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의 아내

비텐베르크에서

by 램즈이어

베를린 가는 길에 비텐베르크의 루터 하우스를 방문했다. 종교개혁 역사의 현장을 직접 보는 것도 뜻깊었지만 이번에는 루터의 아내 카타리나 폰 보라에게 관심이 갔다.

터는 레어나드 쾨프라는 사람의 도움을 빌어 강제로 수녀원에 보내진 몇 명의 수녀들을 탈출시킨 적이 있다. 청어 수레 생선 궤짝 사이에 숨겨 왔다고 한다. 그 가운데 보라가 있었다. 이들은 가정에서 (카톨릭 교회법 위반이라며) 받아주지 않아 난감한 채로 있다가 루터의 친구들과 차례로 결혼했다. 보라는 인물도 없고 모든 것이 변변찮아서 혼자 남겨졌다. (보라는 아버지가 재혼하면서 수녀원으로 보내졌었다.)

루터는 마지막 남은 카타리나와의 결혼을 한동안 망설이다 1525년 아버지를 기쁘게 하고 천사들을 웃게 하고 악마들을 울게 할 것이라며 결심했다. 41세 때 25세의 보라와 백년가약을 맺어 3남 3녀와 고아 4명을 길러냈다.

센공 프리드리히에게 결혼 축의금으로 100 길더 (소 50마리 해당)를 받았다고 한다. 보라는 10명의 자녀를 양육하면서 양조장관리, 소목장관리,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 재정관리를 했다. 가정을 돌보면서 억척스럽게 돈도 벌며 살림꾼으로 살다 53세에 소천했다.

25세 까지는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벗들에게 쳐져서 얼마나 슬프고 속상했을까. 하지만 인생 후반에 볕이 들어 수난의 루터를 내조하는 훌륭한 삶을 살았다. 루터하우스에서 남편과 나란히 초상화가 걸리고 정원에는 동상이 세워지며 사람들에게 길이 기려질 것을 그녀 아버지는 꿈에도 생각 못했을 것이다.

보라에게 존경심과 친근함이 느껴졌다. 양쪽 어머니의 모습이 투영되어서다. 말단 세무 공무원이었다가 이른 퇴직을 시아버지를 보필하려 하숙을 치며 오 남매를 갈러낸 시어머니, 아버지가 직장이 없을 때 미장원을 하며 칠 남매까지 낳은 친정어머니.

어쩌면 나 자신의 모습과 비슷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신혼 때 남편의 박봉으로 거의 내 월급 가지고 시부모 포함 가족을 부양했던 시절이 있었다. 예뻐 본 적은 없고 일은 늘 열심히 했기에 동류의식을 느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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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사진은 루터가 95개 조 반박문(테제)을 붙인 성벽교회의 문


루터하우스 정원에 서 있는 카타리나 폰 보라의 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