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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nguri Feb 10. 2022

Home sweet home 나의 집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우리 집으로 가요.


퇴근하면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간다. 가는 길 내내 집 가서 뭐 해야지. 뭘 사가야지 생각한다. 다이소 같은 매장은 나의 단골 가게가 되었고 어쩌다가 마트를 가면 예전이라면 보지 않았을 주방기구나 수납함 같은 리빙 카테고리를 맴돈다. 어느 날짜에 쓰레기를 버리는 걸 체크하고 물티슈나 휴지 같은 소모품들이 부족하면 채워 넣는다. 그렇게 내 공간은 살아있는 냄새가 난다.


어렸을 때는 집은 그저 집이었다. 가족들이 있는 공간이지만 동시에 나만의 공간은 아니었다.

내 방은 엄마와 함께 쓰기도 하고 창고처럼 잔 짐들이 많은 공간일 때도 있고 하교하고 집에 돌아오면

나도 모르는 가구들이 들어와 있어도 신경도 안 썼다. 물론 내 물건을 넣고 내 침대에서 내가 좋아하는 이불을 골랐지만 그렇다고 나만에 보금자리라고 하기엔 청소를 구석구석 하거나 필요한 걸 체크해두지 않았다. 그래서 어른이 돼서 내가 자취를 시작했을 땐 엄마가 없는 게 장점이면서 단점이기도 했다. 자유로운 나만의 장소가 되면서 나밖에 가꾸는 사람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요즘도 '내가 아니면 아무도 안 치운다.'는 마음으로 집안 청소를 게을리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처음에 서울로 홀로 가기 전 내 기준에 맞는 집을 찾느라 6개월이나 고생했다. 여긴 이래서 저긴 이래서

솔직히 잘 알지도 못했지만 처음 나의 집이니까 실패하고 싶지 않았다. 다들 자기 집을 어떻게들 찾는지 나만 이렇게 원하는 집을 못 찾는 건지 하루하루 걱정이 태산이었다. 역시 의식주에서 하나만 모자라도 사람 맘이 여유란 게 있기 힘들구나 싶었다. 그렇게 또 허탕 치고 집으로 내려가는데 전화가 왔다.


"학생 보여줄 집 찾았는데 소개해줄까?"


죽으라는 법은 없네 없어.


처음 나의 자취집은 원룸이었다. 당연히 처음부터 여유 있는 평수로 가고 싶었지만 고시원이 아니고 원룸인 거에도 나는 정말! 정말 정말 정말 기뻤다.(말했듯이 6개월 동안 정말 피곤했다) 다른 곳과 거의 비슷하게 냉장고 세탁기 등이 딸려있는 풀옵션이었고 무려 지어진지 2년밖에 안된 신축 빌라였다. 이름만 들어도 멋지지 않은가 풀옵션. 옵션이 풀. 옵션이 꽉 차다. 꽉 찬 옵션. 나한테도 처음으로 처음부터 시작이 아닌 꽉 찬 시작이 되는구나 하고 두근두근 밤을 새웠다.


그렇게 두근거리면서 갔던 첫 원룸은 나한테 음식물은 치우지 않으면 벌레가 생기고 빨래는 한 번에 많이 돌리면 안 되고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라서 각 종 생활소음은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가장 큰 가르침은 어른들은 생각보다 더 냉정했으며 세입자는 철저히 집주인 눈치를 보게 된다는 것.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데 이게 바로 진짜 스무 살에 시작이구나 싶었다. 고등학교 때는 왜 사회에서 잘 계약하는 법, 얕잡아 보이지 않는 법 등은 안 알려주는지 큰 의문이었다. 그러고 나서 계약이 끝나고 넘어간 집은 무려 투룸이었다.


첫 집이 있던 동네는 내가 서울에서 가장 익숙하고 정감 가는 동네였으므로 두 번째 집도 그 구역을 벗어나지 않았다. 대학생 전세 혜택을 받았던 터라 내 나이에 비해 좀 더 여유 있는 투룸 집을 갈 수 있었다. 물론 지원받는 만큼 기준이 어려워 이 집을 찾는 것도 아주 노심초사했다. 하지만 난 벌써 집을 찾는데 두 번째였다. 엣 헴.


그래도 나름 순탄하다고 생각했던 첫 투룸 집 대면과는 달리 시간이 갈수록 다시 스멀스멀 현실의 무시무시함을 다시 통감했다. 전세금을 지원받은 계약이라며 집주인분은 이상할 만큼 나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고 일층이었는데도 현관문과 문틈 사이는 손가락이 들락날락할 정도로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정말 무서웠다. 마음만 먹으면 우리 집 현관문 따위는 다 들어올 수 있는 거 아니야...? 이런 생각에 한 동안은 무슨 소리만 나면 일어나기 일쑤였다. 하지만 적응해야 했고 적응해냈다. 



난 집에 가는 게 좋아




지금 집도 사실 100% 마음에 드는 건 아니다. 그런 사람도 드물겠지만! 가끔 벌레 나올 때 집을 버리고 나가고 싶은 것만 빼면 그래도 난 우리 집이 정말 좋다. 내가 좋아하는 포스터를 사서 채워 넣는 액자들도, 비록 조화지만 푸룻 푸룻 빈 공간을 풍성하게 채워주는 화분도 좋다. 집에서 재택 해도 끄떡없는 내 컴퓨터도 친척들한테 받은 작은 냉장고도 너무 좋다. 사람 손이 타지 않은 집은 금방 빈 집 티가 난다고 한다. 그 말을 진심으로 공감한다. 오늘 저녁도 우리 집에서는 고소한 달걀말이 냄새와 고슬고슬한 밥 짓는 단내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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