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에 대한 나의 생각
자유라는 주제로 내가 깊게 생각한 적이 있던가? 자유는 막연히 개인이 누려야 할 영역으로만 생각했지 사회적으로 바라본 적은 없었다. 자유론에서는 사회적 규범으로부터 개인이 가질 수 있는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자유는 정치권력과 사회로부터 개인을 보호할 수 있는 영역을 말한다. 즉, 지배자가 개인에게 행할 수 있는 권력에 제한을 두는 것이다. 권력은 어디까지 개인의 영역을 침범할 수 있는가? 우선, 국가 권력이 개인을 침범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인간은 오랜 시간 동안 만인이 평등하지 않았다. 또한, 종교를 통해서 지배자들이 우위를 차지하는 형태로 지속되어 왔다. 그러면서 당연히 개인의 집단보다는 권력자, 즉 왕권이 항상 우위에 있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는 국가가 개인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개인의 영역에 다양한 간섭을 했고, 그것을 또 당연시 여겼다. 현재, 우리는 겉에서는 만인이 평등하다고 말하는 세상에 왔다. 그러니 이제는 국가 권력이 개인의 영역에 침범하는 것에 제한을 두어야 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국가가 개인에게 개입하는 유일한 이유는 보호가 목적일 경우이다. 국가의 개입으로 개인이 더 발전하는 결과를 얻을 것이 보이더라도, 국가는 개인에게 함부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수많은 위험이 발생한다. 모든 이들이 옳은 판단 하에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 사회에 해악을 끼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가? 그래서 자유에 전제조건을 붙인다. 오직 정신적으로 “성숙”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만 자유를 적용해야 한다. 아직 타인의 돌봄이 요구되는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외부적으로나 내부적으로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미성숙한 어린이나 정신에 결함을 가진 자들에게는 국가적인 보호가 필요하다.
이제 개인과 개인의 영역에서의 자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개인의 자유에는 또 하나의 조건이 붙는다. 그것은 타인에게 “해악”이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개인이 자유를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해악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본인의 이기심으로 타인에게 물질적, 정신적 손해를 입히는 것은 당연히 해악의 영역에 속한다. 그런데 해악은 단순히 감정이 상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행동이 맘에 들지 않다고 해서 나에게 해악으로 작용한다고 볼 수 없다. 해악에 대해서는 사실 정확하게 법으로 정할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성숙해야 한다. 우리는 해악에 대한 자신만의 객관적 기준이 필요하다. 그 기준으로 나의 자유, 그리고 타인의 자유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자유는 타인에 대한 존중에서 나온다. 우리가 가장 당연하게 여기면서도 가장 어려운 부분은 타인의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다. 문자로는 간단하게 정의할 수 있지만, 나의 내면에서 타인의 개성과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것은 많은 인내가 필요한 일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의미가 없고 쓸데없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타인이 행동할 때 그것에 간섭하지 않고 비난하지 않을 수 있는 내면의 성숙함이 필요하다. 또한, 나에게 중요하고 필수적인 것들이 타인에게는 비난받을 만한 행동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성숙한 인간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와 타인을 동일하게 놓고 볼 수 있는 정신적 성숙이다. 나와 타인의 자유를 공평하게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어떤 것이 필요할까? 내가 생각한 방법은 바로 사랑이다. 즉, 나를 존중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면 된다. 그렇게 나를 사랑할 줄 알게 된다면, 타인도 타인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이란 인지가 될 수 있다. 그러면 내가 중요한 만큼 타인도 중요하다는 마음의 성숙함이 따라올 것이다.
자유론에서 말하는 자유는 여전히 어렵고, 나는 자유를 누리기 위한 성숙한 사람이 되기까지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자유론을 읽고 느낀 점은 간단하다. 나는 자유로운 사람이고 싶다. 나는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나는 그런 자유를 누릴 줄 아는 성숙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 그래서 나는 내가 속한 사회의 모두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그런 세상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