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정책은 산업을 넘어 권리를 다룰 수 있을까?

관광진흥법 이후의 질문들

by 경계의 갈가마귀

한국에서 관광은 오랫동안 산업이었다.

외화를 벌기 위한 산업,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산업,

부동산과 금융으로 포장된 개발 산업.


관광진흥법이 만들어진 시대에는 그것이 옳은 정의였다.

시설이 부족했고, 이동이 어려웠고, 여가가 희소했다.

국가는 관광을 공급했고, 사람들은 그것을 향유했다.

그 시절의 관광은 분명히 ‘산업’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여행은 산업이라는 단어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여행은 여가이고,

여가는 권리이고,

권리는 조건이 갖춰져야만 행사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여행은 주말의 선택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평생 한 번도 갖지 못하는 사치다.

누구는 휴가가 있어도 시간이 없고,

누구는 여유가 있어도 이동권이 없다.

그 격차를 메우지 않으면 관광은 산업이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을 드러내는 지표가 된다.


이제 관광정책이 질문해야 할 것은

얼마나 많은 관광객이 오느냐가 아니라

누가 여행할 수 있는가이다.


권리라는 언어를 들여오면,

정책의 시선이 달라진다.


산업은 수요를 묻지만

권리는 접근을 묻는다.


산업은 성과를 묻지만

권리는 공평을 묻는다.


산업은 지역을 소비하게 하지만

권리는 지역을 누리게 한다.


이때 관광은 더 이상 단지와 시설이 아니라

시간과 이동권, 체류와 경험, 회복과 재정렬의 문제로 변한다.


휴가 하나, 이동권 하나, 체류비 하나가

삶의 질을 결정하는 사회에서

여행은 그저 사치가 아니다.


그것은 회복을 위한 시간이고,

삶을 견디게 하는 장치이고,

도시가 잃어버린 감각을 되찾는 행위다.


그렇다면 관광정책은 무엇을 다뤄야 할까?


산업이라면 개발을 다루겠지만,

권리라면 여가를 다루어야 한다.


산업이라면 부지를 확보하겠지만,

권리라면 시간을 보장해야 한다.


산업이라면 관광단지를 설계하겠지만,

권리라면 이동과 접속성을 설계해야 한다.


산업이라면 경제력이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지만,

권리라면 누구나를 대상으로 한다.


이 지점에서 “관광진흥법”이라는 이름은

새로운 질문을 낳는다.


진흥의 대상은 관광인가, 여가인가.

혜택의 대상은 산업인가, 국민인가.

정책의 목표는 수치인가, 접근인가.


만약 관광을 권리로 본다면,

관광진흥법은 더 이상 적절한 법이 아닐 수 있다.

그 법은 개발의 시대를 위해 만들어졌고,

우리는 지금 체류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관광을 권리로 재정의하는 순간,

관광정책은 더는 문체부의 단독 업무가 아니다.

노동, 교통, 복지, 지역, 인구, 교육이 함께 다뤄야 하는 주제가 된다.

국가관광정책회의 같은 기구가 필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관광이 산업의 언어만으로는 더 이상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행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그 선택이 가능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사회가 만들어준다.

그 조건을 설계하는 것이

이 시대 관광정책의 새로운 역할이다.


관광이 산업이었다면 관광진흥법이면 충분했다.

관광이 권리가 된다면 다른 법이 필요하다.

그 법은 단지를 지정하지 않고

여가를 배분하는 법일 것이다.


질문…

산업은 사람을 셉니다.

권리는 사람을 돕습니다.


관광이 어느 쪽에 설 것인가.

이제는 그 질문을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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