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항해시대 스페인 왕국은 동남아시아 왕국보다 약했다

스페인 백인들을 잡아다 노예로 팔았던 동남아시아의 왕국 술루 술탄국이야기

by 바다의 지정학
이슬람의 백인 노예 무역 그림들은 너무 선정적이라 최대한 추려서 전체 이용가에 걸맞는 그림으로 가져와봤다.




요새는 많은 사람들이 유럽 백인들을 사고팔았던 노예 무역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는 것 같다.



대표적으로 오스만 돌궐이 행했던 유럽 백인 노예무역이 그것이다.



하지만 몽골계 크림 칸국, 중동 아랍계 바르바리 해적단이 유럽을 침공한 후 유럽인들을 납치해서 사로잡은 유럽인 노예들을 오스만 제국에 팔아넘겼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동남아시아에서도 스페인인들을 노예로 사고팔았던 역사가 있는지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애초에 동남아시아, 중남미 역사, 남아프리카, 남태평양 호주, 뉴질랜드 쪽 역사들은 세계사에서도 가장 비주류에 속하는 역사라서 직접 찾아보지 않는 이상 접하기 힘든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럼 무려 15세기부터 20세기까지 장기간 존속했던 동남아시아의 "술루 술탄국"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자.






0. 술루 술탄 왕국의 탄생 이전





image.png?type=w1 필리핀의 휴양지로 인기 있는 섬, "씨아르까오". 술루 술탄국과는 무관한 사진임.



동남아시아 술루 술탄국의 배경이 되는 보르네오와 필리핀 사이에 있는 "술루 섬"이 동남아시아 역사의 무대에 처음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참파 왕국의 공격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오늘날 베트남 중부 ~ 남부에 위치해 있던 참파 왕국은 힌두교를 믿던 고대 왕국이었는데, 당시 세계 패권을 쥐고 있던 고대 중국 한무제가 베트남을 정복해서 1,000년간이나 식민 지배를 하기 시작하니 베트남인들은 고대 중국 한나라 군대의 식민 수탈과 강압에 참지 못하고 참파 왕국이 있던 남쪽으로 점점 남진하기 시작한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14세기 말 1380년대쯤, 멀라까 술탄국에서 이슬람교를 전파하러 마흐둠 까림(Makhdum Karim)이란 아랍인이 와서 필리핀 남쪽 지방에 타위타위(Tawi Tawi)라는 이름의 이슬람 모스크가 세워지면서 필리핀에 정식적으로 이슬람교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다른 어떤 동남아시아 지방들이나 마찬가지로, 아랍인들은 필리핀에 들어올 때도 평화를 전하면서 들어왔다. 이상하게 아랍인들은 동남아시아에 이슬람교를 전파할 때는 대부분 평화를 외치면서 들어왔다. 동남아시아에 활과 총 등을 들이밀며 기독교로 개종시키려고 했던 기독교 왕국들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이렇게 이미 보르네오 섬과 필리핀 섬 사이에 있는 일부 지방에는 술루 술탄국이 태어나기 전에도 이미 이슬람이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슬람교가 들어온 지 10여 년이 흘렀을까, 세계 최대의 "모계사회"로 유명한 인도네시아의 수마뜨라 섬에 있던 모계 왕국 미낭까바우(Minangkabau) 왕국에서 왕자가 손님으로 찾아왔는데, 이름은 "라자 바긴다 알리(Rajah Baguinda Ali)"라는 아랍인이었다.



그는 필리핀 열대 섬에서도 작은 홀로 섬이라는 곳의 부안싸(Buanza or Buansa)에 닻을 내린다.



이때 재밌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평소처럼 벌거벗은 알몸으로 돌아다니던 필리핀 부안싸의 섬주민들은 갑자기 웬 배가 오고 사람들이 내리니 돌멩이나 나뭇가지 같은 걸 주워서 라자 바긴다의 배를 향해 위협을 했는데, 라자 바긴다는 섬주민들의 위협에 대응하거나 하지 않고 맞기만 하면서 나는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인데 어찌하여 나를 가라앉혀 죽이려고 하느냐고 되물었다. 그 얘기를 들은 섬주민들은 이 사람이 자기들을 괴롭힐 의사가 없음을 알게 되고 그리고 곧 그 자가 자기들과 같은 이슬람교도라는 것을 알고는 라자 바긴다를 받아들였다는 얘기다.



그 후, 또 이 섬에는 여러 큰일들이 발생한다.



15세기쯤부터 중국 명나라에게 식민 지배를 당하던 베트남이 남진해서 참파 왕국을 거의 다 정복하자 위기감을 느낀 참파 왕국은 살 길을 모색하기 위해 필리핀까지 눈길을 돌려 필리핀의 술루 제도 사람들을 자주 공격했다.



그리고 또 얼마 안 있어, 대항해시대보다 1세기나 앞선 세계 초강대국 중국 명나라의 정화의 대함대가 세계 바다를 누비기 시작하면서 정화의 대함대는 마쟈파힛 제국까지 쳐들어갔다. 그리고 마쟈파힛 제국은 중국 명나라의 신하국, 조공국으로 전락한다. 마쟈파힛 제국의 식민지가 됐던 필리핀은 이때쯤에 봉기를 일으켜 독립적인 세력으로 떨어져 나온 듯하다.








1. 술루 술탄 왕국의 탄생



image.png?type=w1 현재 필리핀의 어느 섬 모습


말레이시아의 조호르 술탄국에서 태어난 아랍인 여행자 "샤리쁘 울 하심(Sharif ul-Hashim)"은 탐험가이자 여행자이자 무슬림이었다. 그는 이슬람교가 된 술루 섬에 와서 섬주민들에게 이곳에서 예배드리는 곳이 어디인지 묻자 섬주민들은 그를 부안싸로 안내했는데 거기서 샤리쁘 울 하심과 라자 바긴다는 만났다. 그 후 라자 바긴다의 딸들 가운데 1명인 다양 다양 빠라미쑬리(Dayang-dayang Palamisuli)와 결혼해서 오손도손 알콩달콩 신혼생활을 만끽한 샤리쁘는 곧 15세기인 1405년쯤 2번째 술탄으로 옹립됨과 동시에 "술루 술탄국(말레이어: Kesultanan Sulu 끄술따난 쑬루, 따갈로그어: Kasultanan ng Sulu at Sabah 까술따난 앙 쑬루 앗 싸바, 아랍어: سلطنة سولو 살따낫뜨 술루, the Sultanate of Sulu)"이 태어났다.



샤리쁘 울 하심이 그냥 별거 아닌 아랍인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는 뼈대 있는 집안사람이다. 라자 바긴다가 자기가 결혼해서 낳은 아들이 아닌 샤리쁘 울 하심에게 옥좌를 준 이유는, 샤리쁘가 바로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무함마드의 후손인 하심 집안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모계 핏줄로써 무함마드의 손자인 후세인 이븐 알리의 14대 손이다) 게다가 애초에 라자 바긴다는 딸부자라서 딸만 많이 낳았지 아들이 없었기도 했고 말이다.



이렇게 탄생한 술루 술탄국은 아랍계 왕이 다스렸지만 백성은 아랍인들뿐 아니라, 말레이인, 술루인들이 있었기에 다양했다. 말레이인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지에 사는 원주민들이고, 술루인들은 말레이인과는 다르게 술루 섬에서 살던 토착민이라고 한다. 술루인들을 따으수그인이라고도 부르는데, 뜻은 물결 사람들(Sūg Tau)로 아마 물에서 생활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필리핀인들의 언어인 따갈로그어가 아닌 따으수그어, 반깅기어를 사용한다.



어찌됐건 술루 왕국을 세운 사람들은 필리핀 원주민들이 아닌, 아랍인들인 셈이다.



그리고 참고로 오늘날까지 필리핀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모로인들은 술루 섬, 민다나오, 팔라완 등에 살고 있는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1419년부터 술루 술탄국은 영락제의 군사활동에 의해 일시적으로 명나라의 식민지가 된 적이 있다.

명나라는 술루 술탄국을 소록국(蘇祿國)이라는 국명으로 기록했는데, 당시 세계 패권국가인 명나라의 영락제 집권 17년 때(1419년) 명나라의 식민지였던 술루 술탄국 동부 지역 통치자인 파두카 바타라(Paduka Batala)가 직접 명나라로 조공을 바치러 온 일이 있었는데 가는 길에 병에 걸려 사망했다고 한다. 이때 함께 온 술루 술탄국민 340명들은 술루 술탄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덕주에 잔류했다고 한다.


1610년까지 술루 술탄국은 명나라의 식민지였는데 명나라는 당시 세계 패권을 두고 후금제국과 치열한 대전쟁을 하던 중이라 술루 술탄국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명나라에 이어 최전성기 때 전 세계의 패권제국으로 군림한 대청제국이 술루 술탄국을 탐험하고 전술, 기록한 "황청직공도(皇清職貢圖)"에는 술루 술탄국에 대해 이렇게 기록해놨는데, "소록국(술루 술탄국)의 땅의 기온은 엄청나게 더우며, 그곳 원주민의 성질은 우리들이 지배하기가 까다롭고, 그 사람들은 진주를 채취하는 것을 생업으로 삼고 살아가는데, 이슬람교를 신봉하다 보니 돼지고기는 먹지 않고 다만 사탕수수로 술을 담가서 마실 뿐이다" 는 내용이다.




2. 술루 술탄국의 성장과 스페인 왕국


sex0.jpg 술루 술탄국의 위치로 추정되는 곳.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사이에 껴있는 보르네오 섬이라 술루 술탄국이 어느 국가 역사인지 애매하게 만든 주범이기도 하다.



술루 술탄국은 브루나이와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브루나이의 5번째 술탄 볼끼아(Bolkiah, 왕위 1485 ~ 1524)가 샤리쁘 울 하심의 손녀인 뿌뜨리 레일라 멘짜나이 공주(Putri Leila Menchanai)가 결혼하는 등 사실상 결혼 동맹을 맺고 있었다.



그리고 덥디 더운 열대 지방 필리핀 섬에 스페인 선박들이 들어오고 뻬르디난드 마젤란이 닻을 내렸다. 그래도 이슬람의 은혜를 입어 어느 정도 문명화가 돼가던 술루 술탄국과는 달리 필리핀 본토는 16세기 근세시대 까지도 청동기 수준에 머물러있는 미개인들이 많았고 대부분 옷조차 없이 알몸으로 생활하는 필리핀 원주민 남녀들이 많았다. 돌멩이, 투창, 방패 등으로 맞서던 필리핀 원주민들에게 뻬르디난드 마젤란은 활과 총, 대포를 선물해 줬다.



하지만 벌거벗은 알몸의 미개인이라고 우습게 여기던 마젤란은 필리핀을 잉카, 아즈텍, 마야 문명처럼 아예 구석기 시대 알몸 미개인으로 생각하다가 라뿔 라뿔(라푸 라푸)라는 필리핀 원주민에게 살해된다. 그리고 마젤란이 죽자 스페인인들은 지레 겁먹고 도망쳤다. 하지만 자기들이 전쟁에서 패배했다는 충격에 빠진 스페인 왕국은 돈을 계속 쏟아부으면서 필리핀 원정을 했고 스페인 함대들은 필리핀에 올 때마다 번번이 패배했다.



필리핀은 미개인은 맞았지만 16세기 근세 시대에 살던 청동기 시대 미개인이었지, 구석기 시대 미개인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렇게 원시시대 필리핀 미개인 vs 스페인 함대 간의 치열한 공방전이 오고 가면서 스페인은 번번이 패배했지만, 그래도 점차 스페인은 필리핀을 조금씩 야금 야금 갉아먹곤 있었다.






3. 술루 술탄국 vs 스페인 전쟁 승자는? 술루 술탄국




술루 술탄국은 스페인을 후방에서 괴롭힐 생각으로 바다 방랑자들이라는 뜻의 "오랑 라우트"들을 고용했다. 오랑 라우트들은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에 하는 해양민족으로, 이들은 거의 다 이슬람교를 믿으며 마인어라는 생소한 언어를 쓴다고 한다.








image.png?type=w1 오스트로네시아의 이동 경로. 사진 출처: 위키 피디아



이들은 전통적으로 *만달라 체제 속에 섞여서 동남아시아에서 노예 무역을 해오던 해양민족이었다.



동남아시아 만달라 사회 자체가 땅보다는 인력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기에 인력을 공급해주는 오랑 라우트 같은 해적들은 전통적으로 인기가 높았다.



술루 섬에서도 스페인인들이 오기 훨씬 전부터 "망가여"라는 노예 무역을 해오고 있었다.



그리고 오스만 제국이 바르바리 해적단과 거래하여 서유럽인 여성노예들을 공급 받았듯이, 술루 술탄국도 오랑 라우트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면서 스페인 백인이면 노예들은 병사든 여자든 할 것없이 전부 다 노예로 만들어서 팔게끔 유도했다.



스페인인들이 계속 납치되거나 노예로 팔리는 사건들이 많아지자 참다 못한 스페인 왕국은 1637년 2월 쯤에 세바스띠앙 꼬르꾸에라 스페인 총독이 잠보앙가 요새에서 필리핀 기독교인 수천 명과 스페인군 760명을 데리고 술루 술탄국이 살고 있는 수도 홀로섬을 때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소탕되나 싶었지만 오랑 라우트는 계속해서 스페인을 괴롭혀댔다.



그렇게 17세기까지는 스페인 왕국은 필리핀을 전체 다 먹지 못한 채 술루 술탄국에게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고 거기다가 오랑 라우트들이 스페인 왕국이 주요 정착촌들을 습격해서 민가에 불을 지른다던가 스페인 교역선을 중간에 해적질해서 빼앗는 경우가 왕왕 많아졌다.








술루 술탄국이 쓰던 아퀴버스총. 이미 스페인이 오기전부터 술루 술탄국은 일본 상인들, 아랍 상인들과 거래하면서 스페인 총과 동등한 위력을 지닌 총기들을 대량 구입했다



참다 못해서 스페인 왕국은 1765년에 술루 술탄국을 아예 끝장낼 생각으로 막대한 국가 예산들을 써가면서 스페인에서 가장 강하다는 함대들을 모두 있는 데로 박박 긁어모아 술루 술탄국을 공격했으나, 스페인 왕국에서 가장 강하다는 함대들이 모두 몰살되버렸고 오히려 4년 후인 1769년에는 술루 술탄국이 브루나이와 손을 잡고 스페인 왕국의 마지막 최후의 보루인 "마닐라"를 역으로 공격해서 아예 점령까지 해버렸다.



이후 브루나이가 술루 술탄국과 내분에 빠지는 바람에 얼마 못가 철수하긴 했으나 스페인은 술루 술탄국과의 전쟁에서 항상 패배만 하면서 계속해서 흑역사를 써내려갔다.





*만달라 체제란 :



아랍 문화쪽 영향을 받아 탄생한 동남아시아만의 특이한 정치, 행정, 사회 체제.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문명국으로 성장하지 못했기에 중앙집권제를 이루는데 실패했다. 따라서 중앙집권제가 되는데 실패했던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그 대용품으로 만달라 체제라는 것을 만들었는데, 이 만달라 체제가 동남아시아의 대부분 국가들에 많이 녹아있다. 쉽게 설명하자면 왕이 아닌 영주 같은 사람들이 각각 자기 지역들을 다스리는 체제다. 이렇게 말하면 중세 일본, 유럽의 봉건제와 비슷해 보이지만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중세 일본, 유럽의 봉건제는 엄격한 군율과 규율이 존재하며 지방 영주들이 각각 독자적인 군대를 가고 있으며 영주 자신이 소유한 영토를 소유, 지배한다는 개념이 강해 소위 자신이 소유한 지역의 군왕처럼 군림하는게 가능하며 원하면 언제든 군사반란(군사쿠데타)과 내전이 자주 발발한다는 특징이 강하다.


그렇기에 군사반란(군사쿠데타), 내전, 전쟁 등을 자주 일으키는 국가들의 특징들을 보면 봉건제적 특성이 강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대표적으로 고대 중국도 이러한 봉건제적 특징이 아주 강한 제국이다. 중국 명나라를 아주 강력한 중앙집권 제국이라고 생각하지만 중국 명나라는 봉건제적 특징도 아주 강한 대제국이기도 하다. 고대 중국은 워낙 거대한 영토를 정복, 지배해왔기에 황제 혼자서 제국의 전역을 지배하는게 불가능해서 각 시대마다 태수, 번왕들이 지방 영주처럼 군대를 가지고 자신이 가진 영토들을 지배해왔다. 중국 명나라도 마찬가진데, 번왕이라는 지방 영주들이 각각 독자적인 군대를 소유하고 있었고 자신이 가진 영토에서 군왕처럼 군림하는게 가능했기에 언제든 황제가 마음에 안들면 칼을 겨누고 군사반란을 발발시키는 게 가능했다. 대표적으로 정화의 대함대를 이용해 전 세계의 바다를 지배했던 중국 명나라 제3대 황제 영락제(永樂帝)도 지방 번왕 출신이었다가 자신의 사병군대들을 이용해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황제가 된 중국사의 수많은 황제들 중 1명이기도 하다.




하지만 동남아의 만달라 체제는 이와는 정반대로, 굉장히 느슨한 체제이기 때문에 법으로 규정되는 것도 딱히 없고 토지를 소유한다는 개념도 없고 자기만의 군대도 없다. 말그대로 동남아시아의 만달라는 명목상으로만 지방 영주 같은 느낌이지 실질적인 권력은 거의 없는 셈이다.



이 만달라 체제는 베트남을 제외한 동남아시아의 대부분 국가들에 거의 다 있는 개념이다. 베트남은 고대 중국 한무제가 베트남을 식민지화한 직후부터 완전히 고대 중국 문화권에 예속되었기에 만달라 체제 따위보다 훨씬 고급지고 강력한 중세 봉건제, 중앙집권제 같은 개념들이 들어서 있었다.



또한 고대 중국 유교문화권의 경우, 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항상 영토정복에 혈안이었다. 하지만 이와는 정반대로 동남아시아의 만달라 체제는 땅보다는 사람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기에 영토 정복에는 큰 욕심이 없었고 대신에 중세 유럽처럼 인간을 납치하는 노예 무역이 성행했다고 한다.



어쨌든 이 때문에 베트남은 위치상으론 동남아시아이지만, 문화적으로는 동북아시아 문화권에 속해있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워낙 거대한 영토를 차지했기에 지리적으론 중앙아시아, 동북아시아 양쪽을 다 차지하고 있지만 문화적으로는 완전히 중앙아시아 유목국가인 몽골이나, 지리적으로는 유럽과 아시아 양쪽에 걸쳐 있지만 문화적으로는 완전히 동양(아시아) 국가인 튀르키예처럼 말이다.







4. 술루 술탄국의 스페인 백인 노예 무역 사업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연이은 승리에 도취된 술루 술탄국은 필리핀 바깥에 스페인 함대들까지도 공격해서 노예가 된 스페인인들을 중국 상인, 일본 상인, 아랍 상인들에게 헐값에 넘겨준다거나, 심지어는 영국 함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함대들까지 공격해서 해전을 벌여 승리하는 등 원조 해양민족의 위력을 과시했다.



활동지를 필리핀 전역에서 인도네시아 북쪽과 보르네오 까지 넓히면서 동남아시아 동부 해역을 오가며 온갖 패악질, 해적질을 저지르며 지나가는 유럽 함대들을 공격, 나포하고 백인들을 노예로 팔거나 심지어 필리핀 원주민들까지 노예로 팔면서 본격적인 노예 무역에 뛰어든다.



18세기 후반부터 술루 술탄국은 더욱더 노예 무역을 증대했고 오랑 라우트의 2개의 세력인 일라눈, 발랑잉은 술루 술탄국에게 무기, 선원, 함대 등을 지원받고 필리핀 섬, 네덜란드령 멀라까 섬, 수마뜨라 섬, 뉴기니의 해변가까지 백인이든 원주민이든 닥치는대로 잡아다 팔았다.


물론 그 당시 인도양, 태평양, 동남아시아의 거대한 바다들을 지배하던 진정한 해적은 명나라 해적들이었고, 그 다음이 왜구들이었다. 대항해시대 스페인과 전쟁해서 항상 승리할 정도로 강력한 술루 술탄국조차도 이들보다는 훨씬 약했기에 그들을 매우 무서워했고, 오랑 라우트들도 명나라 해적들과 왜구들의 점령지, 활동지들은 항상 피해서 해적활동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술루 술탄국이 결코 약하다고 할 수는 없는 게, 오랑 라우트들이 공격해서 나포하고 납치하고 파괴시킨 스페인 함대, 네덜란드 함대, 포르투갈 함대, 영국 함대들이 무수히 많기 때문이다.


당시 중국 명나라 한족 노예 무역상들과 중동 아랍인 노예 무역상들이 술루 술탄국으로부터 구매했던 필리핀인 노예, 백인 노예들의 몸값들은 대충 오늘날 필리핀 현지 시세로 치면 이렇다.


필리핀인 노예 : 50페소


스페인인(백인) 노예 : 300페소


스페인인(백인) 사제 노예 : 2000페소


어쨌든 이렇게 스페인인들을 잡아다 노예로 팔면서 크게 돈을 벌면서 흥했던 술루 술탄국. 하지만 기쁨도 잠시, 19세기에 라이벌 관계 였던 마긴다나오 왕국이 급성장하자 술루 술탄국은 바보같은 자충수를 두는데 바로 친스페인파로 돌아서고 술루 술탄국의 수도인 홀로를 스페인에게 그냥 공짜로 헌납해버린 것이다.


그 탓에 스페인 왕국은 얼씨구나 지화자 좋구나,하고 술루 술탄국의 수도를 일시적으로나마 공짜로 낼름 줏어 먹게된다.


하지만 스페인의 기쁨도 잠시, 19세기는 어떤 시대인가? 부유한 나라였던 스페인이 처참하게 몰락하고 오합지졸이란게 들통이 나서 다른 유럽 왕국들에게 여기저기 삥뜯기고 심지어는 세계에서도 가장 약하다는 남아메리카 국가들에게까지 번번이 패배할 정도로 오합지졸의 대명사가 되버린 시대였다.


더군다나 영국까지 스페인을 무력침공해서 스페인의 남쪽 지역인 지브롤터를 식민지화시켜버린다. 스페인은 영국의 식민지가 되버린 것이다. (지브롤터)


당연히 스페인으로써는 당장 내 집이 불타고 있는 상황인데 필리핀이건 뭐건 신경쓸 여유가 없었고, 그런 상황에서 마긴다나오는 마긴다나오대로 브루나이는 브루나이대로 망해가고 있었고, 스페인에 빨대를 꽂으며 기생충처럼 살고 있었던 술루 술탄국도 스페인 자체가 망해가자 같이 휘청거리면서 다 죽어가고 있었다.




5. 미국의 합병


스페인 왕국과 필리핀, 술루 술탄국의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9세기 1898년대 쯤 터진 미국vs스페인 전쟁(미서전쟁)이 그것이다. 마치 인간vs애벌레의 싸움 같을 정도로 힘의 차이가 압도적이었던 미국vs스페인의 전쟁은, 부유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성장한 미국이 애벌레나 다름없는 스페인을 가볍게 짓밟아 죽이는 바람에 오합지졸 스페인은 그나마 유지하던 코딱지처럼 작은 섬인 카리브 해의 꾸바나 푸에르또리꼬, 그리고 필리핀을 모두 미국에게 할양해야 했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제 무대에서 외교적으로까지 고립되버린 스페인을 도와줄 국가는 아무도 없었고 미국이 스페인 섬을 가지는 것에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같은 열강들이 모두 찬성하며 미국의 손을 들어주면서 스페인의 마지막 희망마저 완전히 무너지고 만다.


여기서 이상하게 문제가 꼬이는 상황이 발생하는데, 스페인은 앞서 얘기했듯 남아메리카나 필리핀을 완전히 다 먹지 못했었다.


남아메리카의 경우는 잉카, 아즈텍, 마야 자체는 워낙 구석기시대 수준의 미개인들이라 쉽게 먹었지만 문제는 브라질 아마존 열대 우림 같은 곳에는 아나콘다, 말라리아 모기 같은 해충들이 워낙 많아서 스페인군들이 들어갔다가 죽는 경우들이 많아서 차마 그 지역들까지는 먹지 못했던 것이고,


필리핀의 경우도 필리핀 원주민들 자체는 손쉽게 먹어버렸지만 술루 술탄국처럼 필리핀에 들어왔던 아랍계 이주민들과는 항상 전쟁할 때마다 패배했기에 먹을 수가 없던 것.


실제로도 술루 술탄국과의 전쟁에서 매번 패배했던게 스페인이었던 걸 생각해보자. 19세기쯤 술루 술탄국이 잠시 친해져서 수도 홀로 섬을 공짜로 주긴 했지만 스페인은 이미 약해질대로 약해진 상황이라 만약 술루 술탄국이 갑자기 변심을 해서 다시 역공을 하면 곧바로 다시 빼앗길 섬(줬다 뺏기)이기도 했다.


그런데 스페인이 미국에게 쉽게 항복하면서 자기들이 다스리던 섬 외에 술루 술탄국도 스페인이 다스리던 지역이라고 거짓말을 해버린 것이다. 이는 19세기 1885년 스페인 왕국이 영국, 독일과 맺은 "마드리드 의정서"에 주장한 내용인데, 내용인즉 "술루 제도는 스페인이, 보르네오 섬은 영국이 다스렸던 곳"이라고 거짓말을 써놨다.


술루 술탄국이 살고 있던 술루 제도(섬)는 스페인이 먹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도 말이다. 이때문에 당시 한창 흥하던 중이던 경제대국 미국이 술루 술탄국과 싸울 빌미를 제공해버린 꼴이다.


그렇게 터진 전쟁이 바로 "모로vs미국 전쟁"인데, 이 모로vs미국 전쟁을 필리핀vs미국 전쟁의 일부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사실상 술루 술탄국은 필리핀과는 아예 다른 왕국이기에 다른 싸움으로 시각으로 보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렇게 1898년 술루 왕국vs미국의 싸움이 터졌고 술루 왕국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채 순식간에 미국에 합병되버린다. 역시 미국은 미국이었다. 지금까지 술루 술탄국이 상대했던 오합지졸 스페인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존재였다. 아니 오히려 항상 술루 술탄국이 스페인을 가지고 놀았다. 술루 왕국은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거의 매번 승리만 했었고, 스페인 함대들을 공격해서 스페인인들을 노예로 팔면서 돈까지 짭잘하게 만져봤다. 그리고 스페인인 노예들을 판 돈으로 노예 무역을 해서 한때는 꽤나 성장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리고 미국이 왔다. "미국이 뭐 별거야? 어차피 매번 우리에게 패배하던 오합지졸 스페인 놈들과 똑같겠지" 아마도 술루인들은 이렇게 생각했음이 틀림없다.

하지만 전쟁은 시작과 동시에 미국의 압승이었다.


시대는 이미 산업화 시대에 접어들었다. 과거에는 물리적으로 잘 싸우는 놈이 전쟁에서 승리하던 시대였다. 스페인인들보다 잘싸웠던 술루인들은 백발백중 사격실력으로 스페인인들을 쏴죽였다. 그렇게 술루 왕국은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항상 승리했다.


하지만 이제는 근대시대였다. 근대시대부터 "경제력"이 곧 군사력이다. 제아무리 잘싸우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값비싼 무기 앞에는 당해낼 수가 없다. 내가 무기가 없으면 무기를 구입하면 그만인 시대. 나약하고 겁 많은 여자 임산부 1명이 게틀링건을 들면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건장한 남자 군인들을 이길 수 있는 시대. 근대시대부터는 그런 시대인 셈이다. 아랍인들이 아무리 열심히 싸워봤자 미국인들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술루 왕국은 스페인이 가난해지면서 덩달아 같이 가난에 허덕이게 됐고 부유한 미국을 당해낼 수가 없게 됐다.


그래서인지 1899년 5월 19일 쯤 홀로 섬에서 미군과 처음 만난 술루 왕국 술탄은 미국인들에게 이렇게 얘기했다고 전해진다 "이곳엔 어째서 왔지? 땅이라면 우린 가진게 없다. 돈이 필요하다고 해도 우리는 몹시 가난하다."


그 후 미군은 술루 섬의 해변가까지 들어왔고 술루 술탄국은 스페인식 구식 대포를 사용해 저항했지만 성능도 안좋은 구석기시대 무기나 다름없는 스페인식 구식 대포 따위는 미군에게 전혀 통하지 않았다.


이후 미국은 술루 술탄국에 근대풍의 제도, 교육, 토지법 등을 도입했고 술루 술탄국은 이슬람의 정체성을 잃기 시작했고 노예 제도마저 미국이 폐지해버리자 더 이상 먹고 살 길이 없어진 술루 술탄국의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졌으며, 토지 대부분이 국유지가 되면서 외국 기업이나 비무슬림들에게 땅들이 넘어가버리면서 1915년 술루 술탄국은 사실상 미국에 의해 망했다.


마지막 술루 술탄은 1936년에 죽은 후 더 이상 다음 술탄이 나올 일은 없어졌다.

21세기 현재까지도 술탄 집안이 살아있긴 하다고는 하지만 소소하게 살아가고 있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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