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사또를 아십니까? (2)

사또服을 입은 연암

by 램즈이어

## 슬기로운 싱글 라이프


안의현에 부임할 때 박 사또는 55세로 아내를 여읜 지 5년 째였다. 자주 친구들을 불러 함께 글과 술을 즐겼지만 혼자만의 시간도 잘 꾸려가야 했다. 그러니 심지어 아들네를 위해 고추장까지 담갔으리라. 독서 외에는 지리산과 그림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소일한 것 같다. 특히 스트레스받을 때 명인(名人)의 병풍 속 그림을 하루에 열 번이 넘도록 완상(玩賞)했다고 한다. 홍시를 좋아하는 대목도 나온다. 예나 지금이나 당(糖) 떨어지는 순간에 요긴한 녀석이다.


부디 그대는 흥이 나면 한번 찾아와, 이 동산에 가득 찬 죽순을 나물로 데쳐 먹고 개천에 가득한 은어를 회 쳐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며, 맑은 물이 굽이도는 물 위에 참말로 술잔을 띄워 흘려 보구려.


날마다 방장산(지리산)을 대하고 있노라면, 그 푸른 장막을 드리운 듯한 모습이 문득 변하여 푸른 도자기 빛이 되고, 또 얼마 안 가서 문득 파란 쪽빛이 되지요. 석양이 비스듬히 비추면 그 빛이 또 변하여 반짝이는 은빛이 되었다가, 황금빛 구름과 수은빛 안개가 산허리를 감싸면서 수만 송이 연꽃으로 변하여 하늘거리는 광경은 --- *

박 사또는 친구에게 중국 옛 시인 임포를 들먹인 적이 있다. 매화를 아내 삼고 두루미를 벗 삼았다(梅妻鶴子)는 그처럼 자신도 매화를 화분에 기른다면서. 여기에 파초까지 더하며, 파초의 매력을 낱낱이 열거하기도 한다. 베란다 식물들을 자주 목마르게 하는 내게는 공인의 감동스러운 면면이다. 박희병 교수님 말씀처럼 대 문장가의 이면에 숨어 있는 꼭닥스러운 성품일 수도 있고, 아내를 향한 그리움의 처방 일수 있겠다.


## 박 사또의 글벗 모임


“박지원은 평생 조그만 집 한 채도 없이 궁벽한 시골과 강가를 떠돌며 가난하게 살았다. 이제 늘그막에 고을 수령으로 나갔으니 땅이나 집을 구하는데 급급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듣자 하니 정자를 짓고 연못을 파서 천리밖에 있는 술친구와 글 친구들을 초대하고 있다니, 문인의 행실이 이처럼 속되지 않기도 참 어려운 일이다. 또 들으니 고을 원으로서의 치적도 또한 퍽 훌륭하다는구나.” ** (박종채가 기록한 정조의 어록에서)


박 사또를 중심으로 자연스레 만들어진 안의현 글벗 모임은 인기가 많았던 모양이다. 사또가 손수 조성한 연못의 수려함에다가 탁월한 인문학도들이 끼리끼리 모였을 터이니. 궁궐에까지 소문이 나서 정조도 이 모임을 환히 알고 있었다. 백탑파 멤버 중에 박제가만이 조정일을 보느라 가보지 못했는데, 임금이 어느 날 그를 불러 안의에 다녀 오라며 휴가를 준다.** 규장각을 만들고 자신도 학구파들과 학문적 논쟁을 즐기던 터라 또래 모임에 대한 문인의 갈급함을 눈치챘을 것이다.

정조의 살뜰함에 반하다가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임금도 맘 속으로, 혹은 무의식 가운데 안의현의 글벗 모임을 사모하지 않았을까? 미복잠행이 어려운 시절이니 꿈속에서라도 그 모임에 끼어 뱃놀이하며 시(詩)를 주고받지 않았을까? 비록 공식적으로는 '문체반정' 하면서 [열하일기]의 문체를 비난했지만, 맘 한 편으로는 연암의 매력에 빠져 존경하고 있음이 문헌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 을묘년에 박 사또는?


정조는 1795년 을묘년, 어머니 혜경궁 홍 씨의 회갑을 기념해 화성 행차를 단행했다. 이 시대 문화 황금기를 이끈 거두(巨頭)들 덕분에 역사적으로 길이 남는 세리머니가 되었다. 다산 정약용은 프로젝트 매니저로, 단원 김홍도는 다큐 제작으로(화성능행도 그림) 기여했으나 삼두(三頭) 중 하나인 연암 박지원은 이 자리에 있지 못했다. 천리 밖 작은 마을에서 사또 임무를 수행하느라.

왕(王)은 이 회갑연의 후속으로 전국 70세 이상의 양반과 서민에게 품계를 하사했다. 안의현에서는 91세까지 50명이 해당되었고, 박 사또는 임금의 은혜에 보답하는 사은숙배(私恩肅拜)의 행사를 계획한다. 고희를 넘긴 신참 관리들 뿐 아니라 이네들 자자손손까지 관아로 초대하여 융숭한 잔치를 베풀던 풍경을 아들 박종채가 글로 남겼다.


아버지께서 공복 차림으로 주인의 자리에 앉으시자 여러 노인들이 차례로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따라온 여러 사람들 역시 따로 자리를 마련하여 앉게 했다. 아버지는 꿇어앉아 소매를 높이 들어 나라에서 노인을 우대하는 뜻을 말씀한 다음 다시 몸을 굽혀 머리를 조아리고 나서 앉으셨다. 듣는 사람들은 대부분 은혜에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 이에 잔치를 베풀고 술을 내오게 하였다. 이 날 구경꾼들이 관아를 삥 둘러쌓는데, 다들 생전 처음 보는 성대한 행사라고 하였다. (p117) **


여기까지는 여느 사또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박 사또는 깜짝 선물까지 마련한다. 노인들 숫자만큼 대나무를 베어다가 꽃, 새, 나비, 풀 등을 인두로 그려 넣은 지팡이를 만들어 둔 것. 안의현의 이름 없는 장인(匠人)이 새긴 화조도(花鳥圖)라 할지라도 이렇게 고상한 선물은 방방곡곡에 례가 없었으리라.

을묘년에 정조가 남긴 <화성능행도>는 여러 군데 국립 박물관에서 후세의 우리들을 사로잡는다. 화려하고 섬세한 채색에다 효(孝) 충(忠) 애민(愛民)의 메시지를 담아서.

임금은 이 행사가 다른 차원에서도 성공했음을 알지 못했다. 시골의 충실한 신하가 그 나름 왕의 의중(意中)을 헤아려 메아리침으로써. 그 자그맣던 소리는 아들을 거쳐 대대로 내려와 오늘날 [과정록]의 행간에서 풍부하게 맴돌고 있다. 글이 그려내는 <안의 품계 향연도>는 김홍도 못지않은 솜씨로 나라의 고마움, 나이 든 이를 공경함, 가족의 귀중함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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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조선의 시를 쓰라』 박지원 지음 김명호 편역, 돌베개, 2007년

** 『나의 아버지 박지원』 박종채 지음 박희병 옮김, 돌베개, 1998 <과정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