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르 보물 도난 장면
10월 19일 루브르 박물관 아폴로 갤러리에서 프랑스 왕실 보석 여덟 점이 털렸다. 대낮에 관람객이 있는 상태에서 벌어진 범행이었기에 온 세상에 놀라움을 주었다. 모럴 빵점이지만 스릴 만점이어서 사람들에게 다양한 방식의 감동을 선사한 것 같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션 임파서블>을 연상했을 것이다. 전동 뻰치로 능숙하게 창과 진열함의 유리를 절단하고, (레이저 절단이 아니라 영화보다 구식이지만) 그 기구로 총성 한발 없이 경비원을 위협하고, 스르륵 사다리차를 타고 내려와 전동 스쿠터로 옮겨 탔다. 우리는 비슷한 장면을 너무도 자주 봐왔기에 다음 광경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복면과 건설 노동자 작업복을 벗어젖힌 티셔츠 차림의 탐형이 유유히 세느강변을 질주한다. 스치듯 지나가는 경비원과 경찰차에 가벼운 미소를 보내며.
어떤 사람은 고전의 한 대목을 떠올리며 감탄할 것이다. 밤 시간이 아니었기에 '상대방의 허를 찌른다'는 손자병법의 핵심 용병술과 일치한다며.
적이 방비하지 않은 곳을 공격하고, 적이 생각하지 못한 곳으로 출격해야 한다. (攻其無備, 出其不意)
굵직한 회사의 영리한 홍보팀에서는 잽싸게 광고 카피 아이디어를 끌어냈다. 이케아는 보석함 광고를 교체한다.
“당신의 가장 소중한 보석을 지키기 위해, 어마어마하게 비싼 보석에도 써보세요.”
범인들에게 간택받은 독일 사다리차 업체 뵈커는 도덕성을 무시하고 루브르 박물관 외벽의 사다리차 현장 사진을 그대로 이용했다.
“급할 땐 딱!”
나는 한 때 푹 빠졌던 프랑스 작가 기욤 뮈소가 떠올랐다.『당신 없는 나는?(Que serais-je sans toi?』 첫 부분에 파리 오르세 미술관의 고흐 <자화상> 훔치는 장면이 나온다. 마치 영화를 보는 듯 박진감 있게 묘사돼 있다. 전설의 도둑 아키볼드는 10월의 주인공 보다 더 빠른 시간에 일을 해치우고, 파리 시(市)의 따릉이로 갈아탄다. 선선히 경찰들과 마주치며 센강 좌안을 누비면서.
아키볼드는 무려 25년 동안이나 전 세계 미술관 관계자들의 식은땀을 빼왔고 경찰을 조롱해 왔다. 그때마다 그만이 구사할 수 있는 독창적인 방법이 동원되었다. 그 결과 절도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감탄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그는 절대로 폭력에 의존하는 법이 없었고, 단 한 발의 총성이나 단 한 방울의 피를 흘리지 않고 일을 처리했다.
아키볼드는 철책 아래쪽을 기어 나와 유유히 미술관을 빠져나갔다. 작전에 소요된 시간은 불과 5분이었다. 그에게 5분은 고흐의 자화상을 벽에서 떼어내고도 남을 만한 시간이었다.---
그들은 방금 전 자전거를 타고 스치듯 지나간 남자가 그들이 체포하기 위해 온 도난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단 일초도 하지 않았다. #
방송에서 라시다 다티 문화부 장관은 이번 사건의 범인들에게 프로(전문가)의 호칭을 주었다. 창문을 절단하고서 4분이 채 안 됐고, 사다리차 주차 시점부터는 6-7분밖에 걸리지 않았다며. 뮈소의 책에서는 내무부 장관이 부하들을 꾸지람할 때 같은 어휘를 사용한다.
“다들 아마추어야. 전혀 프로답지 않아요.” 내무부 장관은 미술관장과 보안과장, 그리고 경찰서장 그리고 OCBC 국장에게 번갈아 삿대질을 해대며 닦달을 계속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까? 경찰이 두 눈 부릅뜨고 경비망을 펼치고도 범인을 놓쳐버린다는 게 말이 됩니까?” 장관이 다시 목청을 돋우었다. #
기욤 뮈소는 1990년 보스턴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미술관 도난 사건에서도 힌트를 얻었나 보다. (렘브란트의 그 유명한 <갈릴리 바다의 풍랑> 이 사라진) 레베카 스튜어트 재단(가명)에서 아키볼드가 렘브란트 작품을 훔쳤다는 대목도 있다.
순서로는 작가들이 그들의 행적에서 아이디어를 얻기 훨씬 전에 도둑들이 먼저 책과 영화에서 도움을 얻었을 것이다. 이번 루브르 사건은 몇 가지 면에서 넷플릭스 시리즈 <뤼팽>의 첫 장면과 흡사하다. 절도를 위해 루브르 청소원으로 분장한 주인공 아산이 전시실 유리 박스에서 빛나는 조세핀 왕비의 목걸이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10월의 미션을 위해 범인들이 아폴로 관을 사전 답사 했다면 똑같은 포즈와 시선을 취하지 않았을까? 아마 더욱 치밀하고 번뜩이는 눈매였을 것이다. 절도범과 시나리오 작가, 소설가 사이의 이 은밀하고 끈끈한 상부상조!
그러니 대도(大盜)들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창의성으로 인해 또는 미션 임파서블을 현실화한 실력 때문에 수면 아래서 사람들의 경외를 받는 것 같다. 문화유산을 침해한 커다란 죄 값을 피할 수 없겠지만.
지금 모두가 우려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왕비들의 목걸이, 귀걸이와 왕관에 박힌 다이아몬드가 낱낱이 분해되는 것이다. 장물들이 너무 유명해져서 지하시장에서 필 수 없으므로 낱개로 처리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러면 역사적 가치를 가진 귀한 문화재가 마음 아프게도 그대로 소멸해 버린다.
벌을 감면받고 홍길동처럼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한번 상상해 보았다. 만약에 사 인조 강도의 궁극적인 두목, 피라미드 끝의 일인자가 혹시 예술과 문화를 존중하는 로맨티시스트라면? 그래서 이 패물들을 그대로 보존하기로 결정한다면?
“1회성이지만 이 보석으로 꾸민 당신을 보고 싶었습니다. 나의 황후가 되어 줄래요?”
비밀의 화원에서 그의 애인에게 외제니 왕비의 티아라를 씌워주고, 마리 루이즈의 목걸이. 귀걸이를 걸어 주며 사랑의 프러포즈를 한다. 목숨을 건 일생일대의 세리머니를 끝마친 후 루브르에 되돌려 주는 후반 미션에 돌입한다. 보안을 질책하는 편지 한 장과 함께.
“사각지대 많은 CCTV와 적은 수의 경비원 덕에 작전이 수월했습니다.”
반납 작전까지 성공하면, 정부는 부랴부랴 박물관 경비에 예산을 더 할당하고, 그는 프랑스의 색다른 영웅이 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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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없는 나는?(Que serais-je sans toi?』 기욤 뮈소 지음 허지은 옮김, 밝은 세상, 2009
## 루브르 도난에 대한 많은 정보들을 유튜브 슈카월드의 10월 29일 자 방송
<사상최대의 도난 사건, 루브르 박물관은 어떻게 털렸나>에서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