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 탈출기
즐겨보는 유튜버가 얼마 전부터 본인들의 일과를 보여주는 쇼츠를 올렸다. 나름 트렌드에 민감한 여성이라고 생각했는데 당연히 편집해서 올렸을 거란 직업적 편견에 갇혀서 그게 유행하는 앱인지 몰랐다. 그 쇼츠를 시청한 결과로 우후죽순처럼 뜬 비슷한 쇼츠들을 보면서 그게 앱인 걸 눈치챘다. 호기심에 찾아보니 아직은 아이폰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다.
나는 친구가 많은 편이 아닌지라 고민스러웠다. 대학교 친구는 나를 포함 총 세 명인데 그중 한 명이 갤럭시라서 셋이 참여할 순 없었다. 서운해할 성격은 아니지마는 소외감을 줄까 봐 갤럭시에서도 출시가 되면 같이 하자고 제안을 했다. 그리고 나는 고등학교 때 친구들로 눈을 돌렸다. 이 무리는 나 포함 총 여섯 명인데 사이좋게도 아이폰 유저 세 명, 갤럭시 유저 세 명으로 분포되어 있다. 세 명이 먼저 시작한다고 한들 나머지 세 명이 서운해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아이폰 유저 세 명을 꼬드겨서 “셋로그”를 시작했다. 내가 함께 하자고 제안할 때 친구들은 맨날 똑같은 화면일 거라고 귀찮다고 투덜거리더니 시작하고 나니 누구보다 열심히 일상을 공유해 주었다.
10대 그리고 20대에는 이 친구들과 뇌를 공유하고 살았다. 재밌는 일상이든 속상한 일상이든 매일 공유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놀면서도 매일 카톡을 주고받았다. 당연했던 그 일상은 점점 퇴색되었다. 반복되는 일상을 전달하고자 하는 에너지가 점차 사라졌다. 해상도가 높고 선명했던 우리의 일상은 잿빛으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서로 다른 일상을 살아내느라 가치관과 성격이 모조리 변한 탓도 있었다. 매일 주고받던 카톡의 빈도수는 점차 줄어서 만나기 위한 연락 창구로 변했다. 만나는 횟수도 서로의 생일 정도로 굳어졌고, 그마저도 모두가 만나는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원래도 나는 어떤 일이 생겨도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나이가 들어가니 그 횟수는 점차 줄어들었다.
셋로그는 시간마다 약 2초 정도의 일상을 업로드하고 자막을 넣을 수 있다. 공유하는 친구들끼리는 그 일상에 바로 댓글을 달고 대화를 할 수가 있다. 잠시 나의 셋로그 파티원에 대해서 말해보자면 평일에도 주말에도 맨날 똑같다고 말하는 집순이 친구의 일상이 새로웠다. 주말인데도 일찍이 일어나서 밖에 나가 커피를 사 먹고, 침대 위에서 하루 종일 영상을 보는데 그 영상이 다채로웠다.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는 다 보는 그 친구가 존경스러웠다. 드러누운 친구 옆을 차지한 누렁 고양이 미우의 등장이 반갑고 귀여웠다. 주말에 항상 약속이 있어 보였던 한 친구는 새벽부터 일어나는 강아지로 인해 강제로 기상한다. 그리고 그 강아지와 함께 한낮에 산책을 한다. 평일에는 체력이 약하고 일만 하던 친구가 강아지를 위해 체력을 소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다른 사람보다 부지런한 주말을 살고 있다고 자부하던 나보다 무려 2시간을 일찍 일어나는 친구들의 일상. 셋로그를 하기 전에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들의 일상을 지켜보니 잊고 있던 애정이 생긴다. 셋로그는 일정 시간 이후에는 지워지기 때문에 자기 전에 영상을 받고 자야 한다. 그런데 항상 일찍 자는 두 친구는 영상을 다운로드하고 잘 시간이 없다. 제일 늦게 자는 내가 다운로드해서 다음 날 아침 여섯 명이 있는 단톡방에 뿌린다. 갤럭시 유저라 참여를 못하는 친구들은 우리 일상을 보면서 신기해한다. 서로 말을 아끼느라 몰랐던 일상을 볼 수 있는 매력에 흠뻑 빠진다.
누군가는 트렌트를 쫓는 삶을 낮잡아 보기도 한다. 애들이나 하는 것을 30대인 내가 하는 것에 비웃음을 보내기도 한다. 한때는 나도 내 시대의 노래가 최고이고 요즘 것들은 그 깊은 정서를 이해 못 한다고 무시하기도 했다. 그런데 트렌드를 쫓아 참여해 본 셋 로그는 나에게 행복을 건네 왔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보게 되는 오랜 친구의 일상을 공유받는 기쁨에 삶이 충만해진다. 그래서 이제는 그런 태도를 반성한다. 요즘 것들, 요즘 유행하는 것들을 비웃지 않는 어른이 되고 싶다. 꼰대 같은 마인드에 갇혀 살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내 또래 사람들에게도 제안하고 싶다. 요즘 것들에 관심을 가지면 어떠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