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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의 기억

생명나무

by 시인의 정원

4cm는 될 것 같다. 사방으로 돋아 낸 가시는 경고한다. '찔리기 싫으면 보기만 해.' '열매를 가지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할 거야' '좋은 것은 쉽게 얻는 게 없어' 귤빛으로 익은 탐스런 열매는 이브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였을지도. 그날의 실수를 되새기며 무시무시한 가시들을 만들었을지도. 경계를 넘어버린 그들의 후손들에게 보내는 메세지일수도.


겨울의 초입에서 달큼한 유자차를 떠올린다. 유자차는 한겨울이 제맛이다. 귀한 열매는 접근이 어렵다. 조심해도 찔리기 십상이다. 유자농원을 하는 지인의 손이 유난히 거친 이유일 것이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에, 난롯불 피워 놓고 유자차 한 잔 나눌 친구가 그리워진다. 누구라도 지나다 들러 따뜻한 온기 한 숟갈 나누었으면.


지난해 하나 달렸던 나무에 다섯 개나 달렸다. 유자청을 만들 수 있겠다. 내년에는 10개는 달리려나. 거름 듬북 주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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