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weeks in Morocco with Sigma fp
1월 중순의 늦은 오후, 셰프샤우엔(Chefchaouen)에서 출발한 버스가 탕헤르의 터미널에 닿는다. 아직 탕헤르에 온 것이 실감 나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눈 앞에 보이는 것들이 바다가 아닌, 흔한 도시 외곽의 건조한 풍경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8차선 도로변, 이정표도 없는 길 위에 서서, 12분마다 온다는 이베리아(Iberia, 탕헤르 신시가에 있는 지역) 행 18번 버스를 기다린다.
건너편 하늘에는 이제 막 시작된 듯한 석양이 시간차를 두고 조금씩 아래로 가라앉는다. 길쭉한 컨테이너 차량에 가려 아쉬움을 자아내는 앵글이긴 하지만, 안쪽에서부터 바깥으로, 하얗고 노랗고 붉은 겹아치를 그리며 번져가는 빛은 아름답기만 하다. 내 뒤로는 공원 하나가 보이는데, 남은 토요일 오후를 잔디 위에서 보내는 탕헤르 시민들을 보니 괜시리 쓸쓸해진다.
아직은 해의 기운이 남아 있고, 작은 캐리어와 배낭, 짐도 그 두 개가 전부여서, 택시를 탈까 싶다가도 그냥 버스를 기다린다. 오늘이 아니면 탕헤르에서 버스를 타게 될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내일은 하루 종일 걸을 것이기 때문에, 다음 날은 탕헤르를 떠나야 하므로. 하루 내내 좋지 않던 컨디션도 배가 고픈 것만 빼고는 아주 좋다. 12분 간격으로 온다는 버스는 30분을 기다려서야 모습을 보인다.
버스에 오르는데 히잡을 쓴 중년의 여인이 자신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내 캐리어를 받아준다. 서늘했던 마음에 온기라는 것이 돈다.
꽤 오랫동안 여행을 하고 있지만, 낯선 곳으로 갈 때면 늘, 두려움과 긴장감이 이방인의 필수 요소라도 되는 듯이 따라다니곤 한다. 그럴 때 낯선 이의 친절은 마법의 바람 같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훅 하고 부는, 결 고운 바람. 그 바람이 불면, 허공에 떠돌던 두 발이 땅에 닿고, 더딘 마음도 비로소 새로운 곳에 착륙을 한다.
버스기사에게 10 디르함(약 1,250원)을 건네자 기계에서 뽑은 하얀색 티켓과 거스름돈 6.5 디르함을 내어준다. 짐을 들어줬던 여인은 자신의 옆 자리를 손끝으로 툭툭 건드리며 내게 앉으라고 한다. 나는 마다하지 않고 그녀 옆에 앉는다. 운전수 옆 자리, 오름처럼 살짝 솟은, 좌석이라고 할 수는 없는 공간인데도 어두워지기 전에 안전지대로 들어왔다는 사실 하나에 그저 마음이 놓인다. 게다가 내 옆에는 안면을 튼 누군가와 무엇보다도 신분이 확실한 운전수가 있으니 이보다 더 편한 자리도 없을 것이다.
고로 나는 버스의 맨 앞에 앉아서 탕헤르의 저녁 풍경을 느긋하게 감상할 수 있다. 길가에는 키가 그리 크지 않은 야자수들이 가로등과 비슷한 높이로 심어져 있고, 도로 위에는 신식 차량들이 불빛을 내며 달린다. 카사블랑카와 마찬가지로, 아프리카라기보다는 유럽의 냄새가 더 짙어 보이는 것은 아무래도 내 눈 앞에 보이는 곳이 메디나─아랍인들이 만든 구시가─가 아닌, 유럽인들이 만든 신시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인도 위의 사람들은 가방을 들거나 메고서 바쁜 걸음으로 어디론가 향한다. 가로등이 켜지고, 금세 밤이 찾아온다.
버스는 여섯 정거장을 지나 은행 간판들이 보이는 벨지끄 가(Avenue Belgique, 벨기에 거리)의 한 정류장─라스 므살라(Ras Mssallah)─에 멈춘다. 호텔까지는 예상 시간 5분. 나는 캐리어를 끌고 어디선가 풍겨오는 맛있는 냄새를 맡으면서 호텔로 향한다. 어서 짐을 내려두고 밥을 먹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아메리칸 랭귀지 센터를 지나 코너를 돌아 내리막길로 걷는다.
<모로코 메모리즈>는 2주 간의 모로코 여행에서의 감상과 일별(一瞥)의 이미지를 담은 에세이입니다. 모든 사진은 시그마 fp와 45mm F2.8 DG DN 컨템퍼러리 렌즈로 촬영하였으며, 카메라와 렌즈는 시그마 fp 앰배서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시그마 본사와 세기 P&C 측에서 제공해 주셨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