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니어 광고기획자의 단상
개인사로 정신없는 와중 해가 넘어가버려 늘 하던 회고는 흐지부지 되어버렸는데,
복직 후의 나를 위한 가이드가 되길 바라며 뒤늦게나마 적어보는 25년 업무 회고.
어쩌다 보니 광고기획자라는 직무로 나를 소개한 지 4년 차.
정규직으로서의 첫 회사라고 할 수 있는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에서의 짧았던 3개월을 제외하면
나머지 3년 반 동안은 계속 같은 회사의 한 팀에 속해 일했고, 그렇게 현재 나의 전문성은 '경험마케팅 AE'다.
25년은 주니어의 첫 페이즈를 마무리 한 해로, 유난히 많이 부딪히고 쓸리며 배웠다.
1. 설득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 해
AE는 (좋게 말해) 제너럴리스트라지만, 사실 내가 하는 업무의 대부분은 설득의 연속이다.
의견을 낼 때는 이게 왜 좋은지에 대해 힘주어 이야기할 줄 알아야 하고,
심지어는 내 의견이 아니었던 것에 대해 조차도 이유를 찾아줘야 하는 일이 태반이다.
두 가지 모두 쉽지 않다. 업무에 있어 취향과 선호는 설득의 이유가 절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25년엔 그래도 이 부분에 조금이나마 노련함이 생겼다.
내가 더 많은 걸 알게 되어서는 아니다. 설득의 키포인트는 '남들보다 조금 더 부지런하게, 눈치 빠르게'였다.
늘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미팅에서는 대충 맥락만 훑는 게 아니라 매 발언에 대해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면 당장에 해결해야 할 쟁점이 보이고, 그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대안이나 다음 쟁점을 제시할 수 있다. 이게 반복되면 조직 안에서 나에 대한 신뢰가 쌓이고 -미팅을 주도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나의 다음 발언에 더욱 힘이 실린다. '~라는 말씀이시죠? ~가 필요하시다는 거죠?'라는 멘트도 자주 사용했다. (나와 당신의 이해가 같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걸 확인시켜 주기 위해서)
비즈니스 매너도 꼭 챙기려고 했다. 대부분 비대면으로 진행되는 업무 특성상, 하루에도 수십 개의 파일과 텍스트가 공유되는 단체 메신저방이 비즈니스의 주요 채널이다. 휘발되는 대화가 아니라 언제고 다시 올려볼 수 있는 증거가 남는다는 점에서, 메시지를 공유할 때 나의 의도와 정보가 왜곡되지 않도록 주의했다. 특히 피드백을 전달하거나 (AE가 가장 많이 직면하는) 급박한 요청 상황에서는 더더욱.
주변 동료들의 우호적인 평판이 AE에게 가장 큰 경쟁력이라는 걸 많이 배운 해였다. 부작용이라고 한다면 단체방에 올라오는 모든 안건에 대해 내가 태그 되거나, 개인 메신저로 오는 업무 연락이 많아진다는 것.
2. 일과 취미의 적절한 교집합을 잘 찾은 해
작년 하반기 구 남자친구(현 남편)의 영향으로 프로야구 열풍에 동참했다. 이전에 했던 아이돌 덕질 경력을 바탕으로 빠르게 야구 팬덤 문화에 적응했고, 하필이면 팬심이 가장 두터운 구단을 잡은 탓에 월요일을 제외하곤 매일같이 경기를 챙겨보던 와중이었다.
그때 프로야구 마케팅을 진행해야 한다는 클라이언트의 급한 요청이 있었고, 말도 안 되는 제안 일정에 누구라도 야구를 잘 아는 사람이 필요했다. 고작 야구 입문 3개월 차였지만 다시 말하면 당시의 열풍을 가장 직접적으로 경험하고 있던 나였고, 하필이면 나는 클라이언트의 핵심 타깃인 20대 여성이었다.
그렇게 자연스레 야구 프로젝트는 나에게 왔다. 지금 돌아보면 참 운명적이다. 상반기에 처음으로 메인 프로젝트를 리딩하며 상당한 번아웃이 왔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직후였기에 말이다. 작년 여름을 돌아보면 어느 하루는 잠실에서, 어느 하루는 대구와 대전에서 여러 구장을 전전하며 뜨거운 날들을 보냈다. 체력적으로 지치는 순간들은 많았지만 그럼에도 즐거웠다. 나의 취미가 일을 더 잘하기 위한 팁이 되고, 심지어 일이 취미 생활을 돕기도 했다. (당시 모든 구단의 경기들이 연속 매진을 기록하며 직관 티켓을 구하기 어려웠는데, 나는 몇 번이고 경기장을 방문했으니!)
그렇게 일과 취미의 적절한 교집합이 생기니 3년 차에 꺼져가던 의지가 되살아났고, 성과적으로도 신규 프로젝트 담당자로서의 공을 많이 인정받았다. 이런 운명적인 기회가 매번 찾아오는 건 아니겠지만 기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 정도는 계속할 수 있지 않을까. AE는 누가 뭐래도 제안하는 사람이니까.
다만 아쉬웠던 하나는, 나의 성과에 대해 어필하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
마지막 고과면담 때 나의 한 해 성과를 짧게 설명해 달라는 팀장님의 요청이 있었다. 이미 워드 2장 분량의 업적기술서를 제출한 뒤라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 내가 진행했던 업무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을 다시 읊었다. 그때 팀장님의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네가 못하는 게 하나 있구나? 네가 뭘 잘했는지 설명하는 거'
여전히 겸손이 미덕이라 생각하지만, 그 순간엔 참 민망했다.
고과든 평판이든 내 건 내가 챙겨야 하는 게 맞고, 말 안 해도 당연히 알아줄 거라는 건 너무나도.. 주니어 같은 생각이었다. 언젠가 복직 후에 다시 쓰게 될 업적기술서를 위해 당시 받았던 팁을 기록해 두자면 '어필은 두괄식으로, 임팩트 있게 하나가 남으면 된다'.
성과 어필이 아쉬웠다는 마지막 단락과 모순적이게도 25년은 사내에서 주니어로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표창을 받으며 마무리했다. 당장에 휴직계를 낸 게 아쉬워질 정도로 많은 성과를 인정받은 해였다. 그만큼 1년간 많은 고민 속에 있었던 스스로를 떠올려보지만, 모든 기억은 지나고 나면 미화되어 버리는 걸까?
나는 아직 이 일을 좋아한다.
복직 후의 나에게, 25년의 회고를 기억하며 다음 페이즈를 시작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