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26일, 첫 번째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던 사람에게서
내가 보였다.
"예수천국불신지옥예수믿고구원받으세요여러분우리주그리스도예수님을믿어야..."
까만 지하철 창문에 쫓기듯이 시선을 옮겼다. 눈이라도 마주칠까 싶어 몰래 창문으로 비춰 보았다. 그분은 목을 조르기라도 하듯 성경책을 굳게 안고 있었다. 나보고 들으라고 하는 말인지 자기만 들으려고 하는 말인지도 모를 만큼, 낮게 빠르게 단조롭게 반복적으로 단어를 쏟아내고 있었다. 해진 구두는 이 연설이 오늘만이 아니었음을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나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내가 보였다. 웃음이 멈췄다.
정답이 있는 삶은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정답이 없는 삶이 더 좋아졌다.
나도 교회를 다닌 적이 있다. 나쁘지 않았다. 고달픈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었으니까. '왜 나는 이렇게 태어났을까', '왜 나는 이따위로만 하는 걸까' 하면서 내게 겨눈 칼은 '신의 뜻'이라는 거대한 물결 앞에 자연히 고개를 숙이곤 했다. 어려운 수학 문제들이 득시글대는 문제집을 풀다가 해답지를 몰래 본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도저히 내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 나를 괴롭힐 때면, '원래부터 있던 답'을 듣고는 만족감에 휩싸여 집에 돌아가곤 했다. 물론, 친구들도 많이 데려갔다. 인심 썼다, 너도 정답 한 번 보라는 마음에서.
내가 더 이상 교회를 나가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던 건, 꽤나 단순한 이유였다. '아, 맞아. 내 삶은 숙제가 아니지.' 누가 잘 살아보라고 시킨 적도 없고, 내가 죽고 나서 잘 살았는지 못 살았는지 채점할 사람도 없다. 그래,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른다. 교회를 다니면서 이런 생각을 안 했던 건 아니다. '혹시 누가 나보고 잘 살라고 시켰던 거고, 죽고 나면 채점할지도 모르는데, 이왕이면 좋은 점수를 받도록 사는 게 낫잖아?' 그런데 아쉽게도 나는 그렇게 모범생이 아니었다. 학교 숙제도 그렇게 하기 싫어했는데, 인생도 숙제처럼 살아야 한다니. 대답할 수 없었던 질문에 신이 나타나 답을 주었고 그 답에 위안을 얻었지만, 어느 새 그 답에 맞춰 살려고 발버둥 치는 내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난 해답지를 덮었다.
설문조사 종교란에 당당히 '무교'를 쓰게 되면서 여러 변화가 찾아왔다.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주말의 늦잠을 잘 수 있게 된 것도 좋았지만, 가장 좋았던 건 먼지가 뽀얗게 쌓인 '고민하는 능력'을 발견하게 된 것이었다. 해답지가 없는 삶은 고민의 연속이다. 걱정했던 대로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 날을 세우고 나를 겨누기 시작했다. 그런데 예전처럼 무턱대고 찔리지는 않았다. '모르겠다'는 두 팔을 들고 칼이 내 안에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거다. '모르겠다'에 '그런데 난 이렇게 생각해'를 붙이면 나를 향해 덤비는 칼을 쳐내 반대로 향하게 한다. 맞는지 틀리는지는 관심 없다. 모르는 건 모르는 거고, 내 생각은 내 생각인 거다. 해답지가 없는 삶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서양철학의 시작은 신화로부터의 독립이었다.
나의 철학도 마찬가지다.
세상은 예상했던 대로 엉망진창이었다. 알 수 없는 것들로 뒤죽박죽이었다. 이 엉망진창이 참 싫었다. 그래서 신을 만났고 답을 얻었다. 그런데 지금은 엉망진창이 더 좋다. 알 수 없는 것들 속에서, 나는 진짜 내 생각이 무엇인지 확인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철학을 전공하기로 마음먹었다. 서양철학사 수업시간에 배웠던 말이 떠오른다. "서양철학은 옛날 그리스 사람들이 '신화적 해석'에서 벗어나면서 시작했다." 신과 이별하면 생각이 자란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불경처럼 외는 그분은 과연 답에 꼭 맞는 삶을 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