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난 나에게 넌

재회

by 초이

졸업 후, 그 애는 그 흔한 SNS에도 뜨지 않았다. 다른 애들은 찾지 않아도 친구 목록에 저절로 뜨는데, 그 애의 흔하지 않은 이름은 단 한 번도 뜨지 않는다. 주변 애들의 말로는 유학을 갔다고 했다. 그 애의 여자친구가 SNS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가입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여자친구가 있다는 소문에도 놀라지 않을 만큼의 시간이 흘렀는데, 이상하게 그 단어가 뇌리에 꽂힌다. 그 애는 기억 속 10대 소년에서 멈춰있었고 그마저도 옅어져 버렸다.


어른의 삶은 여유도 낭만도 없는걸 그 시절엔 몰랐다. 사는 게 바쁘다 보니 추억의 힘도 사라진다. 업무에 시달리고 나면 하루가 끝나고 다음날 어제 같은 하루가 또 시작되는 삶. 그 삶은 작은 미소에도 설레던 나마저도 잊게 만든다. 쳇바퀴 같은 삶에 지칠 때쯤, TV 프로그램에 나온 한 도시를 보게 된다. 우연히 본 소설 속 배경인 도시였다. 반가운 마음에 찾아보다가 용기를 내 비행기를 예약했다.


일상을 벗어나니 잊었던 감각들이 들어온다. 지루한 10시간의 비행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해방감이 몰려온다. 이어폰을 꺼내다가 가방에서 펜이 떨어진다. 하필 옆자리로 떨어져 버린 펜을 어떻게 해냐 하나 고민하는데 옆자리 사람의 허리가 숙여진다. 지금까지 쳐다보지도 않았던 옆자리에 시선을 보내 황급히 감사를 표현했다.



그에게서 익숙함이 묻어났다. 마주친 눈이 당황스럽게도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아, 그 애였다. 그 애라는 인지가 끝나자 그는 나에게 펜을 건넸다. 그 애도 나를 알아봤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알아본듯한 눈빛을 보낸다. 가뜩이나 설렘 가득한 나에게 그 애와의 재회는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사건이었다. 마치 내가 일상에 지쳐 이런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이 더 현실적이었다. 장소도 상황도 그 애도 꿈같았다.


10시간의 비행에 그 애와 나는 어색하지만 대화를 이어가기도 했다. 체력을 보충하려던 나의 계획엔 큰 차질이 생겼다. 갑자기 학생 때로 돌아가서 사라진 낭만을 끌고 온 것만 같았다. 지루함을 예상했던 10시간의 비행이 그 어떤 시간보다 짧게 느껴졌다.



도착과 함께 우리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각자 예약한 숙소도 달랐고, 이곳에 온 목적도 달랐기에 우리는 헤어져야 했다. 기회가 되면 보자는 인사치레로 꿈에서 깨어났다. 그래도 괜찮았다. 이 여행은 나만의 낭만을 채우기 위해 왔으니까. 가고 싶었던 곳들을 돌아다니며 일상도 잊고, 비현실적인 재회도 잊어야 했다. 뚜렷한 계획 없이 발길 닿는 데로 돌아다녔다. 작은 도시를 둘러싼 성곽을 거닐면서 빠르게 흐르는 이 시간이 아쉬워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생각을 하며 고개를 드니 다시 꿈이 찾아왔다. 이 여행의 목적은 그 애인가하는 착각이 들었다.



함께 걷고 밥도 먹고 이야기도 나눈다. 그 시절에도 이렇게 해본 적은 없었기에 믿기지 않는다. 왜 우리는 돌고 돌아 이 낯선 곳에서 만났단 말인가? 나는 왜 한눈에 그를 알아본 걸까? 이유가 중요하지는 않다. 밤거리를 걸으며 이상한 결론에 다다른다. 원래라면 절대 없었을 이상한 용기가 튀어나온다.



"예전에 말이야, 내가 너 좋아했었어."



절대로 하지 않았을 말인데 뱉어놓고 보니 후회보다는 후련함이 몰려온다. 고백이란 게 생각보다 별거 아니라는 생각에 웃음이 튀어나온다. 이 황당한 고백을 받은 그애도 덩달아 웃는다. 그렇게 멈추기 어려운 웃음을 다 내보냈다. 웃음이 그친 후 정적과 함께 눈이 마주친다. 장난스러운 미소가 걸린 그애의 입이 움직인다.




"나도, 널 좋아했어."


* 지난 글 Je T’aime의 후속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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