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외롭지 않게 하고 싶은 마음 #20대워킹맘 #신혼부부 #임신일기
아침 6시면 출근하는 남편을 비몽사몽 한 채로 배웅하고, 조금 더 눈을 붙인다.
회사를 다닐 때 늘 가장 먼저 사무실에 출근할 정도로 아침잠은 적은 편이라 생각했는데, 휴직 후에는 일어난 뒤 혼자 보내야 하는 시간들이 너무 까마득해서 일부러 조금 더 누워있으려 한다.
늦잠-이래 봐야 9시를 넘기긴 어렵지만-을 자고 일어나 온 집안의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고, 금방 차가워진 공기의 부엌에 앉아 간단한 아침을 먹다 보면 고요한 집 안에 혼자 있는 일이 조금씩 익숙해짐을 느낀다. 그럼에도 같은 침대에 누워 둘의 대화로 하루를 마무리하던 어제를 떠올리면 이곳이 '나'의 공간이 아니라 '우리'의 공간이구나 하고 생각한다.
혼자 있고 싶은데 애인이 집에 안 간다더라, 사소한 생활 습관이 달라 자주 싸우게 된다더라, 유부가 되면 모임에 잘 안 부르게 된다더라며 결혼으로 인한 부정적인 변화에 대해 겁주는 소리들을 많이 들었다. 또래 중에 빠르게 결혼한 편임에도 말이다. 물론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고, 실제로 변하는 게 없다면 그게 더 거짓이겠으나 내가 결혼을 결심했던 순간 가장 크게 들었던 생각은 '의외로 변하는 게 많지 않겠는데?'였다.
평일에는 회사에서 각자의 지인들과 시간을 보내고, 매 저녁이면 하루의 에피소드를 공유하는 전화로 마무리, 그리고 주말마다 집과 밖을 번갈아가며 하는 데이트들. 결혼을 한대도 그 루틴이 크게 바뀌지 않을 것 같았다. (아기가 빠르게 찾아올 줄 몰랐던 건.. 논외다.)
그런데 너무 당연해서 놓쳐버린 가장 큰 사실은 '함께 살게 된다'는 것이었다.
조금 늦게 찾은 신혼집에 함께 살림을 시작한 지 고작 한 달 째지만, 요즘 그 의미에 대해 자주 생각하곤 한다.
대학생 때부터 적지 않은 기간 기숙사 생활과 자취를 했다. 정반대의 생활 패턴을 가진 룸메이트 언니와 서로를 깨우지 않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거나, 월세를 아끼기 위해 8평 남짓한 원룸에서 절친과 함께 지내다 한 학기만에 포기했던 이력을 떠올리면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동거는 더 어렵기도 하다. 거진 8:2의 비율로 내 물건이 훨씬 많긴 하지만, 집안 곳곳에 합쳐진 낯선 물건들 속에서 내가 모르는 과거의 조각들이 불쑥 튀어나오기도 하고, 사소한 생활 습관으로 내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성향을 추측해보기도 한다. 연애 때 자주 쓰던 '상대방을 알아간다'는 표현이 그저 말 그대로 앎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의 판단과 생활에 아주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을 기꺼이 감수한 현재의 동거는 사실 꽤..즐겁다.
첫째로 '우리'의 룰이 생기는 게 좋다. 지켜야 하는 가이드(guide)보다는 함께하는 루틴(routine)에 가깝다. 서로에게 남기고 싶은 모닝 메시지가 있으면 카카오톡이 아닌 냉장고 메모판에 써두는 것, 식료품의 소비기한과 세탁 타이밍을 공유하는 것, 같이 보던 프로그램의 다음 회차가 공개되면 둘의 시간이 생길 때까지 보지 않고 기다리는 것. 같은 공간을 공유하기에만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서로를 외롭지 않게 하고 싶어 하는 게 좋다. 곧 막달이 다가오는 데다 조산 위험까지 있다는 임산부 아내를 남겨두고 매일 새벽 출근하는 남편의 마음을 상상해 본다. 얼마 전, 언제 오냐는 나의 메시지를 받으면 가슴이 미어진다(...)는 남편의 말을 들어버린 탓이다. 혼자 보내는 시간의 장점도 분명하지만, 그보다는 둘의 시간이 고픈 신혼이기에 나의 질문 속 약간의 서운함과 간절함 따위의 감정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부분은 객관적인 귀가 시간을 물어봤던 것이기에 남편에게 꽤 미안하기도 했고 일부러 언제 오냐는 질문을 줄이기도 했다. 남편도 여전히 나의 외로움이 신경 쓰이는 모양인지, 본인이 출근한 평일 낮 시간엔 엄마나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는 걸 기꺼이 반겨주기도 한다. (공동의 공간이기에 꼭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나도 비슷한 마음이다. 몸이 무거워져 일찍 누워버린 날에는 가끔 스킵하고 싶은 날도 있지만 이왕이면 퇴근하는 남편을 꼭 현관에서 맞이해주고 싶다. 왼쪽으로 눕는 게 배뭉침 완화에 좋다고 해서 나의 잠자리를 침대 안쪽으로 바꿔놓기도 했다. 그래야 얼마 안 되는 시간이라도 마주 보며 대화하고 잠들 수 있으니까. 사실 같이 산다는 사실 자체보다는 이런 마음을 유지하려는 각자의 노력이 지금 내가 생각하는 동거의 가장 큰 의미인 듯싶다.
머지않아 아기가 태어나고 우리의 하루가 새로운 규칙성을 띄게 되면 이 마음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근래에 많이 챙겨보는 육아 브이로그들에서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수면 부족이 우리에게도 예외 없을 테니 분명 그럴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존의 룰을 지우고 새로 만들어가며 계속 함께 살 테다. 그러니 계속 서로를 외롭지 않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조금은 무거운 책임감을 가져본다.
오늘은 남편과 저녁을 같이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