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죄와 벌, 지하 생활자 수기,안나 카레니나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는 같은 나라에서 같은 시기에 태어나 대작을 만들어 낸 훌륭한 대문호들이다. 작품을 읽으면서 러시아는 참 복도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이렇게 멋진 작가들이 동시대에 존재했단 말인가?
어릴 적엔 톨스토이의 단편선이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가 교과서에도 나왔기 때문에 조금 더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어린 나이에도 글을 보면서 뭉클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일까?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보다는 [이반 일리치의 죽음]과 [안나 카레니나]를 먼저 완독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고 나서는 톨스토이가 실제로 죽어본 경험을 가지고 글을 쓴 것이 아닌가라는 착각에 빠졌다.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는 톨스토이의 성별은 사실 여자인 걸까? 여자의 마음을 어떻게 이렇게 잘 아는 건지 의심스러웠다. 톨스토이는 사람들 사이에 있는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들을 다루는 것에 천재적인 능력이 있었던 것 같다.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마주하면서 매료되어 가는 과정이나, 죽어가면서 가족에게 느끼는 절망이나 서운함 등을 절절하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또한 묘사한 문체는 어떤가? 아주 간결하면서도 강렬하게 전달되어 한 문장 한 문장이 예술의 경지에 올라있다. 글을 읽으며 인물들이 저절로 눈앞에 떠오른다.
도스토옙스키는 조금 더 거리감이 있었다. 제목도 [죄와 벌], [지하 생활자 수기]같이 다소 딱딱하고 어두운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불과 몇 달 전, [죄와 벌]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도스토옙스키의 글이 좋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주인공 로쟈가 착하지도 나쁘지도 못한 캐릭터라 선과 악 그 사이 어딘가를 살아가는 나와 닮아 보였기 때문일까? 등장인물들이 전부 로쟈들 같았다. 화난 로쟈, 착한 로쟈, 구원자 로쟈, 살인자 로쟈들로 보였다. 그만큼 한 인물에 깊은 내면을 강렬하게 보여준다. 도스토옙스키의 문장은 숨이 찰 정도로 긴 편인데 그게 불편하지 않고 와닿았다. [지하 생활자 수기]에서는 1부에서 알 수 없는 인물의 내면을 의식의 흐름으로 나열해 나의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그러더니 2부에서 그 모든 것들을 알기 쉽게 풀어서 보여준다. 점점 도스토옙스키의 글에 매료가 되어 갔다.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는 사실 비교가 어려울 만큼 결이 다르다. 톨스토이의 작품은 해가 중천에 떠있는 밝은 대낮 같은 느낌이 들고, 도스토옙스키는 적막하고 어두운 달밤이 떠오르는 느낌이다. 톨스토이가 드라마와 영화같이 유쾌하고 밝다면, 도스토옙스키는 연극과 뮤지컬처럼 어둡고 컴컴하다. 그래서 두 작가를 선호하는 건 각자의 취향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어느 작품에 더 몰입이 되었고 어떤 장르를 선호하는지는 각자의 몫이다.
나의 경우는 도스토옙스키로 완전히 기울여졌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나를 도스토옙스키로 기울여진 땅으로 밀어 넣었다. 종교와는 거리가 먼 무신론자인 내가 종교의 의미에 대해 사색하게 만들어준 유일한 작품. 거기에 도스토옙스키가 가진 따뜻한 인류애로 차가운 내 마음을 살살 녹여준다. 도스토옙스키는 냉정하고 차가운 작품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내면에는 따뜻한 햇살을 가졌다. 나 자신을 반성하게 해주고 실천적 사랑이 무엇인지 말해주고 있다.
따뜻함이 감도는 톨스토이의 작품에선 톨스토이의 주장이 강렬하게 들어가 있다.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하고, 우리의 가정은 이런 식으로 설정되어 있어야 한다고 답을 정해주었다. 톨스토이가 정한 그 답은 다소 보수적인 느낌이 든다.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확실하고 사회적인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스토옙스키는 그 답을 정해주지 않는다. 대신 나로 하여금 끊임없이 고민을 하게 질문을 던져준다.
얼마 전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독서 모임을 가졌는데, 그 모임은 내가 선택한 질문으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그때 재치있게 넣고 싶었던 질문이 있었다. 작가가 톨스토이니까 그의 유명한 소설을 가지고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았냐고 물어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질문을 넣지 못했다. 내 스스로가 그 답을 [안나 카레니나]에서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답은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찾을 수 있었다.
- 도스토옙스키에게 완전히 기울어진 땅에서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