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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nguri Oct 29. 2021

어쩌면 난 알콜 중독일까?

하루 유일한 일탈. 콸콸콸 소주

어머니 이게 어른이 되어가는 건가요?


언제부턴가 배부르지 않아도 통통 불러 있는 배를 쓰다듬다 보니 드는 생각.


이거 다 술 아니야?



밥도 술도 다 내 거로 만들어준 그 안주


나는 어렸을 때 술에 취한 어른들이 싫었다. 취해서 자기 몸도 못 가누고 서로 싸우고

실수를 저지르는 소위 어른답지 못해 보이는 그 술 취한 현장들이 마음에 안 들었다.

더 정확히는 '주사'가 극혐이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과하게 먹고 비틀비틀 술주정을 부리는 사람과는 즐거운 술자리를 이어나갈 수 없다. 그만큼 나의 주사도 경계한다. 내가 나를 극혐 하는 순간을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술자리와 술은 즐기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극혐 하는 순간들을 방지하여 걸러진 나의 술자리는 정말 너무 즐겁다. 안주가 맛있어서 즐겁고, 정다운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즐겁고, 추억을 쌓고 깊어지는 밤을 새우는 것이 즐겁다. 다음날 숙취는 괴롭지만 숙취 후 다시 시시콜콜 시작하는 일상이 즐겁다. 왜 대낮부터 엄마가 술을 먹었는지, 사람들을 모아서 시끌벅적하게 잔치를 벌였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퇴근하고 씻고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찾는 그런 그림은 정말 드라마에서만 보는 줄 알았는데 그 행동이 얼마나 나의 피로를 풀어주는 의식인지... 새삼 깨닫는다.  문득문득 와 나 정말 나이 먹는구나! 싶다.

엄마는 정이 많고 밝고 사랑스럽게 시끄러운 사람이지만 내가 술에 취하는 어른들을 싫어하게 만든 장본인 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렇게 정말 싫어했던 엄마의 길고 많은 술자리들은 지금은 건강을 생각해 눈에 띄게 줄었다. 언젠가는 맘 편히 방긋방긋 한잔 두 잔 술잔을 기울이는 날이 그리워질까 봐 서글프다.



술을 먹으려고 밥을 먹는 건지

밥을 먹다 보니 술 생각이 나는 건지


숙취를 생각해서 평일에 왈랄라 술을 쏟아 먹을 수 없는지라 저녁에 반주를 즐기는 게 일상이 되었다.

친구들과 약속을 잡으면 자연스럽게 술과 어울릴 수 있는 메뉴를 고르거나 아예 배부른 안주가 나오는 술집을 찾는다. 당연스럽게 술로 끝나는 밤이 되는 거다. 그러다 보니 일주일에 하루 빼고 술을 먹고 잠드는 날들이 이 종종 있었다. 매일 술을 달고 사는 사람들이 정말이지 이해가 안 되고 싫었는데 생각해보니 그 사람이 내가 아닌가 싶다. 어이없다 정말. 


맛잇는 안주를 먹고 싶은 욕망이 요리 실력을 키운다.

스쳐 지나가면서 들었던 하루에 한두 잔 먹는 술은 건강에도 좋다는 말을 주문처럼 되뇌인다. 내가 먹는 양은 한두 잔이 아닌데도 말이다. 게다가 오히려 술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불러온 너의 배는 자기 탓이 아니라 너가 곁들이는 안주들이 점점 발전하기 때문인데 왜 자기한테 난리냐고.


적당히. 항상 적당히가 좋다. 적당히 먹고 적당히 취해서 잠든 밤과 깨어나는 아침은 내 인생에 낙이다.

내 사람들과 짠짠 잔을 부딪히고 맛있는 걸 대접해주고 함께 쌓아가는 시간들이 좋다.

어쩌면 난 알콜 중독일지도 모르지만 당분간은 모른 척하려 한다.


세상에 맛있는것들이 많고 아직 취해있고 싶은 날들이 내겐 소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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