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상은 수많은 말들에 지쳐있다. 매일매일 쏟아지는 말잔치 속에서 유독 내 귀에 걸리는 말들이 있다. 그것은 “전근대적이다” “21세기에 어떻게 이런 일이...”와 같은 말들이다. 이런 말들은 언론인이나 지식인을 자처하는 이들이 자주 사용하는 표현인데, 어떤 사람이 시대에 뒤떨어졌다라든가 몰상식하다라는 말을 하기 위한 클리셰다. 이런 표현을 즐겨 쓰는 이들이 전제하고 있는 것은 세상은 당연히 시간에 따라 진보한다는 믿음이다. 그러나 그것은 진보해야만 한다는 강력한 당위이거나, 진보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일 수는 있어도 현실은 아니다.
내가 몸으로 겪어온 세상은 결코 시간에 따라 진보했던 적이 없다. 물론 일견 그렇게 보이는 사건들은 존재한다. 예를 들면, 한국의 1인당 GDP가 일본과 대만을 앞질렀다는 뉴스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추상적인 지표일 뿐 구체적인 한 사람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살아온 40여년의 시간을 돌이켜보아도 그렇다. 나에게는 분명 이전보다 나아진 것도 있지만 그만큼 퇴보한 것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문제가 극복되면 그로 인해 예기치 못한 다른 문제가 나타나고, 무엇인가 얻으면 무언가는 잃게 되는 것이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며 경험한 세상의 진실이다. 나에게 세상은 단 한 번도 조화롭거나 질서정연한 적이 없었다. 단지 그렇게 보이거나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을 뿐이다. 세상은 원래 뒤죽박죽이었고 예측 불가능한 카오스였다. 따라서 거대하고 단순한 지표들은 구체적이고 복잡한 한 사람의 생애 앞에서 길을 잃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훈은 그의 에세이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간은 앞으로만 가는 것이 아니다. 뒤로도 간다. 앞으로 가는 시간과 뒤로 가는 시간 사이에 우리는 끼여 있다. 그것이 삶의 순간들이다. 모순에 찬 삶은 그래서 여전히 신비하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러한 삶의 모순과 신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에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카오스는 이 세상이 카오스라고 믿는 사람들이 아니라, 세상은 합리적이며 질서정연해야한다고 믿는 사람들에 의해서 자행되고 있다.
종교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에 대해 생각해보자.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구시대의 유물정도로 치부하고 있다. 소위 종교전문가를 자처하는 이들도 종교가 전근대적인 것이고, 21세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퇴물이 되었다고 손쉽게 진단한다. 그들은 종교가 시대에 발맞춰 개혁되어야한다고 외치고 있다. 또한 세상에는 참종교와 거짓종교가 있으며, 유익한 종교와 해로운 종교가 있다고 설파하고 있다. 그들은 마치 선지자라도 된 듯이 시대에 뒤떨어진 종교는 몰락할 것이라고 짐짓 슬픈 표정으로 겁박하기를 즐기는 듯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우리는 종교의 몰락이 아니라 오히려 종교에 삼켜지고 있는 세상을 보고 있다. 그것은 종교가 시간에 따라 진보하거나 진보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카오스안에 이미 뒤섞여있는, 그래서 인간과는 떼려야뗄 수 없는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최신작 “아수라처럼”을 보았는데, 이 작품은 가족이라는 주제를 통해 그러한 인간의 카오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가족이라는 관계는 참 복잡미묘한데,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을 느끼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깊은 증오를 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감독이 말하려는 미묘한 애증의 감정이고, 아수라인 것이다.
이 드라마는 네 자매가 아버지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은 셋째 딸 타키코였다. 타키코는 아버지의 불륜을 가장 먼저 알았고, 흥신소에 의뢰하여 확실한 증거를 확보할만큼 치밀한 성격을 가졌다. 그녀는 고지식하고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이 분명한 사람이었기에 다른 자매들과는 달리 불륜을 저지른 아버지에 대해 가장 크게 분노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지점은 그녀가 아버지의 불륜을 밝히기 위해 고용했던 흥신소 직원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가 웃음을 터트리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감독은 아버지의 불륜을 통해 그녀가 평생토록 기다려왔던 천생연분을 만나게 된다는 것, 이러한 웃지못할 비극과 희극의 뒤섞임이 우리의 일상이고 현실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기이한 인생임을 조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 드라마는 일본의 7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 드라마가 이 시대에 리메이크되었다는 것은 이 이야기속에 오늘날 우리가 잃어버린 가치가 담겨있기 때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