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인에게 패배해서 결혼했던 스페인인 "곤쌀로 게레로"

남미 마야인에게 패배하고 마야인 미녀와 결혼해서 마야인이 된 스페인인

by 바다의 지정학


흔히 16세기 대항해시대때의 남아메리카 잉카, 아즈텍, 마야 문명하면 구석기시대처럼 남녀가 발가벗고 알몸으로 생활했던 미개인으로만 생각하고 인식하는 경우들이 많다.


하지만 과연 이들이 미개했던 미개인이었기만 했을까? 물론 잉카인, 아즈텍인, 마야인들이 항상 알몸으로 다녔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21세기 현대인의 시각으로 보면 로마인도, 그리스인도 전부 다 구석기 미개인으로 보일뿐이다.


게다가 잉카인들은 16세기에 마취없이 뇌 수술을 했는데 80% 이상의 성공률을 보였다고 한다. 200년 뒤인 19세기에 미국에서 뇌 수술을 했을때도 잉카인들의 뇌 수술보다 성공률이 훨씬 낮을 정도였다.


게다가 스페인인들이 잉카를 먹고 잉카 지역에 건물을 짓고 살았을때 지진이 크게 났던 적이 있는데 스페인인들이 지었던 건물은 두부깨지듯 전부 허무하게 무너졌는데, 유일하게 잉카인들이 지은 집들만 멀쩡했다고 한다. 지금도 잉카인들이 지은 마추픽추는 어떻게 거기 지었나 싶을 정도로 미스테리하다. 그 정도로 당시 잉카, 아즈텍, 마야인들의 건축 기술은 유럽을 아득히 뛰어넘을 정도로 발달했었다.


sex0 (1).jpg 잉카인들이 지은 마추픽추



하지만 유일하게 잉카인들이 발달하지 못했던 분야들이 있었으니 바로 "경제력""국방력"이었다. 잉카인들이 허무하게 유럽에 먹혀버린 것도 바로 이때문이었다. 게다가 남아메리카의 잉카, 아즈텍, 마야 문명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약소국이었기에 경제력과 국방력이 가장 약했던 민족들이었다. 동남아시아에서도 가장 최약체로 평가받는 필리핀 원주민들조차 스페인 왕국과 전쟁해서 총 7번이나 이겼을 정도였는데, 잉카, 아즈텍, 마야는 워낙 약했다보니 그냥 허무하게 먹혀버렸다.


그런데 이렇게 잉카, 아즈텍, 마야는 허무하게 먹혀버렸지만 의외로 브라질 아마존 원주민들이나 흩어져 사는 원주민들은 스페인인들을 끝까지 괴롭혔었다. 사실 마야는 19세기쯤까지도 완전히 망하진 않았는데 그 이유는 마야 자체가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형태처럼 여기 저기 흩어져 살았기 때문에 스페인인들이 마야인들을 죄다 찾아내서 먹기는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마야 원주민들에게 패배해서 결국 마야인 미녀들과 결혼했고, 게다가 후에 태어날 모든 남아메리카인 4억 3,350만명 가운데 수많은 메쓰티쏘들의 부모가 된 어떤 스페인인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그 사람의 이름은, "곤쌀로 게레로"다.


sex0 (1).jpg 남아메리카 원주민 미녀들과 결혼함으로써 지금의 수많은 남아메리카인들의 부모가 된 곤쌀로 게레로






바야흐로 15세기 말인 1470년쯤 스페인 왕국의 우엘빠라는 어떤 냄새나는 작은 움막집에서 곤쌀로 게레로가 태어났다고 전해지는데, 자세하게 전해지는 바가 없어서 확실하지는 않다.


곤쌀로 게레로와 곤쌀로 피사로가 어떤 관계인지는 아직 자세히 밝혀진게 없다. 그 둘이 가족이거나 친척이라고 주장하는 고고학자들이 있다고 한다.


여하튼 곤쌀로는 스페인 탐험대원이었는데 그는 선장인 후안 떼 발띠삐아, 선교사 출신 헷로니모 떼 아낄랄(Gerónimo de Aguilar)을 포함한 15명의 탐험대 선원들과 함께 빠나마의 다리엥에서 산또 도밍고로 배를 타고 항해하던 중 그만 열대 바람을 만났고 카라벨선이 2주간 정처없이 헤메다가 유까딴 반도(현재 자메이카)라는 곳의 낀띠나 로오(Quintana Roo) 해변가에 좌초, 난파되게 되었다고 한다.


해변가에 도착해서 살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하필 그곳은 잉카인, 아즈텍인들 같은 식인종들이 득시글거리는 마야인들이 살던 매우 찌는듯이 덥고 작은 열대 섬이었다.


그렇게 벌거벗은 알몸의 마야인 원주민 남녀들이 스페인인 탐험대원들을 덮쳤는데, 스페인 탐험대들은 총을 쏘고 필사적으로 저항했으나 결국 역부족이었는지 마야인들에게 잡혀버렸다. 그렇게 인질이 된 탐험대원들은 알 수 없는 곳으로 질질 끌려갔다. 그렇게 스페인인들이 들어가게 된 곳은 마야인들이 먹을 인육, 식인공양용 사람들을 감금해서 키우는 인간농장이었다. 이집트인들처럼 태양신을 섬기던 마야인들은 스페인인들을 신이 보내준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스페인인들을 살을 찌운 후 인신공양을 해서 태양신에게 바친후 잡아 먹으려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선장 후안 떼 발띠삐아를 비롯해 5명의 스페인인들은 그렇게 마야인들에게 잡아먹혔다.


sex0 (1).jpg 고증대로 완전히 알몸의 마야인 모습을 붙여넣었다간 채널이 사라질지 모르니 최대하게 안전한(?) 걸로 가져와봤다.


그렇게 다 잡아먹히고 남은 스페인인은 곤쌀로 게레로와 헷로니모 떼 아낄랄(Gerónimo de Aguilar)뿐이었는데 둘은 필사적으로 발버둥친 끝에 운좋게 열대 밀림으로 도망치는데 성공했다.


생존자인 후안 떼 발띠삐아는 이렇게 얘기했다고 전해진다.


"우리들은 갇혀 이들의 다음 인육 파티를 기다리는 꼴이 됐어요. 그들은 우리를 살찌우게 하고 우리 고기로 배불리 먹을 생각인게 틀림없어요. 우리는 이대로 가다간 다 죽겠다고 생각해서 필사적으로 발버둥쳤어요. 그리고 갇혀있던 우리를 부수도 숲으로 도망쳤죠."


그렇게 열대 밀림을 가다가 혼자가 된 곤쌀로 게레로는 곧 다른 마야 사람들이 사는 작은 움막집을 발견하는데 그들은 "쩨뚜말"이라는 마야인들이 사는 곳이었다.


쩨뚜말 사람들은 다른 마야인들과는 다르게 곤쌀로 게레로를 잡아먹으려고 하진 않았고 결국 곤쌀로 게레로는 그곳에 정착하기로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살면서 그는 옷을 벗고 잉카인, 아즈텍인, 마야인들처럼 알몸으로 생활하게 된다. 1년 365일 섭씨 64도 이상의 더운 아마존 열대 밀림에서 옷은 필요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곤쌀로 게레로가 마음에 들었는지 그 움막집의 촌장인 "나짠(Nachan)"은 자기의 딸이자 미녀인 "자질 하(Zazil Há, 이름이 좀 거시기하다..)"와 결혼을 시켰고 딸, 아들 3명을 출산하면서 브라질 지방 최초의 메쓰티쏘들이 탄생했다.



잉카, 아즈텍, 마야인 여자들은 죄다 알몸으로 돌아다녔기에 가슴 윗부분만 나오게 스크린샷했네요;


그런데 곤쌀로 게레로는 자기의 색시(아내)를 사랑했나보다. (곤쌀로 게레로가 여러 수많은 마야인 여자들과 결혼했고 그 섹시(아내)들 가운데 1명이 "자질 하"라는 얘기도 있고 자질하고만 결혼했다는 얘기도 있고 의견이 분분하다) 곤쌀로 게레로는 자기 색시(아내)하고 알콩 달콩 사랑을 하면서 서로 좋아했고 딸, 아들을 잘 키웠다고 한다. 그렇게 곤쌀로는 서양사에서 유명한 사랑꾼들 가운데 1명이 되버린 셈이다.


그리고 당시 남아메리카 잉카, 아즈텍, 마야 문명에는 "활"이라는 개념의 무기가 없었고 오직 돌멩이를 들고 싸우거나 방패를 들고 투창을 하는 매우 구석기시대적인 싸움법 밖에 없었는데, 곤쌀로 게레로는 당시 가장 최첨단 무기인 활의 제작법을 그들에게 알려줬고 전해줬다고 한다. 하지만 그후 잉카, 아즈텍, 마야 문명이 스페인과 전쟁할때 그들이 활이나 석궁을 쐈다는 기록이 없는걸로 봐선 잉카, 아즈텍, 마야 문명은 활, 석궁을 제조할 기술력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이렇게 촌장인 "나짠(Nachan)"이 죽자 곧 곤쌀로 게레로는 다음 촌장이 됐다.


그리고 곤쌀로 게레로와 색시(아내) 자질 하가 사랑을 나누고 행복해하고 있는 그 시점에 에르난 꼬르떼쓰를 비롯해 다른 스페인인들이 유까딴 섬에 내렸다고 한다. 에르난 꼬르떼쓰는 운좋게 헷로니모 떼 아낄랄을 만났는데 헷로니모 떼 아낄랄은 이곳에 자기같은 스페인인이 1명 더 있다고 얘기해줬고 그 스페인인을 자기 동료로 삼고 싶던 에르난 꼬르떼쓰는 헷로니모 떼 아낄랄에게 그 사람을 여기 데려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곤쌀로 게레로는 이렇게 얘기하며 거절했다고 전해진다.


“아낄랄(아귈라)씨, 저는 기혼자이고 결혼해서 이미 세 자녀가 있는데, 이 자녀들은 저를 이곳의 촌장으로 여깁니다. 제 얼굴에는 문신이 새겨져 있고 귀에는 피어싱을 했어요. 스페인 사람들이 이 모습을 보면 저에 대해 뭐라고 할까요? 그리고 제 아이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봤지 않나요?"


그 순간 곤쌀로의 마야인 자색시(아내) 자질 하가 둘의 대화를 방해하고 기분이 안좋다는 표정으로 아낄랄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이 노예(스페인인)는 내 남편과 무슨 얘기를 하러 여기까지 온거죠?”








그렇게 곤쌀로 게레로를 데려가려고 온 스페인인들을 돌려보내자 결국 에르난 꼬르떼쓰는 곤쌀로 게레로와 싸우게 됐고 곤쌀로 게레로는 혼자 석궁을 쏘면서 방어했고 마야 원주민들은 돌멩이로 공격해서 스페인 병사들과 싸워 이겼다.


하지만 재차 끈질기게 다시 덮쳐오는 스페인인들이 쏘는 활과 총에 의해 결국 곤쌀로 게레로는 죽임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의 모습을 본 헷로니모 떼 아낄랄은 후에 이렇게 얘기했다.


"그 사람(곤쌀로)는 마야 원주민처럼 먹고 마셨다. 누가봐도 그 모습은 마야 원주민이었다."


이렇게 곤쌀로 게레로는 끝이 났지만 그는 사실상 모든 남아메리카인들의 부모님같은 존재로 오늘날까지 여겨지고 있으며, 특히 멕시코인들에게는 자기들의 조상님처럼 여겨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남아메리카인들 빼고는 아무도 모르는 곤쌀로 게레로의 이야기를 발굴해서 만든 영화가 바로 "아바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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