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는 인베이더 그래픽을 타고

1인용 식탁, 윤고은

by 집배원

한국 사회에서 실업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IMF 이후부터다. 실업은 단순히 개인의 생계를 어렵게 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과 불신, 불통이 가득한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였고 이러한 분위기는 결국 사회 및 개인의 해체와 직결되는 문제로 발전했다. 성경륭의 「실업과 사회해체 : 총체적 위험사회의 등장」에 따르면 이러한 실업과 개인해체의 실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실업으로 인해 개인이 해체되는. 단계는 그들이 느끼는 감정에 따라 총 다섯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 단계로 그들은 실업으로 인해 극심한 상실감이나 허탈감을 느낀다. 다음 단계에서는 불안감과 강박감을 가지게 되며 이는 세 번째 단계에서 무력감, 무가치함의 감정으로 뒤바뀐다. 네 번째 단계에서 개인은 기력 쇠진과 자포자기 상태에 빠지며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 들어서게 되고 마지막으로 그들은 이러한 감정 변화의 끝에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개인은 크나큰 심리적 공황을 겪고 해체되며 그들의 일상은 붕괴된다.

윤고은의 『1인용 식탁』에 수록된 단편 「달콤한 휴가」와 「인베이더 그래픽」에는 이러한 실업으로 인한 개인해체 양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1) 빈대 출몰과 빈대 퇴치


「달콤한 휴가」는 『1인용 식탁』에 수록된 두 번째 단편소설이다. 「달콤한 휴가」의 ‘그’는 7년간 다니던 직장을 잃고 아내와의 여행을 계획하던 중 소위 빈대 강박증을 앓는다. 처음에 ‘그’는 자신의 일상에 멋대로 침범하여 몸의 피를 빨아먹고 막대한 수로 번식하는 빈대를 퇴치하기 위해 온갖 종류의 빈대 퇴치 약을 구입하고 ‘빈사세’(빈대가 사라진 세상)라는 모임에 들어가 빈대를 소탕하기 위한 작전을 구상한다. 하지만 그는 최후에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곳에 서식하는 빈대를 퇴치하기 위해 이른바 ‘거대 숙주’를 자청하여 빈대가 좋아하는 약을 바르고 오피스텔에 존재하는 모든 빈대를 몸에 껴안은 채 태평양의 한 섬으로 아주 즐겁게 화려한 휴가를 떠난다. ‘그’의 빈대 광증에 걸린 이유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서 왜 하필 ‘그’가 빈대 강박증에 걸렸을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빈대는 복잡했다. 그는 조금씩 빈대에 대해 알아가고 있었다. 빈대는 일반적인 흡혈 벌레와는 달리 숙주에 직접 기생하지 않는다. 대신 숙주의 공간에 서식하며 밤이 되면 기어나와 숙주를 뜯는다. 그래서 빈대를 퇴치하려면 자신의 영역을 먼저 지켜야 하는 것이다.


흡혈 벌레임에도 숙주에 기생하지 않고 자리만 차지하는 빈대의 특성은 흔히 ‘백수’에 빗대기도 한다. 노동하지 않고 돈을 버는 타 가족 구성원에 속해 생계를 유지해 나가는 백수의 모습이 빈대와 굉장히 유사한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설 속 ‘빈대’라는 소재는 ‘그’의 백수 상태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것이며 빈대는 곧 노동하지 않는 ‘그’와 동질적인 존재이다. 따라서 ‘그’는 자신과 닮은 빈대에 필연적으로 끌리게 되는 것이다. ‘그’가 빈대의 모습을 보이는 부분에 대해 더 자세히 살펴보자.


커피메이커는 퇴직금의 첫 번째 지출 항목이었다. 그는 바로 다른 직장을 알아보지 않고 6개월간의 휴업을 선언했다. 실업 급여가 나오는 동안 조금이라도 쉬고 싶었다. 퇴직금의 두 번째 지출 항목은 DSLR이었다. (중략) 더불어 빈대 퇴치를 위해 10만원을 투자했다고 적었다.


‘그’는 실직하여 돈을 벌 수 없음에도 생계에 불필요한 빈대 퇴치약이나 커피 머신, DSLR, 유럽 여행과 같은 것에 과도하게 소비한다. 그리고 ‘그’가 소비하고 빈곤해질수록 빈대에 노출되는 빈도도 높아진다. 또한 ‘그’는 실직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취업할 수 없는 현실에 자신과 유사한 빈대에 더욱 몰두하게 되고 이에 따라 ‘그’의 불면증, 강박증, 환청, 환각은 더욱 심해진다. 마침내 ‘그’가 거대 숙주가 되었을 때, 지역 신문의 부고란에는 ‘그’의 이름이 쓰여 있다. 이는 곧 ‘그’가 오래된 실직 상태를 유지하며 비현실적인 것에 맹목적으로 매달리다 결국 빈대 그 자체가 되어 버렸고 이로 인해 사회에서 도태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런 개인이 사회에서 도태되어 떨어졌다는 것은 곧 사회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며 일상으로의 복귀가 불가능함을 의미한다. ‘그’가 빈대가 됨으로써 일상이 붕괴되었다. 빈대가 된 그가 떠날 수 있는 유일한 휴양지는 달콤한 지옥뿐이다. 제목의 달콤한 휴가는 반어적 표현으로써 실업으로 인해 병리자로 몰락해 죽음으로 몰릴 수 밖에 없던 ‘그’의 최후를 묘사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또한 위를 토대로 볼 때 앞서 인용한 개인해체의 5단계는 「달콤한 휴가」에서도 정확히 적용된다. ‘그’는 실업 후 새로운 취미를 만들고 여행을 가기도 하며 휴가를 즐기려 하지만 어떠한 상실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는 후에 빈대에 대한 불안과 강박을 느끼고 빈사세에 가입하지만 ‘거대 숙주’를 자처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자 무력감에 빠지고 자포자기한다. 이윽고 그는‘거대 숙주’가 되고 사회적으로 죽게 된다. 이렇듯, 「달콤한 휴가」는 실업으로 인한 개인이 어떠한 심리적 공황을 겪는지, 그리고 해체되는지를 서술한다.


(2) ‘나’와 ‘인베이더 그래픽’


「인베이더 그래픽」은 본 소설의 주인공 ‘나’와 ‘나’의 소설의 주인공 ‘김균’에 관한 이야기를 교차하여 서술한 단편이다. ‘나’는 소설가인데, 수입이 불안정하며 따로 직장에 다니진 않는다. ‘나’가 쓰는 소설의 주인공인 ‘김균’ 또한 증권회사에 다니고 있었지만 퇴사하여 인베이더 그래픽을 찾아 떠난다. 이 두 주인공은 모두 실업 상태이며 공동체에 소속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본고에서는 ‘나’에 대한 분석 위주로 작업실이라는 집필 공간에 집착하는 이유와 인베이더 그래픽을 탐지하는 바늘이 어째서 ‘나’를 가리킨 것인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대학이나 직장에 다니고 있을 때까지만 해도 이 공간들은 조금 다른 의미를 갖고 있었다. 나는 계절이 바뀔 때쯤 한 번씩 백화점에 왔고, 화장실에서 20분 이상 머무는 경우는 드물었다. (중략) 세상살이는 온도와 민감하게 연결되어 있다. 노숙하기에 가장 좋은 공간이 글쓰기에도 가장 좋은 공간이다. 그러나 도서관에는 사람이 많고, 백화점만큼 안락하지 않다. (중략) 집에는 내가 낮 동안 어디라도 다녀오길 바라는 가족들이 있다. 역시 내가 갈 곳은 백화점이다.


우선, ‘나’는 성과를 내지 못하면 돈을 벌지 못하는 소설가라는 직업을 연명하기 위해 백화점 화장실에서 눈치를 봐 가며 소설을 집필한다. 그녀는 ‘집’이라는 사적이고 가장 개인적인 공간보다 백화점 화장실이라는 공적 공간에서 안락함을 느낀다. 그녀가 화장실을 적합한 집필 공간으로 채택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녀에게 ‘소설가’는 이상이며 이루고 싶은 꿈이자 너무도 닿고 싶었던 직업이다. 따라서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그녀는 주위 사람들에게 소설가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지만, 막상 가장 ‘나’를 인정해주어야 할 가족들은 그녀가 집에서 소설가로 활동한 몇 달 동안 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글만 쓰는 모습을 실업자라고 묘사하며 눈치를 준다. 이러한 현실에 그녀는 ‘집’이라는 공간에서 더이상 집필을 이어갈 수 없었다. 그녀의 이상은 현실에 좌초되어 침몰하고 있었다. 엉덩이를 붙이고 마음껏 글을 쓸 수 있는 작업실을 원했으나 정작 집에 있는 ‘나’의 방은 가족의 침입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았고 그녀는 불안을 감지한다. 자신을 실업자로 보는 부모님 사이에서 ‘나’는 혼란을 감추기 급급하다.

가족에게 자신의 집필 공간(방)이 위협받자 그녀가 시선을 돌린 것은 바깥이었다. 하지만 무일푼의 그녀가 작업할 수 있는 작업실은 한정되어 있으며 대다수가 공적 공간이었으므로 개인적인 공간과는 거리가 멀었다. 개방되고 시끄러운 공간은 집중하기 어려웠고 그녀는 작업실을 찾아 떠돌다가 최종적으로 평일 낮 백화점에 있는 남성복 매장의 여자 화장실이라는 공간에 정착했다. 사람이 없고 마음껏 전기를 이용할 수 있으면서도 아늑한 백화점 화장실은 자신만의 개인적인 집필 공간에 안성맞춤이었다.

어렵게 생긴 집필 공간에 대한 그녀의 강박은 컸다. 하지만 이 공간도 결국엔 도둑의 ‘침범’이 생겼다. 자신만의 공간이라는 ‘나’의 믿음에 균열이 생기고 만 것이다. 도둑은 그녀가 일하던 자리에 앉아 자연스럽게 시간을 보냈고 그녀는 도둑과의 공생을 도모하기도 했으나 결국 도둑은 그녀가 메모한 소설이 쓰인 휴지를 가지고 사라졌다. 이 사건은 그녀가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 처하는 사건으로 발전했다. ‘나’는 또다시 나만의 공간이었던 작업실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도달한 백화점 옥상에서 그녀는 자신을 가리키는 탐지기의 바늘을 보았다.


탐지기는 이 골목을 가리킨다. 탐지기는 저 골목을 가리킨다. 탐지기가 가리키는 대로 한참을 걸어가지만 찾는. 것은 나오지 않는다. 가끔은 탐지기의 예측이 들어맞을 때도 있다. 그러나 확률은 낮다. (중략) 한 번 더 속는 셈치고 탐지기를 따라 걸어간다. 막다른 골목 앞에서 바늘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 앞에 있는 것은 거대한 쓰레기. 더미뿐이다. (중략) 그래서 이제는 한국으로 돌아간다. 탐지기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서. 균은 비행기에 오른다.


탐지기는 ‘나’의 소설에 등장하는 ‘김균’이 인베이더 그래픽을 찾기 위해 구입한 것이다. 하지만 탐지기는 인베이더 그래픽을 찾지 못하고 쓰레기 더미만을 감지할 뿐이다. 이러한 탐지기의 역할은 작중에서 반전된다. 소설 초반에 균은 인베이더 그래픽을 찾으러 떠나 다니지만, 후반에는 그가 직접 인베이더 그래픽을 새기고자 마음먹고 표식이 필요한 곳에 인베이더 그래픽을 붙인다. 그리고 탐지기는 인베이더 그래픽을 찾는 용도에서 인베이더 그래픽을 새길 장소를 모색하는 용도로 뒤바뀐다.

‘나’의 소설에서 균의 탐지기는 마지막에 한국을 가리켰고 이후 김균은 한국에 돌아와 아무도 모르게 인베이더 그래픽 작업 활동을 전개한다. 그리고 ‘나’는 백화점 옥상에서 김균의 탐지기를 발견한다. 여기서 김균과 ‘나’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김균’의 탐지기는 엉뚱한 곳을 탐지하고 기껏해야 쓰레기 더미나 발견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것이 ‘나’를 가리켰다는 것은 ‘나’가 이러한 무가치한 개인으로 전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마지막에 ‘나’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작업실인 옥상은 클리셰적으로 어떤 이가 불건전한 선택을 하는 장소로 자주 사용되기도 한다. 이를 통해 ‘나’라는 존재는 옥상에서 소멸한 것으로 해석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개인은 거대한 현실의 늪에 쉽게 가라앉아 버린다. 「달콤한 휴가」의 ‘그’도 「인베이더 그래픽」의 ‘나’도 이겨내기 힘든 현실의 풍파에 해체되어 버리고 만다. 하지만 이는 결코 개인이 나약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도 ‘나’도 모두 제대로된 개인이다. 단지 ‘실업’이라는 사회적 문제로 인해 변질되고 마모되어 버린 것일 뿐이다. 염두해 두어야 할 것은 실업이라는 사회적 문제만이 이러한 개인의 해체를 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세상엔 다양한 사회적 쟁점이 존재하고 다수의 사람들이 이러한 현실에 힘겨워한다. 단지, 다양한 현실문제 중 「달콤한 휴가」와 「인베이더 그래픽」에서는 실업에 대해 서술했을 뿐이다.

윤고은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어두운 사회적 면을 직선적으로 제시하고 부식된 인간상을 보여준다. 픽션을 가장한 현실을 제시함으로써 마치 예방주사처럼 앞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게 해준다. 그녀가 그려낸 소설은 어두운 현실 풍자가 아니다. 오히려 영화의 예고편에 가깝다. 따라서 우리는 예고편을 통해 앞으로 있을 각박한 현실을 인지하고 대비할 힘을 기를 수 있다. 만약 ‘그’가 실업으로 인해 미리 자신에게 닥쳐올 현실을 직시하고 있었더라면, 더욱 나은 선택을 했을지 모른다. ‘나’가 무명을 견뎌냈더라면 훌륭한 소설가가 되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사람은 좋은 소식보다 안 좋은 소식을 더욱 잘 기억하고 오래 간직한다. 「달콤한 휴가」와 「인베이더 그래픽」에 드러난 부정적 가상의 현실은 좋지 않은 충격이 될 수 있지만, 우리는 이를 기반으로 다가올 암울한 미래를 예견하고 성장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1인용 식탁』은 굉장히 친절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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