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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식

도스토옙스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고

by 초이

고백하건대 나는 가끔 나 자신이 가식적이고 모순적인 사람이며, 위선자라고 생각된다. 내가 추구하는 이상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파렴치한 모습들, 꾹꾹 눌러 감추고 싶은 비열함은 순간적으로 나의 뇌를 지배한다. 그 생각이 스치듯 흐르면 이성이 찾아와 나에게 다시 생각해 보라고 권한다.



나에게는 타인에게 주어진 자유를 억압하지 않고, 내 권익을 위해 타인의 권리를 무시하지 않는 것이 내 일생에 가장 큰 가치관이다. 나는 그것들을 잘 지켜왔고, 앞으로도 잘 지킬 것이라 다짐해 왔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나는 타인을 가치평가하여 그들의 권리 위에 내 이익을 놓으려 한다. 그러고 나서 내 가치관과는 동떨어진 나의 모순적인 감정을 마주하고 죄의식에 사로잡힌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등장하는 이반은 자신이 직접적으로 행하지 않은 사건에서 큰 죄의식을 느낀다. 그는 그저 무지한(본인 판단) 자들이 벌이는 일에 대해 예측했고, 그것을 방조했다. 그런 그에게 무슨 죄가 있길래 본인이 행한 일이라고 자백한단 말인가? 처음 이반의 행동을 보며, 도스토옙스키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위해 설정한 값이 아니고서야 인간이 저럴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나도 어떤 행위를 하지 않고도 마음속으로 스친 추악한 생각에도 죄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이반의 모습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죄의식은 자신이 정한 선악의 기준이 있을 때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나는 내가 확고한 가치를 지녔기 때문에 내 비열한 모습에 수치심을 느낄 수 있었다. 인간 본성은 폭력적이고, 그대로 두면 불신과 분열, 전쟁만 가득한 세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건 어쩌면 죄의식일지도 모른다. 그 죄의식은 내가 가진 가치관으로 나를 가장 먼저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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