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고지대, 무악동 엘리베이터 설치

by 소설가 서기주

<서울시 고지대, 무악동 엘리베이터 설치>

비에 젖은 돌계단이 숨을 고르듯 길게 이어졌다. 젖은 돌틈마다 어제의 발자국이 마르지 못한 채 남아 있고, 나무 그림자 사이로 올라가는 그 길 위에 사람의 하루가 천천히 쌓이고 있었다.

“고령자들이 많거든요. 노인과 어린이들이 계단을 오르내리기가 정말 어려워요…”

남자는 무악동 85계단 엘리베이터 설치 제안자였다.

“2026년 서울시 고지대 이동약자 편의시설로 설치 대상지로 선정되었습니다.”

아나운서가 아파트 회장인 남자에게 말했다. 그 말 한 줄이, 오랜 시간 계단에 매달려 있던 숨을 비로소 내려놓게 했다.

남자는 여러 가지 생각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특히 구청장이 처음으로 이곳 무악동에 신년인사를 왔던 날이 선명했다. 그 자리에서 남자는 주민자치위원장으로서, 첫 번째 숙원사업이라며 85계단 엘리베이터 설치를 건의했다. 새해의 말은 늘 가볍게 흩어지기 쉬운데, 그는 그 말을 허공에 두지 않으려 했다.

이후 그는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으로서, 일을 “말”이 아니라 “기록과 절차”로 옮겼다. 종로구 구의회 위원장을 찾아가 의원님들의 도움을 받아, 구청 담당 부서장에게 아파트 입주민 전체의 서명날인 연명부를 직접 전달했다. 종이에는 수백의 손길이 눌러쓴 이름이 있었고, 그 이름들은 ‘우리도 올라갈 길이 필요하다’는 조용한 증언처럼 겹겹이 포개져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서울시 이동약자 편의시설 대상지 시민공모에 맞춰, 남자가 직접 ‘시민공모제안서(무악동 85계단 엘리베이터 설치요청)’를 작성했다. 문장을 다듬고, 근거를 붙이고, 사진과 현장 사정을 정리하며 그는 알았다. 제안서는 한 장의 문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무릎과 손목, 유모차 바퀴와 지팡이 끝, 그 모든 하루를 대신 들어 올리는 글이라는 것을.

홍보도 치밀하게 했다. 무악동 주민들에게 현수막을 게시해서 알렸고, 서울시 인터넷 홈페이지 ‘내 손안에 서울’에 직접 참여해 달라고 설명했다. 컴퓨터 앞이 낯선 어르신에게는 ‘여기 누르고, 여기 쓰고, 마지막에 제출’이라고 차근차근 안내했다. 작은 클릭 하나가 누군가의 내일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물론 무악동 주민들의 의견은 갈리기도 했다. “왜 지금 와서”라는 말과 “이제라도”라는 말이 서로를 밀쳤다. 그 틈에서 남자는, 그동안 소극적이던 이웃 아파트 단지 대표회의 회의장까지 찾아갔다. 낯선 자리에서 그는 설득했고, 설명했고, 때로는 고개를 숙였다. 협조를 얻어내기까지 많은 시간이 들었지만, 바로 그 협조가 대상지 선정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결국 일은, 큰 목소리보다 오래 버틴 발걸음이 만든다는 사실을 그날 다시 배웠다.

“고지대 아파트인 줄 알고 이사 왔으면서, 웬 난리야.”

일부 주민들은 남자에게 뒷담화를 했다.

“회장이 그런 선동질이나 하는 거야?”

편이 갈리는 여론도 있었다. 남자는 뒷담화에 민감했다. 마음이 여린 사람이었다.

“급경사 계단이 싫으면 정문 쪽으로 다니면 되지, 고지대 운운하면서 집값 떨어지게 만듭니까?”

반대하는 일부 주민들은, 남자의 행동이 쓸데없이 불리한 점을 드러내어 아파트 거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싫어했다.

사실 남자는 청소년 시절 서울 변두리 산동네에서 살았다. 그때는 세상이 원래 그런 것인 줄 알고, 불편함을 삶의 일부로 삼아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는 그것을 ‘창피한 청소년 시절’처럼 여기며, 변두리 산동네 출신이라는 말을 숨겼다.

‘내가 공연히 집값 떨어지게 소문만 내는 건가?’

남자는 기관을 상대로 고지대의 어려움을 호소하면서도, 사람들 앞에서는 끝내 조심스러웠다. 사람을 살리려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칼처럼 들릴까 봐, 그는 늘 스스로의 목소리를 낮췄다.

남자는 내성적이고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이지만, 고집이 있었다. 옳다고 판단하면 묵묵히 밀고 나가는 성격이다. 평생 교육기관에서 공무원으로 살아오며 터득한 습관이기도 했다.

아파트 회장을 하면서도 그는 관리사무소 문서를 공개했다. 투명하게 관리하기 위해 서울시 아파트 문서 공개 시스템을 이용해 문서를 100% 공개했다. 숨길 것이 없다는 태도는 종종 오해를 부르지만, 그는 그 오해를 견디며 ‘원칙’을 지켰다.

그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또 하나는, 건설회사에서 돌려받은 약 5억 원의 현금을 공정하게 아파트 개별 소유자에게 돌려준 사건이다. 사람은 눈앞의 현금 앞에서 흔들리기 쉽다. 그래서 그는 변호사와 감독관청의 질의회시를 받아 절차를 단단히 세웠고, 일체 잡음 없이 처리했다. 지난 일이지만 그는 그때가 아파트 관리의 큰 위기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위기를 “정직한 방식”으로 넘겼다는 사실이, 그를 다시 일어서게 했다.

이제 우리 아파트는 주변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 되었다.

“여기는 조용하고, 시원한 아파트입니다.”

“그럼요. 인왕산 아래 무악동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으니까 바람이 시원하고, 도시 소음이 올라오지 않지요.”

“그리고 지하철역에서 곧바로 엘리베이터가 생긴다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겠어요.”

동네 사람들은 한결같이 좋아했다. 그동안의 숙원사업이 이루어졌으니 온 동네가 잔치를 벌여도 모자랄 일이다. 남자는 이 아파트에 처음 입주할 때, 당시 재건축위원장이 입주자들에게 엘리베이터 설치 기금 마련을 설명하던 기억이 생생했다. 입주자대표회의가 구성되면서부터 이것은 늘 “최대의 숙원사업”이었다. 그동안 아파트 대표, 무악동장, 구의원을 비롯해 특히 구청장께서 너무 애써주셨다. 감사할 일이다.

그런데 기쁨은 늘 다른 얼굴을 데리고 온다.

“회장님, 집값이 올라서 좋겠네요. 그런데 우리는 전세로 살고 있는데, 부동산에 알아보니 전세금도 오른다고 하네요. 걱정이에요.”

남자는 잠시 말이 막혔다.

“아… 죄송합니다. 우리는 노약자들의 고지대 이동 편의를 위해서 일했는데…”

그의 목소리는 낮아졌다. 축하와 걱정이 같은 문장 안에서 어깨를 맞대는 순간, 남자는 깨달았다. 누군가의 ‘편리’가 누군가의 ‘불안’과 동시에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그는 다시 생각했다. 엘리베이터는 계단을 대신하는 기계가 아니라, 갈라진 마음들 사이를 오르내리며 서로를 이해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길이어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