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모르는 무한한 세상으로

내 삶의 균형을 찾아가는 일 #20대워킹맘 #육아휴직

by NOEY


입사 4년 차, 그리고 휴직 3주 차에 접어들었다.


다들 번아웃이 온다던 연차라 언젠가부터 쉴 타이밍을 생각하고 있긴 했지만, 직장인에게 휴직은 생각보다 많은 핑계가 필요한 일이라서 막연한 바람으로 여겼다. 그러다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핑계는 찾아왔다. 가장 바빴던 작년 늦여름에 알게 된 임신 소식이었다. 내가 생각하던 미래에는 늘 아기가 있었고, 주변 지인들에게 30살이 되기 전에 결혼을 하고 싶다며 젊은 엄마를 꿈꾸던 나였지만 그럼에도 갑작스러웠다. 대리로의 승격 시점이라 유난히 업무에 욕심을 내기도 했고, 그 덕에 맡게 된 새로운 일에서 성취감도 많이 얻은 와중이었다. 그리고 조금은 철없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20대의 한창을 보내고 있는 친구들과의 시간이 귀하다는 걸 역으로 깨닫는 20대의 후반이었다.


육아휴직은 가능한 짧게, 만삭까지 일을 놓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임신 중기까지는 이전과 다를 바 없게 보냈다. 겉모습의 변화를 많이 의식한 탓인지 주수 대비 크게 나오지 않았던 배와, 다행히도 심하지 않은 입덧으로 무려 20주가 넘어가는 시점까지도 아기의 존재를 종종 까먹을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4주 차부터 받아두었던 임산부 배지를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채, 지하철에서도 계속 서있기를 고수했다. 지금은 왜 사서 고생을 했는지..라는 생각이지만)


이렇게 지내다 보면 목표했던 주수까지도 별 탈 없이 회사를 다닐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담당하고 있던 프로젝트도 끝내고, 승격 소식도 무리 없이 받아볼 수 있겠다고 안심했다. 그런데 모든 사건은 안심한 순간 벌어지는 게 맞다. 며칠 간의 야근과 그에 이어진 이사에 무리를 했던지, 한 달 만에 갔던 검진에서 경부 길이가 많이 짧아져 조산 위험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37주가 넘어야 정상분만 이라는데, 당시 나는 아기가 채 1kg도 되지 않은 시점이라 문제가 컸다. 임신 중에 생길 수 있는 이슈가 이렇게나 다양하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회사에서 만삭까지 나오시는 워킹맘들을 적지 않게 봤기에 눈에 띄게 무리만 하지 않으면 누구나 10달을 큰 문제없이 보내는 줄만 알았다. (지금은 모두가 새로운 걱정과 낯선 증상으로 매 하루를 버티는 중이라는 걸 안다)


당장 휴직해야 한다며 최대한 심각해 보이는 진단서를 끊어주겠다는 교수님의 말에 타협의 여지가 없다는 걸 깨닫고, 일주일 뒤 바로 육아휴직을 시작했다. 연말 전사휴가와 새해를 고작 일주일 앞두고선 말이다. 그 일주일 간은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의 연속이었다. 4년간 함께 일한 팀원들에 대한 죄송함이 가장 커 부랴부랴 준비했던 휴직 선물(드리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 급박하게 준비하느라 적게 들어간 정성이 아쉽다), 모두가 맥시멀리스트라고 입을 모아 이야기했었는데 깔끔하게 비워져 버린 내 자리, 생각보다 반납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 꽤 신경 쓰였던 휴직 절차.. 4년간 습관처럼 다녔던 회사를 다니지 않는다니,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생각보다 어려웠다. 휴직 승인이 되자마자 메신저는 접속이 불가능해졌고, 업무로 가득했던 카톡방들은 하나둘씩 조용히 나가기를 했다. 하루아침에 나라는 존재가 지워진 느낌이었다. 나를 설명하는 키워드들은 여러 가지일 텐데, 그동안은 '직장인'으로서의 자아가 가장 거대했던 거다. 작년 한 해를 시작하며 썼던 만다라트의 절반은 업무와 커리어에 대한 목표였으니, 대리를 목전에 둔 4년 차 주니어에게 여러모로 중요한 타이밍이었음엔 틀림없다.


빠른 물살에 실려가는 배를 타듯 어지러웠던 25년은 그렇게 마무리. 가장 좋아하는 크리스마스도, 새해도 제대로 된 기분을 만끽하지 못한 채 1월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휴직 3주 차에 접어든 오늘은 드디어 글을 쓴다. 의도가 이제야 등장하는 걸 보니 서론이 지나치게 길어졌다는 걸 깨닫지만, 그것조차 이 시리즈에 어울린다.


자기 계발과 쇼핑으로 가득했던 내 알고리즘은 출산과 육아로 바뀌었고, 후기에 접어들며 급격히 무거워진 배 때문에 하루 일과는 상상 이상으로 단순해졌지만 이때를 빠짐없이 기록해두고 싶다. 엄마로서의 삶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해서 모든 정보들을 마치 공부하듯이 배우고 있고, 와중에 직장인으로서의 나를 잃고 싶지 않아 틈틈이 업계 모니터링도, 커리어적 고민도 하려고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내 생각을 더 많은 텍스트로 남기려고 한다. 짧게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까지도. (블로그와 일기를 지나, 브런치까지 찾아오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나를 잃지 않고 싶다. 결혼을 결심할 때도 들었던 생각이다. 나의 신변에는 변화가 생길지라도, 나라는 중심은 잃지 말자는 조금은 뻔하지만 어려운 다짐이다.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가 되더라도 어떤 아내, 어떤 엄마가 될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거니까. (아직 육아를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의 지나치게 이성적인 태도일까?)


올해는 만다라트를 쓰지 않았다. 20대 중반까지는 다음 스텝이 막연하게나마 그려졌다면, 지금은 눈앞이 캄캄하다. 앞으로 벌어질 많은 일들이 내가 상상 가능한 범위 바깥에 있을 것 같아 목표를 쉽사리 키워드화 할 수 없었다. 2026년의 목표는 그저 '균형'이다. 회사에서 쓰던 노트북에 포스트잇이 바래질 정도로 오래 붙여둔 한 단어기도 하다. 내가 바라는 균형이라는 건 딱 절반으로 나누어 수평을 맞추는 게 아니다. 내가 가진 역할과 책임들 가운데 적당한 비율을 배분할 수 있는 것. 무언가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 내가 무엇에 집중할지를 직접 선택하는 것. 지금은 직장인으로서의 나를 잠깐 내려두고, 그 자리에 엄마라는 나를 올려다 두는 일이 되겠다.


그런 다짐으로 이미 시작해 버렸다. 내가 모르는 무한한 세상으로 가는 이 여정을.

그리고 그 과정에 함께하는 존재들에 대한 사랑과 감사는 늘 잊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