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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가도 괜찮다

언젠가 도달할 길임을 굳게 믿는다면

by 서정
@Kitera Dent by Unsplash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혹자는 인간을 두고 생물학적 기계라고 표현하기도 했지만, 나는 그 표현이 썩 유쾌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기계가 아니고, 인간을 기계의 일종처럼 표현한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지극히 인간적인 사고방식에서 기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기계는 인간이 만들어낸 산업사회의 산물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도구나 기술도 마찬가지로, 이들은 모두 인간의 필요에 의해 개발된 것이지 인간의 삶을 그 자체에 종속시킬 수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라는 인간은 사실 효율을 굉장히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무엇이든 최소의 시간, 최소의 자원과 비용을 들여 최대의 효과를 내는 것을 추구해왔다. 예컨대 수험생 때는 소질이 없는 과목보다는 관심이 있는 과목, 잘할 수 있는 과목을 택해서 미친듯이 팠다. 수많은 사회탐구 과목 중에 응시자가 많은 사회문화나 법과 정치 과목보다는 과감하게 내가 좋아하는 윤리 과목들을 선택했다. 가뜩이나 힘든 공부를 억지로 꾸역꾸역 하고싶지는 않았던 탓이지만, 좋아하는 만큼 진득하게 매달린 덕분에 좋은 결과도 얻었던 기억이 있다. 게임을 할 때에는 늘상 좀더 많은 적을 한번에 공격할 수 있는 또는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필살기가 있는 캐릭터를 주로 골랐다. 나이가 들면서는 그것도 힘이 들어 뒤에서 팀원들을 서포트하고 치료하는 역할에 매료되었고, 그 방법도 꽤나 효과가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생이든 게임이든 구태여 1인자가 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런 내게, 그리고 지금껏 자신의 길을 향해 열심히 달려온 사람들에게 한 마디 건네주고 싶다. '천천히 가도 괜찮다'고. 빠르게 가다가 넘어질 수도 있고, 예상 밖의 장애물을 만나 다른 길로 돌아가야할 수도 있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걸어서라도 가보고 싶거나 또는 어떻게든 가야만 하는 길이라면 템포를 조절하는 게 건강한 방법일 것이다. 제아무리 빠른 속도로 달린다한들 지치지 않을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면 꾸준한 속도로 걸어서 가던 사람이 처음부터 뛰어가던 사람을 어느 순간 앞서는 날이 올 수도 있다. 요컨대 사람은 기계와는 정반대의 지점에 놓여있는, 효율과는 가장 거리가 먼 존재라고도 볼 수 있다. 어떤 동물들은 태어난지 단 몇 시간만에 걷고 달릴 수 있는데도 인간은 오랜 시간을 먹고 자며 천천히 성장해나가니 어쩌면 인간은 애초부터 설계의 목적이 다른 존재들과는 다른 피조물일지도 모른다. 더 멀리, 더 오랫동안 갈 길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느려도, 헤매도 괜찮다. 설령 원래 목표로 했던 길을 가지 못한다고 해도 다른 길을 찾으면 되니까. 모두가 가는 길이 확답일 수는 있을 지언정 반드시 정답인 것은 아니니까. 자기만의 속도와 방향을 찾아서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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