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공항에서 나오자마자선선한 공기와 보라색 꽃이 맞아주었다. 도시 이름 '좋은 공기'에 어울리는 도시라 감탄한 것도 잠시, '좋은 공기' 속에 들어온 지 딱 1시간 만에 대낮 대로변에서 일이 벌어졌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문 앞에서 핸드폰 소매치기를 당했다. 내 고함 소리를 듣고 길 가던 청년 둘이 소매치기 뒤를 쫓았고 불과 몇 분만에 핸드폰을 내 손에 다시 쥐어 주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여행지에서 '핸드폰을 소매치기당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어도 '다시 찾았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하늘이 만들어준 행운을 등에 업고 부에노스아이레스 여행을 시작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역시 좋은 공기야!'
소매치기를 당한 직후에도 배는 고프더라. 숙소 바로 앞에 있는 동네 식당을 찾았다. 쇠고기 메뉴가 많아 한참을 읽은 끝에 등갈비(Rib eye)와 갈빗살구이(Asado)를 시켰다. 고기도 샐러드도 너무 맛있어서 오늘의 불행도 다행도 잠시 잊었다. 식사비는 1만 페소! 한국돈 만오천 원이 '와인과 쇠고기, 두 사람 식사비'라니 이건 또 무슨 반전인가?
아르헨티나 첫 식사의 강렬한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Ojo de Bife(꽃등심등갈비 Rib eye) & Bife de Asado(갈비살구이)
식당에 가려면 쇠고기 부위 이름을 좀 알아야 했다. 저렴하면서 질 좋은 쇠고기로 유명한 나라답게 식당의 주메뉴가 대부분 쇠고기 요리이고, 부위별로 세분화되어 있었다. 요리법은 없다. '고기에 아무 짓도 안 하기'가 아르헨티나식이다. 소금만 쳐서 굽는다. 고기 굽는 정도를 묻기도 하고, 일반적으로 선호되는 굽기로 구워 내기도 한다.
아르헨티나식 쇠고기 구이
식사는 와인과 음료, 식전빵이 나오고 고기가 서빙된다. 식전빵과 소스가 화려하게 나왔다면 별도 요금이청구될 가능성이 있지만 식사값에 빵이 포함되는 경우도 많았다.
식전빵과 소스(꾸비에르또 Cubierto), 식사값에 포함된 경우도 있고 별도인 경우도 있음.
Bife de Chorizo(등심구이) & Bife de Costilla( T본 스테이크)
아르헨티나식 쇠고기 식사, Bife de Lomo(안심구이). 고기 종류를 골랐더니 진짜 쇠고기 한 덩이만 접시 위에 투척해 놓았다.
장바구니 물가를 봐도 아르헨티나는 전 세계 쇠고기 소비량 1위의 나라다웠다. 동네 정육점 쇠고기가 1킬로에 우리 돈 만원 정도다. 게다가 몇 천 원만 줘도 충분히 맛있는 와인 한 병 살 수 있으니 아르헨티나는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삼시 세 끼, 와인에 쇠고기'가 가능한 곳이다.
그러나 아무리 쇠고기를 좋아한다 해도 여행기간 내내 쇠고기만 먹을 수는 없는 법이다. 쇠고기가 질릴 때쯤 초리판(Choripán)과 푸가제타(Fugazzetta) 피자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초리판은 굵은 입자로 갈아 만든 소시지를 숯불에 직화해 바게트에 끼우고 치미추리 소스만 발라서 먹는 대표적인 길거리 음식이다. 아르헨티나식 햄버거로서 식당에서 단품 메뉴로 내기도 한다.
초리판. 소시지 위에 치미추리 소스만 얹어 바게트에 끼워 먹는다.
피자를 모차렐라 치즈 맛으로 먹는 나는 푸가제타와 사랑에 빠졌다. 도우 반죽 위에 모차렐라 치즈를 한층 얹고 그 위에 다시 도우 반죽으로 마감을 한 후 양파로 토핑해 굽는 피자이다. 모차렐라 치즈의 고소하면서 진한 풍미에 달큼하고 아삭하게 씹히는 양파가 환상적인 궁합을 만들어낸다.
아르헨티나 먹거리에 메디아루나가 빠질 수 없다. '반달'이란 이름을 가진 크로와상, 메디아루나(Media Luna)는 커피 한 잔만 곁들이면 훌륭한 아침식사가 되었다.
도우 안에 치즈가 한 층 들어가고 양파로 토핑하는 푸가제타 피자, 반달 크로와상 메디아루나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남미의 파리'라고 불릴 만큼 도시 풍경도 먹는 문화도 유럽 스타일이었다. 우리 돈 만오천 원이면 와인과 스테이크를 먹고천오백 원이면 이태리식 커피를 마신다. 물가가 엄청 가파르게 올라 현지 화폐 가치가 추락하고 경제가 불안정하다고 하지만 달러를 쓰는 여행자에겐 결코 나쁘지 않은 체감물가였다.
숙소 근처 동네 벽화
새 대통령이 최근 공식환율을 암환율에 가깝게 격상시키면서 아르헨티나 호텔비나 항공비가 예전 같지 않고 많이 비싸졌다고 한다. 그래도 아르헨티나 여행 가성비는 남미 다른 나라와 비할 바가 못된다. 음식이든 볼거리든 쓴 돈 이상의 만족을 가져다주는 곳이다.
지난 6개월간 중남미의 많은 도시를 다녀봤지만 한달살기나 일년살기 등 장기 체류 도시로 딱 한 곳만 꼽으라면 주저없이 '부에노스아이레스'다. 내게 다시 가고 싶은 도시 1개를 물어본다면 역시 '부에노스아이레스'다.
여행지에서의 한 끼 식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매일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음식을 먹는 즐거움을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