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필하모니 관현악단의 연주를 한국에서 들으려면 40만 원 정도 들지만 현지에선 50유로(7만 원) 정도면 된다고 한다. 이번 기행 중에 베를린 필 콘서트 홀에서 말러교향곡 6번을 듣는 여정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버켓 리스트를 이룬다며 기뻐했지만 나는 이만 저만 걱정되는 것이 아니었다.
과거 연주회에서 약한 공황장애가 와서 힘들었던 후로 클래식 공연을 잘 가지 않는다. 더구나 어려워서 늘 사양했던 1시간 30분의 말러 교향곡 이라니.
곡을 즐길 수 있으면 좀 나으려나 싶어 미리 세 번 정도 들었다. 1악장이 웅장함과 감미로움이 교차하며 즐길만한 것 같아 30분 감당하고 짧은 2악장까지 듣고 인터미션에 나와 버리자는작전을 짰다.
당일 날에야 교향곡은 중간에 쉬지 않고 4악장까지 내쳐 연주한다는 것을 알았다. 오도 가도 못하고 큰일 났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어서 자낙스라는 안정제를 먹고, 전전날 나부코를 무사히 봤다는 자신감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콘서트 홀은 명성에 걸맞게 무대 앞뒤로도 객석을 배치하며 시원하고 널찍했다. 무대 가까운 3층 옆 좌석이라 모든 악기 모습이 환히 내려다 보였다. 마음을 잡으려고 숫자를 셌는데 호른 9명, 바순 5명, 첼로, 칸트라베이스는 각각 8명 등. 우리 쪽 바로 아래에 있는 하프 두대와 딸랑거리는 타악기는 얼굴을 볼 수 없다.
지휘자 켄트 나가노를 맞이하는 박수에 이어 쿵 쿵 웅장하게 전진하는 리듬으로 1악장이 시작되었다. 생음악으로 들으니 소리가 대단해서 설렘 속에 음악에 차차 몰입이 되었다. 곡도 원래 그렇겠지만 모든 연주자들이 독일식으로 박진감 있게 정열을 쏟아내니 로맨틱한 부분까지도 씩씩했다.
1악장이 금세 지나고 2악장은 15분 정도로 수월했는데 뭔가 모르게 긴장감이 쌓여갔다. 그때 옆자리 대표님이 어떻게 눈치챘는지 박하사탕을 하나 건네주었다. 3악장은 박하의 힘으로 넘어갔다.
4악장이시작되자 갑자기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사분의 삼을 감당하고 한 악장만 남았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뿌듯해지면서 모든 불안과 긴장이 사라졌다. 음악이 살아 움직이며 마음과 머릿속을 감쌌다. 대단한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러니 말러 마니아가 있나 보구나.
마음이 편해지니까 연주자들의 움직임도 더욱 민첩하게 좇을 수 있었다. 타악기를 비롯해서 모든 악기들이 총동원하여 쾅하며 센 박자를 표현하는 부분이 두 군데 있다. (마치 천둥소리를 만들어 보겠다는 듯이)
이론으로만 듣던 망치를 처음 보았다. 점점 세게 가 고조되자 드럼 주자가 슬그머니 뒤로 가더니 커다란 나무망치를 온 힘을 다해서 꽝하고 두드리지 않는가. 도끼로 장작을 패듯, 아래의 나무 판을. 딴생각을 하거나 졸고 있었다면 화들짝 놀랐을 것이다.
혼신을 다해 연주를 마친 분들께 손뼉을 치는데 한편으로는 나 자신에게 박수를 치는 기분이었다.
본고장의 관현악단이 연주하는 말러 곡을 소화했다는 것, 밀집 공간 공포증을 이겨낸 것 때문에 기쁘고 뜻깊은 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