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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영 Sep 01. 2022

공황

공황이라는  내가 세상에서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라고 한다. 내가 믿는 신념이 사람들이 믿는 통념과 결코 합일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공황을 만든다. 내게는 자명한 것이 사람들에게 전혀 먹히지 않을 , 그리고 앞으로도 사람들이  말을 들어주지 않겠다 싶을 , 공황이 온다.


에두아르도 콘의 <숲은 생각한다>에는 이런 예시가 나온다. 콘은 버스를 타고 가파르지만 평화로운 시골길을 가던 중이었다. 산사태가 나서 길 앞뒤로 토사가 쏟아졌다. 콘이 탄 버스는 길 한가운데 옴짝달싹 못하게 됐다. 콘은 행여 머리 위로 바위가 떨어지지나 않을까 걱정스러웠는데, 같이 타고 있던 여행객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들이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는 모습을 보고 콘은 말 그대로 질려버렸다. 콘이 회복되는 데에는 며칠이 걸렸다.


현실에서 완전히 유리된 느낌. 그게 공황이다.


콘의 공황은 알프레드 히치콕의 서스펜스 개념과도 비슷하다. 서스펜스는 관객에게 공황을 불러일으키는 영화적 장치다. 공황은 물건을 부수거나 사람이 죽어나가는 장면에서 유발되지 않는다. 일상적인 장면에 앞서, 그 일상을 박살낼 수도 있는 사건을 암시하는 것이다. 포커판 탁자 아래 설치된 시한폭탄. 터질 것은 분명한데 아무도 모르는 그 장면, 한창 포커를 치던 중에 시한폭탄의 존재를 설명할 때의 그 당혹스러움이 공황을 일으킨다.


누구나 마음에 그런 바위와 시한폭탄 하나쯤 안고 살지 않을까?


공황이 나를 휩쓸 순간은, 그래서 아마도, 공황에 빠진 이를 마주했을 때가 아니라, 공황 따위는 들어본 적도 없다는 듯이 살아가는 사람들 틈에 껴서 살고 있음을 뒤늦게 깨달았을 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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