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무름에 대한 메모

작업노트 5

by 나소

머무름은 선택인가 조건인가


내가 못 머문 건 의지가 부족해서였을까

아니면 머물 수 없는 구조였을까


말하고 있을 때 점점 밀려나고 있다는 느낌이 있었다.

어딘가 상대방과의 접점이 미끄러지고 있었다.

혼자 있을 때도 내 마음은 여러 갈래로 나눠지고 있었다.

잡으려고 할수록 흩어지는 느낌.

그때 내가 불안이라고 부른 감정은 눈물을 만들었다.



그때의 나는 어디에 머물고 있었을까.

고통이라는 감각이었을까,

아니면 과거와 미래의 시간성이었을까.

혹은 머무는 것이 아니라 떠난 것이었을까.


고통은 지금의 아픈 상태이다.

그러나 아픔은 과거에서부터 이어지고

앞으로의 시간을 예측하게 한다.

그래서 현재를 산다는 말은

시간을 잘라내고 집중하는 일이 아니라

그 모든 시간이 지금에 겹쳐 있는 채로

살아내는 일일지 모른다.


병이 그렇듯이

병은 과거에서 시작되어 현재의 고통으로 드러나고

미래의 시간을 요구한다.

그러니 “왜 나는 현재에 머물지 못할까?”라는 고통까지

더 짊어질 필요는 없다.


고통은 벗어나야 하는 상태가 아니라

그냥 아픈 상태이다.

희망을 품어도 좋고

무통주사를 맞아도 좋고

견딜 장난감을 꺼내도 좋다.

병을 치료해 가며 살아가는 것에 정답은 없다.

과거를 재해석하고 미래를 유추하면서도

현재를 살 수 있다.


세상의 조건과 나의 조건이 자꾸 미끄러질 때

나는 말을 멈추게 되거나 머뭇거리는 나를 의식한다.

그럴 때 나는 세상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개인임을 더 느낀다.

구조를 모른 척할 수도 없고

완전히 알 수도 없다.


세상과 나를 아울러 생각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동시에 붙드는 일이 아니다.

연쇄적으로 살펴보는 일이다.

맥락을 관찰하고

정리하고

다시 엮어가는 일이다.


현재를 들여다본다고 머무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현재는 이미 작용의 맥락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머문다는 것은 무엇일까?


머문다는 것은 잠시 멈추어 있는 것이다.

재밌는 건 어디에, 얼마나, 어떻게 멈추어야 하는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앉아 있어야 하는지,

누워 있어야 하는지,

생각까지 멈춰야 하는지

쓰여 있지 않다.


그래서 머무름은

정적인 상태라기보다 여러 조건 속에서 버티고

끊임없이 생각하고

감각을 견디는

멈추어 있는 동적인 상태일 수 있다.


머무름은 선택일까, 조건일까.

머무름이라는 말의 느슨함처럼

그 정의 역시 어떤 맥락 속에서 만들어가는 것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