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웨어 중심의 관광지 조성사업, 그 유효기간에 대하여
책상 위에 오래된 보고서 하나가 놓여 있다.
먼지를 털어내고 '관광진흥법'이라는 다섯 글자를 응시한다.
누군가에게는 인허가를 위한 문턱이고, 누군가에게는 예산 집행의 근거가 되는
이 무미건조한 텍스트들이 우리 국토의 지도를 바꾸어 왔다.
하지만 오늘, 나는 이 보고서 안에서 '죽은 언어'들의 기운을 느낀다.
우리가 신봉해 온 관광개발의 성전은 늘 '조성'이라는 단어에서 시작되었다.
산을 깎고 바다를 메워 반듯한 사각형의 땅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한 콘크리트 상자를 올리는 일.
우리는 그것을 발전이라 믿었고, 진흥이라 불렀다.
하지만 그렇게 박제된 대지 위에서 여행자의 설렘은 좀처럼 피어나지 않는다.
데이터는 이미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최근 여행 트렌드 조사에 따르면, 여행자의 70% 이상이 '유명 관광지'보다
'현지인처럼 살아보기'나 '로컬 브랜딩 공간'을 선호한다고 답한다.
검색량 데이터에서도 '대규모 단지'보다는 '취향', '경험', '스테이' 같은 단어들의 상승 폭이 압도적이다.
박제된 대지 위에서 여행자의 설렘은 좀처럼 피어나지 않는다는 증거다.
인터넷 너머 들려오는 여행자들의 서늘한 냉소는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준다.
그들은 더 이상 '단지(Complex)'라는 이름의 고립된 섬을 찾지 않는다.
획일화된 주차장과 복제된 듯한 기념품 가게 사이에서 그들이 발견하는 것은 여행의 낭만이 아니라,
설계된 권태일 뿐이다.
이제 우리는 보고서와 법률 속에 갇힌 '하드웨어의 망령'에서 벗어나야 한다.
과거의 관광진흥법이 '공간을 채우는 법'이었다면, 이제 우리가 다시 읽어야 할 법은
'시간을 흐르게 하는 법'이어야 한다.
텅 빈 광장을 만드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그 광장에서 사람들이 어떤 표정으로 머물지를 고민하는 일이다.
정책을 짓는 이들과 사업을 이끄는 이들이여, 다시 법을 읽자.
다만 법조문 사이의 여백을 '서사(Narrative)'와 '취향'이라는 새로운 잉크로 채워 넣어야 한다.
관광은 이제 부동산의 문제가 아니라 '생동하는 삶의 조각'을 공유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도는 이미 바뀌었다.
낡은 나침반을 들고 목적지에 닿기를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박제된 대지를 깨우고, 그 위에 다시 살아있는 이야기를 심는 일.
그것이 우리가 오늘 다시 관광진흥법의 첫 페이지를 넘겨야 하는 진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