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by 오토

내가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꽤 오래전이다. 나는 갓 마흔을 넘겼을 때 이미 조기퇴직을 결심했고, 오십 대 딱 중간에 결심을 실행에 옮겼다. 십 수년간 퇴직 이후를 상상하며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되는지에 위안을 얻었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단꿈을 꾸었다. 그 꿈 가운데 하나가 ‘내 인생의 기억을 글로 남기기’였다. 자랑할 만한 인생도 글로 남길 만한 특별한 인생도 아니겠지만 왠지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은, 나와 또 내 앞뒤에 연결되는 존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강요할 일은 아니지만 혹여라도 내 아이들이, 또 그들의 아이들이 자신들의 인생 후반부쯤 아버지의, 할아버지의 삶의 궤적에 대해 궁금증을 가진다면. 그때 더 흐려진 기억으로 횡설수설하거나, 또는 흐려진 기억이나마 사라진 다음이기 전에 글로 정리해서 종이로 묶어둔다면 요긴하게 쓰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마침내 5년 전에 퇴직을 했다. 하지만 퇴직은 했으나 은퇴는 아니었다. 그리 바쁘진 않았지만 뒤이은 예기치 못한 비자발적 경제활동이 나로 하여금 재미는 없고 고통은 수반하는 글쓰기를 자꾸 미래의 숙제로 미루게 했다. 그렇게 세월을 흘리다가 육순, 환갑을 모두 지나치고 나니 글쓰기가 더 이상 미루기에는 마음에 큰 짐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문득 천근 같은 펜을 들어 우선 맨 처음의 기억을 썼다. 그런데 첫 기억을 글로 끝내니 다음이 막막해졌다. 이제야 곰곰이 생각하니 기억이란 것들이 갈래가 있고 순서도 있어 중구난방으로 마구 휘두를 일이 아닌 것이다. 비슷한 것은 그것들끼리 그리고 또 차례대로도 모으고 줄도 세워야 하겠다는 요량이 생긴다. 지금은 어떤 글들로 얼마만큼 지면을 채울지 모르겠다. 하릴없이 쓰다 보면 글들이 저 알아서 이리 붙고 저리 붙어 저절로 모양과 무게가 맞춰지길 바랄 뿐이다.


제발 골치 아픈 궁리는 이제 그만. 손가락이 자판 위에서 제멋대로 생각하게 내버려 두자. 다행히 2년에서 3년, 기억이 다 글로 소진되고, 그 이후의 인생이 또다시 꽤 두텁게 쌓인다면. 내게 에필로그를 덧붙일 기회가 주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럼 이제 나의 기억들을 글밭에 뿌려 서툰 글짓기에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