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르모에 머물면서 하루키는 몇 번의 오페라 공연을 봤는데 막시모 극장이 지나치게 커서 더 작은 극장을 이용했다고 한다. 시칠리의 문화 수준을 말해 주듯 막시모 극장 또한 이탈리아 최대이고 비엔나, 파리에 이어 유럽 3대 오페라 극장에 속한다. 이렇듯 크고 멋지기도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대부 3 편의 주된 배경이 된 곳이라 방문 일정이 잡힌 것 같다.
여러 개의 계단 끝에 신전처럼 여섯 개의 웅대한 기둥이 버티는 건물로 들어가게 된다. 저녁 시간에는 조명으로 더욱 휘황찬란해질 것이다. 걸어 올라 가는데 어떤 예술의 세계를 방문한다는 설렘이 생긴다. 이런 마음의 준비도 좋은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비엔나에서는 유서 깊은 오페라 하우스를 만나는 기대감으로 잔뜩 부풀었다가 너무 빨리 도달하는 바람에 얼떨떨했다. 비엔나 극장 건물은 전철 입구에서 나오자마자 떡 서있고 들어가는 곳도 바로 도로변이다. 내부는 무척 넓고 쾌적했지만.
우리가 극장 1층에 앉아서 안내인의 설명을 들을 때 무대에서는 오케스트라가 부분 악기 연습을 하고 있었다. 화려한 내부 장식을 훑다가 모두의 시선이 원형의 천장화에 멈췄다. 유명 미술관에 그려져 있는 작품과 흡사해 보여서 고개가 아플 때까지 바라보았다.
촬영 장소로 쓰였을 뿐이지만 마치 오래전 영화 속 그 사건들이 실제로 일어난 곳인 것처럼 느껴졌다. 대부 3 편 스토리를 따라 여기저기를 둘러보게 된다. 2층 발코니석을 바라보며 저기 저 자리에 마이클 꼴레오네 가족이 앉아 있었지 하면서. 일반적인 설명이 끝난 후 2층으로 안내되었다. 로얄석 앞 복도는 널찍하고 세련되게 귀족의 응접실처럼 꾸며져 있다. 마이클의 여동생 코니가 돈 알토벨로 어르신에게 맛있는 쿠키를(독이 든) 선물하는 장소다. 로얄석 박스에서는 서로들 마이클과 메리의 자리에 앉아도 보고 사진도 열심히 찍었다. 이 좌석의 관람 티켓은 70유로 정도라고 한다. 빨리 매진되겠지만.
대부 3 영화 후반에는 무대에서 <까발레리아 루스티카나> 극 중 주인공들이 갈등의 아리아를 부를 때 관람석에서는 메리와 새 보스 빈센트가 눈빛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아픔을 나눈다. 좌석 뒤와 복도에서는 마피아 단원들이 생사를 오가며 긴박한 대결을 벌이니 참으로 몇 차원의 입체적 스토리 구성이다.
뒤마의『몬테크리스토 백작』에서도 오페라 극장의 로얄석에서 남녀 간의 새로운 관심과 사랑의 발단, 비밀공작이 시작된다.
요사이 극장 로얄석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요즈음은 그저 일차원적으로 공연 관람만 이루어지는 싱거운 장소인 것 같다. 고작해야 썸 타는 곳 정도이지 않을까? 좁은 세계에 살고 있는 나의 시각에서 헤아리는 범위일지 모르겠다. 현재도 극장의 로얄석에서 조용히 다차원의 어떤 사건이 진행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고 보니 서울의 오페라 극장에는 박스형 로얄석이 없다. 모두 열린 공간이다. 재미없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