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쳇바퀴
<공산당 선언>의 첫 문장은 아주 인상 깊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 –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공산주의는 그 시절 사람들에게 무엇이었을까? 어떤 사람에게는 희망이었을 것이다. 지긋지긋한 자본주의에서 공장의 도구로서 존재하는 사람들에게는 공산주의가 정말 매력적인 생각 아닌가? 프롤레타리아트를 해방될 수 있다니, 부르주아의 권력을 파괴할 수 있다니 얼마나 멋진 생각인가? 사실 공산당 선언에서 지적한 자본주의의 문제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산업혁명은 단기간 적은 비용으로 수많은 생산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래서 자본가들은 더욱 탄탄한 권력이 생긴다. 그리고 노동자들에게는 특별한 소유물 없이 오직 고용의 형태로 공장의 부품으로 전락했다. 예부터 하위계층을 차지하는 노동 계급이 존재했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농민들이 있었다. 하지만 농민과 프롤레타리아트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농민은 토지를 소유할 수 있고, 농작물을 소유할 수 있었지만, 프롤레타리아트는 그 어떤 것도 소유할 수 없다. 자본주의에서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트의 격차는 줄어들 수 없다.
이렇듯 공산주의는 노동자들에게는 희망이 되었다. 하지만 공산주의에는 가장 큰 문제점이 있다. 바로 부르주아도 프롤레타리아트도 욕망을 가진 인간이라는 점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정말 사적 소유를 폐지하고 싶어 하는가? 그렇지 않다. 정확하게 말하면 인간은 사적 소유를 많이 하고 싶은 존재이다. 소유에 대한 욕망은 인간 모두에게 존재한다. 프롤레타리아트라 한들 사적 소유를 많이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 다른 사람에게 평등하게 나누겠는가? 인간은 어쩌면 평등을 바라는 게 아니라 하나의 신분 상승을 바랄지도 모른다. 공산주의라는 혁명은 사실 부르주아의 것을 빼앗아 ‘나’의 것으로 만들고 싶은 핑계였을 것이다.
<동물농장>에서 동물들은 인간에게 노동력을 착취당한다. 그리하여 메이저 영감의 주장을 필두로 동물들은 인간을 적으로 삼고 동물혁명을 일으킨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동물 7계명의 마지막 7번,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구절이다. 동물들은 결국 혁명에 성공하고 그들의 우두머리였던 메이저 영감은 죽고 새로운 권력자가 등장한다. 그들은 이제 인간이 동물을 착취했던 것처럼 자신 외의 다른 동물들을 착취하기 시작한다. 동물농장의 번영을 위해 모든 동물 위에 군림하며 종처럼 부리고, 심지어 살생까지 일삼는다. 이 모습을 이렇게 표현한다. “누가 사람이고, 누가 동물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 말은 앞에서 내가 언급한 인간의 소유욕과 일치한다. 그 누구든 권력을 가지면 그 권력에 취해 자신만을 돌본다. 그리고 그 행위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한다. 다른 누군가가 권력을 휘두르면 맞서 싸워야 할 나쁜 것으로 분류하여 혁명으로써 처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권력의 중심이 자신이 될 경우에는 자신의 권력은 정당하고 타당하고 모두를 위한 본인의 숭고한 희생이라 자위한다.
<1984>에서도 그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혁명으로 차지한 권력의 상징 빅브라더는 모두를 감시한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불신하는 모습을 보이면 정신개조를 위해 고문하고 괴롭힌다. 분명 빅브라더는 이전의 권력으로부터 일반 시민을 보호하기 위한 혁명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권력을 가지고 나니 그 권력에 도전하는 또 다른 빅브라더가 나타날까 두려웠을 것이다. 그리하여 모두를 감시하고 모두를 괴롭힌다. 이게 과연 혁명인가? 어떤 이데올로기를 주장하든지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것의 승리를 위해 싸운다. 그 이데올로기는 진정한 혁명일까? 그렇게 권력을 차지하고 나면 그것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이 맞서 싸우던 이전 권력자들과 똑같은 방식, 오히려 더욱 무서운 방식으로 피지배층을 억압한다. 그것을 혁명이라 부를 수 있는가? 사실 어쩌면 혁명은 나쁜 관행을 없애기 위한 것이 아니고 나쁜 관행의 주최자가 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권력자의 쳇바퀴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우선, 불편함을 알아채야 한다. 동물농장의 동물 중 대부분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는 시야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권력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다. 우리는 더욱 많이 배워야 한다. 그리고 권력자를 감시하는 역할을 모든 시민이 해야 한다. 그들이 바라는 무지한 시민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많이 배우고 인지를 하게 되더라도, 표현할 수 없으면 큰 의미가 없다. 권력자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 모두가 불편함을 함께 표현해야 한다. 사실 가장 중요하면서 어려운 문제다. 불편함을 인지하고 불편함을 말할 수 있는 용기! 서로가 서로의 용기가 되어 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