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사는 남자

by 소설가 서기주

매표기 앞에서 종이 대신 빛으로 발급된 티켓이 휴대전화 속에 저장되었다. 손에 쥐어지지 않는 입장의 증표가 화면 속에 떠 있었다. 남자는 그 빛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익숙해야 할 것이 낯설었다. 명절이 끝난 공기처럼, 일상은 멀고 희미했다.

남자는 아내와 함께 딸이 보내준 영화 표를 들고 극장에 왔다. ‘왕과 사는 남자’였다. 집 거실의 큰 화면에 익숙한 남자는 바깥의 스크린이 어색했다. 넷플릭스를 켜면 되는 일을, 굳이 몸을 움직여 와야 했다. 언제 마지막으로 극장에 왔는지 기억이 흐렸다. 그의 하루는 철도 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열차 같았다. 밤낮으로 달렸고, 같은 자리로 되돌아왔다.


“그 코트, 아직도 입네요.”

“그래. 십 년은 됐다.”

“본전은 뽑았네요.”


명절 산소에서 동생이 웃으며 말했다. 웃음은 가벼웠고 말은 조금 날카로웠다. 남자의 집에는 오래된 물건들이 많았다. 장롱과 소파가 세월을 버티고 앉아 있었다.


“형은 잘 안 바꾸지.”

“우리는 그런 게 서툴다.”

“살아남으려면 바꿔야지. 자식이랑 형수 빼고는 다 바꾸라니까.”


동생은 농담처럼 말했으나, 말끝이 오래 남았다.


남자는 번거로움을 견디며 자리에 앉았다. 빛이 꺼지고 화면이 켜졌다. 영화는 왕의 이야기였다. 단종의 슬픔이 낮게 깔렸다. 그 위로 마을의 웃음이 얹혔다. 유배 온 죄인을 붙잡아두려는 촌장의 우스꽝스러운 몸짓이 이어졌다. 비극과 희극이 한 자리에 있었다. 남자는 그 둘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는다는 것을 보았다. 울음이 올라왔다가, 곧 웃음이 따라붙었다. 그의 얼굴이 그 사이에서 흔들렸다.


극장을 나서며 그는 계단을 조심스럽게 밟았다. 다리가 예전 같지 않았다. 이빨은 빠졌고 걸음은 느렸다. 그는 스스로를 구식이라 여겼다.


그래도 그는 생각했다.


나는 아직 쓸모가 있다.


남자는 강의를 다니는 사람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다. 정년을 지나서도 현장을 떠나지 못했다. 산골의 교육기관에서 버티던 시간들이 그의 몸에 남아 있었다. 그 시간 덕분에 그는 아직 길 위에 있다.


그는 안다. 강의와 소설은 다르지 않다. 말을 세워 사람을 움직이는 일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이 그러했다. 설득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였다. 이야기는 사람을 붙들고, 말은 사람을 움직인다.


남자는 오늘 본 영화의 장면들을 떠올렸다. 눈물과 웃음이 섞인 자리에서 이야기는 힘을 가졌다.


그는 그 힘을 배우고 싶었다. 그리고 쓰고 싶었다. 그리고 말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