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테라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나’는 가벼운가 무거운가, ‘나’는 가벼운가 키치한가

by 초이

나에게 인생이 가벼웠던 적이 있던가? 항상 쫓기듯 살아왔다. 어릴 때부터 나는 무언가 목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처럼 달려왔던 것 같다. 그렇다고 모든 결과가 좋았냐고 물어본다면 그렇지도 않다. 인생은 성공하기 어렵다. 그러나 성공을 얻어낸 것들은 항상 노력이 깃든다. 노력 없이 성공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우리는 열심히 앞을 보고 내달린다.



그래서 그랬던가? 나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등장인물들이 모두 미친 사람으로 느껴졌다. 이들은 왜 나에게 미친 사람으로 느껴졌을까? 토마시는 테레자를 사랑한다면서 매일 밤 테레자를 배신하고 다른 여자들과 잠자리를 갖는다. 테레자는 토마시의 바람기에 슬퍼하면서 토마시를 탓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이 토마시에게 완전한 만족감을 주지 못하는 것에 분노한다. 여기서 나는 나 자신에게 내재된 도덕적 관념, 밀란 쿤테라의 표현을 빌리면 ‘키치’를 인지했다. ‘바람을 피우는 사람은 최악이다.’라는 내재된 키치가 소설 속 주인공들을 불편하게 만든 것이다.





사랑은 정말 절대적 가치이고 숭고한 것인가? 이런 의문이 든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하는 사랑은 각각 다 다른 형태이며, 심지어 사랑을 여기는 태도마저 다르다. 토마시는 테레자를 사랑하면서도 다른 여자들을 만난다. 그러면서 진정한 사랑은 테레자라고 하며 테레자의 존재를 묵직하게 여긴다. 테레자는 토마시의 바람에 상처를 받으면서도 끝까지 토마시를 사랑하고 오히려 자기의 육체를 혐오한다. 두 사람의 사랑 방식은 내가 아는 사랑의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사랑조차 결국에는 가볍게 여기면 한없이 가볍고, 무겁게 여기는 것 자체가 키치다.



이 책에서 나오는 키치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 사비나는 계속해서 키치를 피하려 한다. 키치를 피해 프란츠에게서도 도망친다. 키치란 무엇이길래 사비나는 그토록 키치를 공산주의보다 싫어하는가? 인터넷에 검색하면 키치함은 그저 저속한 문화, 저속한 예술이라는 표현으로 치부된다. 밀란 쿤테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키치에 대한 에세이라고 할 만큼 키치에 대해 중요하게 보고 있다. 그런 그가 현대적 의미의 키치를 크게 비판했다고 한다. 밀란쿤테라가 말하는 키치는 가벼움에 대한 절대적인 부정을 의미한다. 즉, 우리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것, 의미 있는 것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긍정이다. 즉, 키치란 무거운 것에 속한다.





나는 무거운 존재인가? 아니면 무거운 존재가 되고 싶은 것인가? 깊게 고민해 보게 된다. 첫 구절에서 니체의 영원회귀를 언급하면서 제목에서는 가벼움을 말한다. 저자는 무거움도 가벼움도 어느 것도 옹호하지 않았다. 영원회귀는 결국 지금 이 순간이 영원히 반복되니까 한 순간 한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영원히 이 구간이 반복된다는 말이 크게 무섭지는 않다. 어쨌든 현재의 나는 현재로만 존재하지 영원히 반복되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결국 망각하고 있지 않나? 나는 지금 현재의 내가 몇 번이나 반복되었는지, 아니면 이게 최초인지 모른다. 결국 나는 회귀를 하든 하지 않든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지금 이 순간 나는 최초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복이 두렵기보다는 최초인 삶 그 자체에 의미를 두며 인생을 무겁게 살아가려고 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가벼움이란 나쁜 것인가? 사비나는 왜 그토록 가벼워지려 애썼을까? 가벼운 삶이란 무엇인가? 가벼운 것은 어쩌면 해탈의 경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 모든 것 들에서 초월하는 삶. 그 어떤 속박도 없이 그냥 나 자체로 존재하는 삶. 굴러가는 데로 살아지는 삶. 그 삶이 가볍다 하여 그 삶의 의미가 가벼워지진 않을 것이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체코가 러시아 공산당의 지배를 받아 억압받는 시기이다. 공산주의는 애초에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세상을 만들어 주려고 나타났다. 그러다 결국 그 좋은 세상을 위해 많은 사람들을 속박하고 억압했다. 자신들이 주장하는 “좋은 세상”을 위해 끊임없이 많은 사람들을 감시하고 검열한다. 자신들의 사상에 반발하는 사람들을 제거해 나간다. 결국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탄생한 것이 이 세상을 지옥으로 바꾸어 놓았다. 옳다고 생각했던 절대적인 가치는 사실 절대적으로 옳은 가치가 아니다. 그렇기에 무거운 것이 꼭 옳은 것이 아니다. 키치가 꼭 정답이 아니다. 우리는 무거움과 가벼움 그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다.





결국 이 책에서도 나는 <자유론>으로 돌아가게 된다. 타인에게 해악을 끼치는 것을 비판하고, 타인의 의견을 억압하지 말라는 존 스튜어트 밀의 주장은 그 어떤 관점에도 적용이 된다.



이 책을 읽고 키치에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키치에 관한 책을 읽어보려고 한다. 좋은 책은 또 다른 좋은 책으로 연결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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