리에 없다고 하더라도 이루어졌을 일들 말이다. 그게 나의 업적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신입사원 치고 일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더랬다. 그 때의 나를 바라보는 주변인들의 심정이 어땠을까를 떠올려보면 부끄러움에 몸서리 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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