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근신 일주일

by 위트립

산티아고를 가기 위해 파리로 입국했다. 프랑스 생장이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파리로 들어오는 많은 순례길 여행자들은 생장행 기차가 출발하는 몽파르나스역 근처에서 하루를 묵은 후 다음날 생장으로 내려간다고 한다.


기왕 파리로 들어왔는데 하룻밤만 자고 파리를 떠나는 건 파리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파리에서 일주일 묵으며 봄날의 파리를 만끽하고 싶었다. 2년 전 파리에 왔을 때가 마침 이맘때 4월 중순이라 울타리마다 연두 새순 돋고 연보라 등꽃 늘어지던 파리의 봄이 내내 눈에 삼삼했었다.



115년 된 파리의 우리 집


파리 교외에 위치한 에어비앤비 숙소는 1910년에 지어진 집이라고 했다. 조용한 중산층 동네였다. 집집마다 누가 누가 더 예쁜 집인 지 경쟁하듯, 하나같이 예쁜 건물과 정원을 자랑했다. 화사하게 핀 봄꽃도 파리의 낭만을 보탰다.


우리집_파리_125년된집.jpg 동네에서 가장 높고, 가장 돋보이고, 가장 정원이 넓었던 파리의 5일짜리 우리 집


올리브나무_우리집.jpg 정원 한 가운데 우람한 올리브 나무 한 그루


과연, 내가 상상하던 파리였다. 교외의 평화로운 주택가. 깨끗하고 안전한 유럽풍 주택 타운. 2년 전 파리에 왔을 때 묵었던 숙소는 내가 꿈꾸던 파리가 아니었다. 파리 변두리의 우리나라의 다세대 주택 같은 곳으로 동네가 후줄근했고 숙소 오갈 때마다 주변을 살피며 잔뜩 긴장해서 다녀야 하는 곳이었다.


반면에 이번 숙소 동네는 파리 근교의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서울로 치면 경기도 구리쯤 되는 위치라고나 할까. 비록 RER선을 갈아타고 파리 시내로 가야 하긴 했지만 RER이 워낙 잘되어 있고 지하철 환승도 편해서 40분이면 시내 관광지 어디든 닿았다.


동네풍경.jpg 이런 동네에서 살아요.


단 5일이지만 파리지앵으로 살아가는데 부족함 없어 보이는 이 숙소는 가격도 착해서 전용 욕실과 전용 화장실에 주방을 쓰는 조건으로 1박 53유로(한화 85,000원)였으니 그야말로 가성비 숙소였다.



오오, 나의 오른발


누가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했던가. 파리의 4월도 내게 잔인했다. 파리지앵의 꿈은 단 하루 만에 끝나버렸다. 파리에서 첫 밤을 보낸 다음날 저녁, 숙소 욕실에서 넘어지고만 것이다.


샤워부스 안에서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다가 오른쪽으로 넘어지면서 몸의 체중이 새끼발가락을 눌렀다. 순간 내속의 아우성, "아 안돼! 나의 오른발! 산티아고 한 달을 걸을 발인데..."


오른발.jpg 사고 난 오른발


얼마나 다쳤을까? 발을 움직일 때마다 욱신거리기는 해도 못 걸을 정도는 아닌 걸로 봐서 뼈에는 이상이 없네. 얼마나 갈까? 여행 오기 전 동네 뒷산에서 넘어져 발 다쳤을 때와 비슷한 수준의 통증이다. 그럼 일주일은 가겠네.


작년에 걷다가 오른발을 접질려서 새끼발가락 뼈가 부러졌다가 아물었는데 또 그 발이요, 또 그 발가락이다. 나의 오른쪽 발은 집 떠나서도 수난의 연속이다. 단정컨대, 이 모든 게 나의 오른쪽 귀의 이석증 때문이다.



파리에서 근신 일주일째


일주일 뒤면 800km 산티아고 대장정을 떠나야 하는 걷기 선수가 다른 곳도 아닌 발을 다쳤으니 이 일을 어쩐담? 새끼발가락을 밴딩하고 잠잘 때 발을 머리보다 높게 하고 잤다. 당분간 발을 아껴야 한다. 사실 걸을 때마다 발이 아파 잘 걷지도 못했다. 산티아고 걷기 전에 무조건 다 나아야 한다!


파리 몽마르트르 묘지에 가보리라, 고흐의 무덤이 있는 오베르 쉬즈 우와즈에 가보겠다던 , 대화재(大火災) 후 새로 단장한 노트르담 대성당에 가겠다던, 파리의 꿈들을 줄줄이 내려놓았다. 나는 지금 파리의 115년 된 저택에서 평화롭기 그지없는 창 밖 풍경을 보며 평화롭게 발 요양 중이다. 일주일째.


우리집_동네집들.jpg 내 방 창문에서 내다본 동네




# 파리 숙소 정보

https://www.airbnb.co.kr/trips/v1/reservation-details/ro/RESERVATION2_CHECKIN/HMH4D3JRXK

20250418_215542.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