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렌디피티 Jun 12. 2023

남편의 볼뽀뽀가 부러워 시작한 나의 미니멀라이프

집이 '빈 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작년 12월 경, 미니멀리즘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화면 속의 집은 군더더기 없이 너무나 깔끔해 보였다. 그 집 아내가 주도한 미니멀 라이프의 결과였다. 화면 속 남편은 이제 집에 들어오면 뭘 해야 하는 게 아니라 '단지 그냥 쉴 수 있어 너무나 좋다'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자신에게 진정한 휴식과 홀가분함을 선물해 준 아내가 너무 사랑스럽고 예뻐죽겠다면서 부인 볼에 뽀뽀를 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어려서부터 인정욕구가 강해서 그런지 남편에게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볼 뽀뽀를 필자 또한 몹시 받고 싶어졌다.

미국에 출장을 간 남편이 코로나에 확진이 됐다는 소식에 마음이 심란했다.  무엇에라도 정신을 팔고 싶어 져서 시작한 집 청소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팔십 먹은 노인의 마음 마냥 옛것에 유독 애착이 강했던 아들도 웬일인지 순순히 더 이상 안 쓰는 장난감 정리에 선뜻 나서줬다. 딸아이도 성심성의 껏 집정리를 도왔다. 다른 집에서 보면 '저 집 이사가나?' 할 정도의 쓰레기가 나왔다. 더 이상 안 쓰는 장난감, 연령대가 안 맞는 아이들의 책들이 거실을 한가득 메웠다. 집 안 가득 이삿짐 같은 짐을 쌓는 수고로움을 달래기 위해, 아이 둘과 함께 고깃집에 갔다.

(미국에서 코로나에 걸린 남편이 걸렸지만, 이삿짐을 싸듯 많은 물건을 정리한 아이들과 나는 손가락 까딱할 힘도 없었다.) 삼겹살 3인분을 시켰다. 남편이 없는 허전함을 기름기로라도 메꾸고 싶었는지, 고기가 익자마자 마구 입에 쑤셔 넣었다.  뱃속에 쏟아부은 한 끼는 든든했고 마음은 뱃속에 얼음 사이다가 들어간 듯 시원했다. 그렇게 우리는 보금자리에 '미니멀라이프'라는 작은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사소한 시작이 큰 변화를 이끈 효과는 머지않아 드러났다. 물건으로 꽉 찬 큰 아이이 방은 수줍은 표정으로 자신의 빈 벽을 드러냈고 미세먼지가 걷힌 도심풍경을 오랜만에 맞이하듯 숨통이 트이니, 방주인인 큰아이도 홀가분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는 180도 변한 자신의 방을 바라보고 있다가, 그동안 자신의 방이 마치 창고 같아서 친구를 부르기도 싫었다는 고백을 읊조렸다. 그 말이 오래도록 내 가슴에 남았다. '그래서, 네가 친구들을 초대하지 않았던 거구나, 이런...'

딸아이 방도 어수선한 물건들을 정리하니 단정한 본모습을 드러냈다. 방에 겹겹이 쌓인 먼지 묻은 옷을 벗겨내니 딸아이를 닮은 뽀얀 속살이 그 자태를 수줍게 드러났다.  그동안 나는 정리정돈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저 수많은 물건을 배치하는 테트리스 실력이 뛰어난 것뿐이었다는 걸 알았다.

미국에서 코로나 격리를 마치고 돌아온 남편은 드라마틱하게 변한 집 풍경에 새삼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다른 집 남편의 볼뽀뽀가 부러워 시작된 미니멀라이프는 과연 내 남편의 볼뽀뽀를 이끌어 낼 수 있었을까?

아쉽지만 아직까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No이다. '제가 돌부처와 살아요, 여러분.'

우리 집 남편은 절대 그럴 성격이 못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 새삼스럽진 않았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을 해낸 나 자신에게만큼은 내가 나의 볼에 뽀뽀를 해주고 싶다.

미니멀라이프를 알게 되고 실천하게 되면서 '인생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잡다한 물건들을 치우고 나니 '진짜 내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확실하게 알게 되었으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김밥집 아주머니가 내 딸을 보더니 한 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