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의 기술>
남자는 생각과 감정을 문자로 옮기는 방식을 연구한다.
연구라 하면 아인슈타인이나 프로이트 같은 거창한 학자를 떠올리기 쉽지만, 그에게 연구란 소설가로서 글쓰기 기법을 익히고 연습하는 일이다. 직업은 아니고, 취미에 가깝다.
“무슨 고민을 그리 합니까?”
황선생은 테니스장 컨테이너 락커에 들어서며 말했다.
“어서 오세요.”
남자는 혼자 먼 산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다가 인사를 건넸다.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 라켓을 챙겨 다음 게임을 준비했다.
그는 생각이 많은 사람이다.
소설가는 독서의 삼다(三多)를 즐겨야 한다고 믿는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는 일. 그것이 습관처럼 몸에 배어야 한다고 여긴다.
‘아무 생각이 없으면 안 된다.’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는 근심도 걱정도 갈등도 없을 때다. 할 말이 없으면 글감도 없다.
장사꾼이 물건을 팔기 위해 시장에 오만 가지 물건을 펼쳐놓듯, 소설가 역시 오만 가지 생각을 문자로 남겨야 한다.
“마음 편하게 매일 테니스 치는 게 장수 비결입니다.”
황선생은 남자를 안쓰럽게 바라본다. 괜한 걱정을 끌어안고 사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게요. 운동장에서는 그냥 재밌게 놀아야죠.”
남자는 쓸데없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테니스장을 찾는다. 공에 집중하고, 헐떡이며 땀을 흘리면 밥맛도 돌고 잠도 잘 온다. 운동은 보약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작가로 글을 쓰려면, 결국 관찰을 해야 한다.
그는 그날 오전 집에 있었다. 추운 날씨 속에서 아랫집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이었다. 드르륵 드르륵 전동드릴 소리, 쿵쾅거리는 망치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얼마 전 아래층 이웃이 공사 동의서를 들고 찾아왔었다. 집수리를 하는데 동의를 안 해줄 수는 없다. 집이 새로워지면 아파트 값도 오르고, 그 영향이 위층에도 미친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서명했다.
그런데 아래층 소음은 위층 장로님 집에서 나는 소음처럼 느껴졌다. 지하철이나 강의실에서 들려오는 휴대전화 통화 소리처럼, 묘하게 신경을 긁었다.
다크모드 화면, 손에 익은 키보드의 리듬을 즐기던 시간은 산산이 깨졌다.
그래도 중앙도서관 열람실보다는 집 서재가 낫다.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고, 냉장고와 문방사우가 손 닿는 거리에 있다. 중앙도서관이 공공의 공간이라면, 서재는 개인의 공간이다. 자유가 보장된 곳. 너무 익숙해서 산소처럼, 혀처럼 의식하지 못할 만큼 편안한 장소다.
“나는 테니스장에서 평생 놀 수 있는 게 정말 좋아요.”
황선생은 라켓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맞습니다. 처음 배우기는 어렵지만, 익혀두면 늙어서도 재밌게 할 수 있는 운동이죠.”
남자는 놀이도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의식의 흐름 기법이 있다. 떠오르는 생각을 검열 없이 문자로 붙잡는 방식이다. 이런 자동 글쓰기가 되지 않으면 장편소설은 어렵다. 글쓰기 역시 배워두면 즐거운 놀이가 된다. 시간이 필요할 뿐, 어느 단계에 이르면 평생 지속할 수 있는 놀이가 된다.
성공하는 사람들에게는 오르려는 습관이 배어 있다. 오르막길은 근육에 부하를 주고, 고통과 인내를 요구한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렇게 해야 더 강해진다는 것을.
가만히 있으면 근력은 빠지고, 몸은 금세 무너진다.
젊을 때는 가만히 있으면 근질거려서 힘을 쓰곤 했지만, 이제 노인이란 편안함을 좋아하고 욕심도 줄어든다. 그러나 떨어지면 다시 오르기 어렵다는 사실도 함께 안다. 그 편안함은 시간과 함께 끝없이 내려간다. 그래서 남자는 틈만 나면 글을 쓴다.
테니스 동호인들의 게임은 포인트를 쌓아 네 점을 먼저 따내면 한 게임을 이긴다. 그렇게 여섯 게임을 먼저 가져가면 승리다. 복식 경기는 한쪽으로 쉽게 기울지 않는다. 엎치락뒤치락하는 긴장감이 있어야 재미있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시작과 끝이 있다. 시작은 호기심이고, 갈등이다.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끝은 여운이다. 오래 기억될 메시지가 남아야 한다. 맹숭맹숭하게 끝나버리면 시간 낭비다. 재미없는 테니스 게임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레슨을 받고, 영상을 보며 실력을 키운다.
글쓰기 역시 독자를 설득하는 기술이다. 오래전부터 수사학은 로고스와 파토스, 에토스를 통해 청중을 움직이는 방법을 탐구해 왔다.
“나는 하루라도 테니스를 못 치면 입에 가시가 돋아요.”
황선생은 테니스를 통해 행복을 찾았다.
‘그럼 나는?’
남자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소설가다. 글로 생계를 잇는 프로는 아니지만, 글쓰기를 놀이처럼 살아가는 아마추어 작가다.’
그는 정년퇴직자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은 연금을 받고, 품위를 유지할 만큼의 재산도 있다. 아마추어 테니스 동호인처럼, 빠져들 수 있는 놀이로 글쓰기를 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소설가님, 너무 고민하지 마세요. 그래서 소설가들 평균 수명이 짧아요. 그냥 테니스 치면서 걱정은 날려버리세요.”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