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부를 여행하면서 자동차를 빌렸다. 한 달 동안 서부의 여러 주를 넘나들며 국립공원 순례를 했다.
렌트한 차는 주차를 하고시동을 꺼도 사이드미러가 자동으로 접히지 않았다. 수동으로 접으려고 해도 버튼이 없었다. 주차된 다른 차들도 다 사이드미러가 그대로였다. 땅도 넓고 주차 간격도 널널한 미국은 자동차 사이드미러를 접을 필요가 없는 나라였다. 이러니 미국 운전자들은 후방 주차를 못한다고 한다.
미국은 역시나 새로 발견한 대륙에 빠르게 세워진 나라였다. 유럽에서 만났던 오래된 건축물, 좁은 골목길, 동네 식당과 카페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어딜 가든 체인형 호텔에 프랜차이즈 식당이었고 멀리 뚝뚝 떨어져 살고 다들 차로만 다닌다. 대도시 다운타운이 아니었다면 미국 와서 미국 사람 구경도 못할 뻔했다. 멋대가리 없이 뭐든 크고 넓기만 하고 식당은 죄다 패스트푸드인데 미국 사람들은 무슨 재미로 살까 싶었다.
한편 서부는 대자연의 파노라마 그 자체였다. 협곡과 사막, 바다 같은 호수, 화산과 간헐천, 소금 평원(Salt Flats)... 눈으로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는 광대한 스케일의 지형이 종류대로 넓디넓은 땅에 끝도 없이 펼쳐졌다. 꼬박 한 달을 쉬지 않고 미국 서부만 돌았는데도 이동하기에 바빴다.
옐로스톤 국립공원
솔트레이크 시티 인근 소금 평원(Salt Flats)
새도나(Sedona)와 그랜드캐년을 거쳐 앤터롭캐년(Antelope Canyon)과 홀스슈밴드(Horseshoe Bend)를 둘러보고 애리조나주의 페이지(Page)에서 하루 묵었다. 사전 정보 없이 지도만 보고 찍어간 페이지는 작지만 캐년 여행의 중심지인지 호텔이 꽤 있었다. 파웰 호수(Lake Powell)에서 보여주는 경치도 웬만한 유명 캐년 못지않았다.
저녁을 먹기 위해 숙소를 나갔더니 어디선가 음악 소리가 들렸다. 흥겨운 컨트리 리듬의 진원지는 식당이었다. 바비큐 장비를 도로변에 두고 연기를 뿜어내며 고기를 굽고 있었고 야외 테이블에 사람들이 소복이 앉아 있었다. 모두 우리처럼, 청각, 후각, 시각이 한꺼번에 마케팅당한 관광객들이었다. 미국 여행 중 단일 공간에서 사람을 가장 많이 본 날이었다.
페이지(Page)의 바비큐 식당
옆자리 손님들과 캔맥주로 건배 인사도 나누었다. 바비큐는 쇠고기 가슴살 부위가 정석이라는데 우리는 만만한 포크립(Fork Ribs)을 주문했다. 새콤달콤한 양배추 샐러드 콜슬로(Coleslaw)도 따로 시켰다.
우리나라에서 등갈비로 부르는 부위가 한 접시 나왔다. 각종 정체 모를 향신료로 시즈닝을 거치고 비법 소스를 발라 화덕에 구워낸 고기는 절대 실패할 수 없는 맛을 보장한다. 바비큐는 고기에 가한 불맛으로 승부하는 요리다. 재료의 맛을 온전히 보전하는 가장 투박한 조리법이다. 거칠고 황량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아무 단장 없이 보여주는 미국 서부의 대자연을 닮았다.
텍사스식 포크립(Pork Ribs) 바비큐와 콜슬로(Coleslaw)
라이브 연주 덕에 흥이 오르고 기분도 좋았는데, 음식의 비주얼도 맛도 일주일 전에 타호 호수(Lake Tahoe)에서 먹은 것보다 조금 못했다. 타호의 식당에서는 콜슬로와 야채 샐러드까지 포함되어나왔고 맛도, 가격도 다 만족스러웠다. 곁들여 나온 콜슬로가 특별히 아삭하고 입맛을 돋웠는데, 야채 샐러드가 한식 고깃집에서의 겉절이라면 콜슬로는 김치나 다름없었다.
도심 한가운데 살지 않는 한, 뜰과 주차장을 갖춘 집들이 대부분인 미국에서는 집에서도 바비큐를 많이 하는지 쇼핑몰에서 가정용 바비큐 기계를 많이 팔고 있었다. 바비큐는 기본적으로 일 인분을 위한 요리가 될 수 없다. 품이 많이 드는 요리라 여럿이 함께 할 수밖에 없으니, 주말에 가족들이 모이거나 특별한 날 친지들이 어울려 파티용으로 즐기지 않을까. 미국 사람들이 햄버거만 먹는 줄 알았는데 제법 음식다운 음식을 먹네.
가정용 비비큐 기계를 팝니다
바비큐 한 접시에 미국 사람들 사는 모습이 보인다. "미국, 오해해서 미안!"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고사는 사람들이 재미없게 살 리가 없지.
여행지 한 끼 식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음식 한 접시는 현지인의 삶과 환경의 압축판이요 정체성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음식을 먹는 즐거움을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